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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문화현장 [연석산미술관을 가다]
산 속 깊은 그 곳, 동상면에 핀 세 송이 꽃
이동혁(2018-09-17 11:08:39)



오지에도 꽃은 핀다. 대한민국 8대 오지 중 한 곳, 완주군 동상면에서 연석산미술관(관장 박인현·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레지던스 입주 작가들이 예술의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도로가 개설돼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주 도심에서도 4~50분은 걸리는 거리. 불편할 법도 한데, 작가들은 오히려 오지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미술관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폐석산의 장엄함과 울창한 자연 속에서 작가들은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4주간 펼쳐진 그들의 전시를 들여다보았다.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24일까지 4주간 연석산미술관 레지던스 입주작가 상반기 성과발표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연석산미술관의 첫 레지던스 결과 보고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다.
올해 초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의 레지던스 사업에 선정된 연석산미술관은 온라인으로 입주작가를 모집, 총 열세 명의 국·내외 신청자 중에서 강은지, 신선우, 이보영, 장우석, 마티 밀러, 조야 샤린 후크 등 여섯 명의 작가를 선발했다. 이들 중 강은지(3월~8월), 장우석(3월~5월), 마티 밀러(6월~9월)가 상반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에 참여했고, 미술관 측이 마련한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풍부한 미술 담론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7월 28일과 8월 11일, 각각 2주간 두 차례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마티 밀러 작가의 'Misery Index'전이다. 사진작가인 그는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전북 익산의 폐가에서 수집한 750여 장의 사진들을 전시했다. 약 6.2m, 전시장 세 개의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의 규모도 놀랍지만, 앞면이 아니라 뒷면을 전시했다는 점이 또 다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반환되는 질문은 자기 자신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는 평론가 성완성의 말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작가와 매칭을 벌인 평론가 조관용(미술관담론 대표)는 "자신의 역사에 관한 것이자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자아와 타자, 사물과 삶의 세계, 색채와 소리들을 하나로 일체화시킴으로써 자아를 탐구하는 고대 동양적 사유의 패러다임으로 향해 있음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다"고 평했다.
8월 11일부터 진행된 성과발표전 2부에서는 강은지, 장우석 작가의 전시가 전시실 1, 2에서 나란히 진행됐다. 두 사람은 각각 평론가 조관용, 김상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와 매칭하여 작품 담론을 제시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강 작가는 지난 3월 연석산미술관 레지던스에 입주하면서 스튜디오2 앞의 텃밭에 덩굴풀인 풍산초를 심었다. 작가는 풍산초를 가꾸는 내내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그 낱말을 제목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풍산초 잎의 꼭짓점 위치가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잎들의 접점을 음표로 만들어 소리를 들려주는 특별한 작업도 진행했다.
조관용은 "강한 자극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이미지들이지만, 그의 작업을 바쁜 일상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돌아보게 되는 사색의 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화 전공인 장 작가는 전통적인 초상화를 재해석해 각 인물의 개별성을 확보했다. 초상화 속에 묘사된 불투명한 유리들은 인간의 시선이나 알려진 인물의 이미지를 훔치며, 진실이라는 뒷이야기를 숨긴다.
김상철은  "전통의 안정성 위에 자신이 속한 시대성을 더함으로써 그 미묘한 접점을 포착하고자 한다"며, "세밀한 묘사와 진실된 표현을 전제로 하는 전통 초상화를 함축과 생략이라는 전혀 다른 조형 방식을 통해 해석해 냄으로써 일반적인 '전신'의 한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평했다.
장우석을 강사로 7월부터 8월까지 총 8주간 연석산미술관에서 민화 강좌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역 주민 열다섯 명과 레지던스 입주작가들이 함께한 이번 강좌에서 참여자들은 민화 그리기를 통해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16년 10월 개관한 연석산미술관은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박인현 교수가 젊은 작가와 제자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는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던 전북대학교 예술진흥관이 문을 닫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고, 자연 경관이 수려한 동상면을 눈여겨보고 있던 중 연석산미술관을 개관하게 됐다. 이름 있는 작가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는 설립 취지대로 청년 작가 초대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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