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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 | 연재 [SNS 속 세상]
'합리적 의심'을 권하는 사회
로맨스 스캠 Romance Scam
오인영(2018-08-30 11:18:55)



SNS를 통한 낯선 이성의 접근, 로맨스 스캠

얼마 전, SNS에서 '친구 신청'에 관한 지인의 최근 에피소드를 보았다. 낯선 이성으로부터 친구신청이 들어왔는데 꽤나 호감이 가는 모양이었다. 에피소드를 읽어보다가 덧글을 보니, 주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조심하라'며 웃음 섞인 투로 조언을 하고 있었다. 한 지인은 이렇게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내가 너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개방적인 외국 남자라도 그렇게 잘생기고 배경이 좋은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 이전에 이렇다 할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영어를 쓰지도 않는 한국여자에게 대체 뭘 보고 친구신청을 했겠어. 사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SNS에서 본 생면부지의 사진 한 장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건 좀 수상하지 않아? 잘 생각해봐. '스캠'일지도 몰라."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이성적인 조언이다. 사실 나도 이 의견에 한 표를 보탰다. 여기서 말하는 이른바 '스캠'은 정확하게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다. '로맨스 스캠'은 SNS나 채팅 앱을 통해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뜯어내는 근래의 사기수법으로,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면 결혼이나 연애를 빙자해 돈을 뜯어내기도 해서 '감정 사기'라고도 한다.


타인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저열한 사기'

사실, '스캠' 자체는 신종 사기는 아니다. 1980년대 편지를 사용할 때부터 기업 간 거래금액을 갈취하던 '스캠'은 근래 들어 이메일을 이용하게 되면서 기업의 이메일 정보를 해킹해 무역거래 대금을 가로채는 온라인 사기 수법을 뜻하게 되었고, 악성코드를 활용하는 등 갈수록 지능화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기업을 대상으로 하던 사기가 이제 개인에게도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대체 이런 걸 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하는 사람이 너무 바보 같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뉴스에 나온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다보니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 연령대는 40~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의 피해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대상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누구나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누군가의 조건 없는 호의를 받는다면? 물론 처음에는 경계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 이면에 있는 것이 할리퀸 소설에서 나올 법한 '백마 탄 왕자'에 대한 선망이든, 이제는 사라진 '호혜적 관계'와 '환대'에 대한 열망이든 간에 말이다.


'합리적 의심'을 요구하는 사회

전문가들은 이런 '로맨스 스캠'과 그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SNS상 무분별한 친구 추가를 자제하며, 지나친 개인정보 노출을 지양하고, 인터넷상 교제도 신중을 기해야 하며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미 그런 조언을 듣기 이전부터도 나는 프로필에 아무것도 없는 친구추가 신청이나 모르는 외국인들의 친구신청은 잘 받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런 내용을 들은 후로는 무의식적으로 친구신청에 대한 거절이 훨씬 더 높아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다보면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생각도 든다. 사실 SNS의 비약적인 발달도 어쩌면 현대인의 '정서적 허기'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지만, 이제는 그 관계에서 마저도 타인의 외로움이 누군가에게는 '돈벌이'가 되는 저열함이 슬프다. '합리적 의심'을 권하는 사회, 누군가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누군가는 점점 더 외로워지는 우리 시대의 씁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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