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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특집 [완주문화재단의 완주 한 달 살기]
예술가와 주민의 관계 맺기, 더불어 사는 세상
(2018-09-17 10:56:35)

지난해 진행됐던 '완주 한 달 살기'가 보완을 거쳐 올해 다시 가동됐다. 완주 한 달 살기는 빈 집, 빈 방, 빈 창고 등 마을 내 유휴 공간을 작가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예술가에게는 낯선 일상에서 오는 예술적 영감을, 주민에게는 일상 속에서 예술과 마주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회째를 맞이한 올해에는 기간을 한 달, 100일, 열 달로 다양화했으며, 참가 자격을 크게 완화해 인원도 확대했다.
군 단위 지자체로는 드물게 인구가 늘고 있는 완주군이지만, 농촌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비어 있는 집과 기능을 멈춘 공동 작업장의 모습이 적지 않다. 그러한 고령화와 저출산의 여파 속에서 문화의 변방으로 전락해 가는 농촌에 새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완주 한 달 살기 작가들. 완주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참가하게 됐다는 미디어아트 작가 임세진 씨와 아름다운 완주의 자연 환경을 동경해 신청하게 됐다는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 씨를 만났다. 젊고 풋풋한 열기와 주민과의 따스한 교감이 느껴졌다.



나눔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다

- 미디어 아티스트 임세진
완주 한 달 살기에 참가하기 전에는 완주군을 아예 몰랐다는 임 씨. 올해에는 기간까지 늘려 100일 참가자로 다시 완주를 찾았다. 대체 어떤 매력이 그를 이곳 완주로 도로 불러들인 걸까?
그와 만난 지난 8월 1일은 그가 완주 100일 살기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줄곧 서울에서 미디어아트 작업을 해온 도시 사람이었지만, 지난해 완주 한 달 살기 참가 후 귀촌을 한다면 완주로 오겠다고 할 정도로 열렬한 완주 팬이 됐다. 지난해에는 친구와 함께 신청해 각각 한 달씩 서로의 숙소에서 묵으며 두 달을 완주에서 지냈다. 그때 지냈던 운주면 용계원마을과 고산면 원오산마을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해 올해에도 다시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완주에 오게 된 계기는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해서였다.
"신청하기 전에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일이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에 매몰돼 간다는 게 무서웠어요. 자신의 예술 작업을 위해서라도 전환점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자신이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레지던시를 통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삶에는 충분한 휴식과 충전이 됐다. 주민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관계성도 도시에 있을 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주민과 관계 맺기의 일환으로 영화 상영회를 두 번 진행했어요. 작은 TV 화면이 아니라 넓은 장소에서 제대로 된 상영을 하고 싶었어요. 극장을 접하기 어려운 분들이어서 더욱 진짜 극장처럼 신경을 썼어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마을 분들을 보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어요."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눔은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라는 사실을 그는 그때 실감했다고 한다. 상영 직후 겪었던 할머니와의 우스운 일화도 그에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는데, 한사코 거절하다 그럼 차 있는 데까지만 부축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백발이 성성한 분이어서 설마 직접 운전하시나 의아했는데, 가서 보니 그 차라는 게 유모차더라고요. 그때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요."
그에게 완주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서울에 있을 땐 높은 건물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만이 내가 있을 장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완주는 달랐다. 어딜 둘러봐도 탁 트인 공간이 나를 반긴다. 그런 풍경을 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인생에 돌파구가 필요할 때 완주를 방문해 보길 바란다. 틀림없이 좋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다

-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
완주군 구이면 안덕마을에서 완주 한 달 살기를 경험하고 있는 박 씨는 올해 졸업을 앞둔 가야금 전공 학생이다. 오는 9월 7일 가야금 솔리스트 데뷔를 앞두고 있으며, 스웨덴에서 기타와 팀을 이루어 2년간 활동한 적도 있는 실력파 연주자다.
자연의 소리를 음악에 담고자 하는 그에게 완주는 그야말로 딱 맞는 작업 공간이다. 모악산, 고산, 구이저수지 등 풍요로운 완주의 자연 환경에 여기서 지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본래 도시의 콘크리트보다 시골의 자연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덕마을에서의 생활도 금세 익숙해졌다. 이제는 집 안으로 숨어드는 벌레와도 태연히 인사를 나눌 정도"라며 자연에 대한 한결 같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마을에서 가깝게 지낸 것은 자연만이 아니었다. 붙임성 좋은 성격 덕분에 마을 주민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주민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새벽 산행에도 동참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씩 가야금을 튕겨드리면 너무 좋아하셔서 오히려 연주할 때마다 내가 에너지를 받았다"며, 지난 3주간의 레지던시 생활을 반추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취향에 맞는 옛 곡도 연습했는데, 그때 노래 가사를 들으며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그분들의 심정도 알게 됐어요. 노래를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단 사실을 다시금 체감한 순간이었어요."
힐링마을로 유명한 안덕마을에는 요양 차 거주하는 주민도 많아, '치료하러 왔는데 이렇게 좋은 음악까지 들려줘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뿌듯한 한편,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훌쩍 3주가 흐르고, 레지던시를 마무리해야 하는 4주차에 접어든 그에게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애매한 기간"을 언급했다.
"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레지던시로 할 것인지, 아니면 개인 창작을 위한 레지던시로 할 것인지 확실히 정해야 할 것 같아요. 두 가지 목적을 함께 쫓는다면 한 달 레지던시는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최소 두 달은 되어야 주민 교류와 작업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정작 자신은 완주 한 달 살기가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계획했던 작곡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특별히 아쉽지는 않단다. 이곳에 와서 받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회만 된다면 아예 귀촌을 하고 싶어요. 그 정도로 좋은 기억과 추억을 쌓았어요."
완주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 완주 한 달 살기는 이제 막 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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