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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칼럼·시평 [문화칼럼]
'살아 숨쉬는 전통'을 만드는 일
천진기(2018-09-17 10:34:42)



서울에서 박물관 생활을 1988년 8월부터 만 30년간 하고, 2018년 7월 1일자로 국립전주박물관 책임자로 발령을 받아서 가족과 전주로 내려왔다. 가족이 함께 온 것은 전주를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 전주에서의 생활을 내 삶의 온전한 일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전주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주양반, 한지, 소리, 서예, 국제영화제, 모악산과 금산사, 비빔밥, 삼천동 막걸리, 콩나물국밥, 모주, 가맥, 남부시장 등등 이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의 문화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경기전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예로부터 국가의 녹(祿)을 먹는 사람은 그 지역으로 처음 부임해 갔을 때, 큰 어른들께 인사 올리는 것이 최고의 도리이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갈 바도 모르고, 갈 곳도 없게 하는' 이번 무더위로 인해 여러 어른들께는 손편지로 우선 인사를 올렸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경기전'이었다.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박물관에 30년을 근무한 필자로서는 경기전 참례는 마땅히 첫 번째로 해야하는 일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우선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을 동시에 책임지고 계시는 이동희 관장님께 경기전에 꼭 참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이희정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전라북도지원 전례담당이사님을 소개 받았다. 이희정 이사님께 전화를 드린 후, 이차저차 하여 경기전에 참배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평상시 참배는 힘들고, 음력 매월 초하루에 분향례가 있으니, 8월 11일이 음력 7월 초하루에 오라고 하셨다. 이때까지는 일반인들과 함께 참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7월 초하루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경기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필자에게 엄청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몇몇 전주이씨 종친 어르신들이 제실 앞에 모여 계셨고, 마당에서 수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재실(齊室) 안으로 들어가 헌관의 제복을 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 평범한 참례가 아니고, 경기전 초삭 분향례에서 내게 헌관의 임무가 주어졌다는 것은 분향례에 헌관은 한 사람 뿐이니 그 날 최고로 중한 자리인 것이다. 그냥 일반인으로 참례하겠다고 사양을 했으나, 지금까지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는 처음으로 경기전 초삭 분향례에 참석하겠다고 했으니 그 감사로 꼭 헌관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안동 촌놈이 전주에 와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 순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민속박물관은 내가 근무할 당시에 이들 기관들은 경복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30년 동안 경복궁으로 매일 아침에 입궐하고, 저녁에 퇴궐한다고 평소 자랑했는데, 그 공덕으로 경기전 헌관의 영광이 온 것 같았다.

이 날 필자는 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들고, 흑초의를 입고, 패옥 후수, 폐슬, 대대, 버선, 제화 등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헌관이 되었다.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 태조어진 앞에서 분향을 하고, 4배를 올렸다. 저절로 그 마음과 정성, 그 경건함으로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박물관의 앞날을 기원했다.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종래의 문화재는 점(點)의 개념이었다. 유형, 무형, 기념물, 민속자료 등의 각 문화재는 개별적으로, 독립적으로 지정되고, 원형유지(原形維持)를 기본 원칙으로 했다. 특히 유형문화재의 경우, 개개 문화재의 원형유지, 좀더 심하게 표현하면 외형상 원형유지가 최상의 문화재 보존관리 정책이었다. 실제로 그 문화재가 배태(胚胎)된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주위 자연경관(自然景觀;Landscape) 등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필자의 기우를 비웃기라도 한 듯이 경기전은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다양한 의례가 어우러지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전주이씨종약회의 전승주체 덕택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문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문화는 체험이고 소통이다. 문화 소비자들은 역사와 문화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여 체험하고 체득하기를 원한다. 참여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진정 사랑하게 된다. 겉으로만 보아왔던 경기전에 헌관으로 직접 참석하면서 전주를 알게 되었고, 전주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미 온전하게 전주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전주에 새로 부임하는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필자처럼 경기전 초삭 분향례에 직접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음력 매월 초하루에 행하니 일 년이면 12명의 기관장이 참석할 수 있다. 참석한 이 분들은 아마 전주의 최고 최상의 문화와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평생 전주를 마음에 담고 응원할 것이다.
전주는 신석기시대 농사혁명 이후 몇 천년동안 최첨단 물질인 '쌀'을 생산하는 오늘날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기술 단지였다. 또한 오랫동안 풍부한 물산이 생산되고 모이는 곳이었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유산이 배태되고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문명은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화, 정보화, 4차산업 등으로 변화되어 오면서 전주의 미래는 그렇게 희망적이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주는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이에 대응할 만한 문화적 구심점을 구축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꿰고, 갈래짓고,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한다. 다양성 유지와 보존, 창조적 계승과 생활화를 통해 '살아 숨쉬는 전통'을 구현해야 한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는 인간지식, 정보, 문화가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 혁신성과 실험정신, 다양성과 유연성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그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핵심에는 '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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