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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 | 연재 [이하연의 귀촌이야기⑦]
할머니의 손때 묻은 작대기
이하연(2018-08-30 11:15:43)



오봉댁, 기동댁, 봉선댁... 할머니들의이름은모르지만, 그분들의이름을대신하는호칭은 00댁이다. 할머니들이시집오시기전살던동네의이름을붙인택호. 그럼할아버지들의호칭은어떻게될까. 재미있게도할머니택호를붙여 00양반이된다. 남성의위계가더센한국사회에서왜이런호칭이자리잡았을까. 곰곰이생각해보면여러지역에서시집온할머니들의택호를써야지만구별이되었을것같다. 할아버지들은외지에서오신분들빼곤대부분이동네출신이니말이다. 굳이이름이아니라택호를호칭으로부르는관습은할머니들의젊은시절을떠올리게끔하기도하고어쩌다그마을에서이동네로오셨을까두분은어떻게만났을까그런상상을부추기기도한다. 시작부터글이샛길로샜다. 할머니의택호때문이다.


얼마전두월댁할머니께마대자루와도리깨를빌리러갔다. "엄니, 도리깨좀빌려주세요~"했더니한참을찾으시다가도리깨가없어졌다며작대기를두어개빌려주셨다. 도리깨보다는이게훨씬더잘된다는말씀과함께. 마대자루는많이있으니그냥가져도되지만작대기는꼭돌려주라는당부와함께였다. 작대기는말그대로작대기, 손가락두개정도두께의어찌보면아주평범해보이는나뭇가지이다. 뭐이런나뭇가지, 다시주워다쓰면되지... 싶은생각이들어다시살펴보니할머니의손때가묻어맨질맨질한데다가뭔가범상치않은느낌이다. "할머니, 이건언제부터쓰시던거예요?""오래되얏지. 손에꼭맞는것을새로구하기가쉽지않으니꼭가져다줘야혀.""네,  후딱쓰고꼭돌려드릴게요."하고가져다가호밀타작을했다.


탁 탁 탁


우리집에있는도리깨는플라스틱으로되어있는신형도리깨이다. 가벼운재질이긴하지만, 공중에서빙돌려서탁탁내려치는것은조금만해도땀이날만큼힘이든다. 내리치는힘때문에튀어오르는알곡들이저만치날아가기도한다. 아마기술이부족해서그럴것이다. 하지만할머니의작대기는편하다. 한번두들길때털어지는양은조금적을지몰라도앉아서탁탁탁두들기면껍질사이에서톡톡알곡이쏟아지는것이보인다. 할머니는이걸로참깨도털고, 메밀도털고, 콩도털고그러시는걸까. 나도마당에철푸덕앉아서작대기로호밀을탁탁두들겼다. 한참을탁탁두들기다보면"생떼같은자식들은밥달라고울어대고집나간서방은어디가서아니오나~"하고어디서들어봤을법한노동요한자락을구시렁구시렁읊어대어야할것같은기분이된다. 그렇게두들기고있자니동네할머니들몇분이저만치버스정류장에앉아서짐짓모른채구경을하신다. 나도모른척탁탁탁탁탁탁. 알곡이들어차서단단했던이삭위로작대기가지나가고나면허리가구부러진쭉정이가되어풀풀날아가고어느덧호밀이바닥에수북해진다. 그렇게나온호밀은다시키로까불려서섞여있는까시래기며자잘한쭉정이를날려보낸다. 해본적도없는키질이지만이장님이지나가시다가잘한다고칭찬도해주시고. 이래하는것이맞나하면서한참을까불리다보면어느새알곡만남아있다.
이번에수확한호밀은사실작년에수확했어야하는것이었다. 다년생작물도아닌호밀을어떻게 2년만에수확했을까. 2년전에호밀빵을만들겠다는큰꿈을안고사다심은호밀. 10키로를사서 8키로를뿌렸다. 사람키보다훌쩍컸던호밀은더디익었고, 채다익기도전에장마를맞아모두쓰러져자연으로돌아갔다. 호밀은이제안되겠어하고마음을접고그자리에밀을심었는데, 사이사이에키큰호밀이다시자랐다. 콤바인이밀을수확하는동안듬성듬성자란호밀을모두끊어다가놓았다. 그렇게 2년만에수확한호밀을장맛비안맞히려고문간에쌓아뒀다가 20일만에털어내었다. 털고까불린시간이부끄럽게도 2키로가채되지않는다. 돈을벌기위한농사였다면절망스럽기그지없는결과다. 세간의산술법으로는투자대비 75프로의손실을본셈이다. 그런데도생각이없는건지용감한건지다시심어내년봄엔하늘거리는호밀을보고싶어진다. 하늘과땅이다시키워준귀한 2키로의종자는올해 10월이오면일찍땅에심어야지. 다른풀들에치이지않도록풀씨안떨어지게잘관리한땅에다뿌리고내년엔빵을만들수있을만큼의호밀을수확하리라. 아마그때는작대기로털어내기는너무많을지도모르겠다. 탈곡기를구해다가탈탈탈탈털어내어야지.


두월댁할머니의작대기를돌려드리러가야겠다. 고추장만들때쓰실밀한말을갖다드려야지. 겨우내고아서만든조청을넣고한여름순창의태양에뜨겁게익은고추를빻아만든맛있는고추장한병쯤은얻어먹을수있을것이다. 그리고두월영감님께는집에서담근막걸리한병을갖다드리고이렇게얘기해야지.


"작대기하나깎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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