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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 | 인터뷰
여자에서 엄마로, 두 사람의 약속이 그려 낸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을 기획한 배우 이혜지와 박영준 무대 감독을 만나다
이동혁(2018-10-31 12:29:20)



10년 전 '여자, 서른'을 선보인 배우 이혜지가 '여자, 마흔'으로 다시 무대 위에 섰다. 지난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이번 공연에서 그는 주인공 하소연 역을 맡아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가 된 평범한 여자의 고군분투기를 담아냈다. 그와 더불어 여자, 마흔 무대가 오르기까지 그와 이인삼각을 하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박영준 무대 감독도 이번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로자다. 동갑내기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을 만나 이번 무대와 연극인 부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같은 길을 가는 부부인데 어떤 인연이 있었습니까. 연극계에 들어선 계기도 듣고 싶습니다.
이혜지 :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으로 입시를 준비했는데, 원했던 대학을 떨어지고 전문대를 가게 되었는데 동아리에서 연극 활동을 하다가 졸업을 하고 바로 창작극회에 입단 했습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나 친구로 지내다 부부가 됐네요(웃음).


박영준 : 저도 대학 동아리(우석대 '무제')에서 연극을 시작했어요. 저와 아내 모두 연극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동아리를 통해서 연극을 시작한 경우죠. 2학년 때 졸업한 선배님이 극단에 가서 같이 해보자고 권해 극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군대를 다녀와서는 창작극회로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아내를 만났어요.
2003년 교제를 시작했는데, 아내와 사귈 때 했던 작품이 '나루터'라는 작품이었어요. 작중에서 아내는 형의 여자친구로 나왔죠. 함께 무대에 오르면서 부부나 연인으로 나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형의 여자친구거나 할머니와 손주 사이로 무대에 올랐었어요.(웃음).


두 분 다 동아리를 통해 연극을 시작했는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까.
이혜지 :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고 입시 때가 되니까 나는 뭘 해야 되지, 급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연극영화과나 갈까, 그런 마음으로 준비를 했어요. 그러니 입시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죠. 그러나 연기는 계속 하고 싶었으니 동아리를 들어갔죠. 진지하게 연기를 하는 연극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박영준 : 저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연예인 뒷바라지 못해 준다, 그러시는데 저는 군대에 가서도 연극에 대한 관심을 못 버렸어요. 계속 안 된다고 하시길래 연예인 될 생각 없다, 그러나 직접 벌어서 앞가림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죠. 이후 연극의 길을 계속 갔어요. 저와 아내는 연예인의 길을 꿈꾸는 사람들은 아니예요. 저도 아내도 바라보는 관점이 거의 비슷했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 아닌 연극인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이혜지 : 입시를 준비하면서 연극을 처음 봤어요. 연극영화과 입시생이라고 하면서 '남자충동'이라는 연극을 처음 봤는데, 너무 재미있고 새로운 세계인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와는 정말 달랐어요. 그때 연극에 푹 빠져서 원서도 연극학과로 바꿨어요. 그 후부터 연극 배우가 꿈이 됐죠. 내가 살고 있는 고향 전주에서 어느 극단에라도 들어가 연극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게 꿈이었어요.


박영준 : 그런 작품이 있어요. 어떤 공연을 보고 나서 저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있어요. 저는 '그 여자의 소설'이라고, 오진욱이라는 배우가 했던 공연을 보고 저런 연극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대학교 선배님이시기도 했고. 그 선배님 보고 멋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함께 활동하셨는데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혜지 : '상봉'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이 전국연극제 나가서 대통령상을 비롯해 네 개 부문을 석권했어요. 당시 남편이 북에서 내려온 손주 역을 맡고 있었죠.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국정원 직원과 같이 상봉을 하는 장면이었어요. 대사는 없지만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었어요. 고모는 애가 타게 기다리고 있고, 이제 손주가 나와서 부둥켜안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남편이 나오지 않은 거예요.


박영준 : 리허설하면서 자켓에 하얀 가루가 묻었어요. 출연 전에 뜬금없이 그걸 발견하고 지우다가 등장 음악을 못 들은 거예요. 등장 음악과 퇴장 음악이 똑같아서 뒤늦게 듣고 나갔더니 그게 퇴장 음악이었던 거예요. 난리가 났죠. 제가 안 나았으니. 순간, 내가 망쳤구나, 하는 좌절감이 몰려오는데,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그 다음 장면이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인데, 눈물이 엄청 쏟아지는 거예요. 내가 이 공연을 망친 것 같아서 오열을 했어요. 어차피 눈물을 흘려야 되는 장면이었는데, 그 눈물이 진정성 있는 연기처럼 보엿나봐요. 잊을 수 없는 일이었죠.



 '여자, 서른과 여자, 마흔'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박영준 : 2008년에 서른 살 되기 전에 모노드라마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연애하면서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배우 김성녀씨의 '벽 속의 요정'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거죠. 그런 모노드라마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분 공연을 보면서 하게 된 것 같아요. 남이 하고 있는 모노드라마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 작품 하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도 안 줘요. 그래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최기우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 여자, 서른을 만들게 된 거죠. 그리고 또 당시에 농담 반 진담 반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인생 프로젝트로 10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자고. 그래서 여자, 마흔을 준비하게 된 거예요. 동료 연극인들한테는 이렇게 말해요. 이번 공연 못 보면 여자, 쉰까지 10년 기다려야 한다고(웃음).


10년이란 시간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이혜지 : 10년이란 숫자가 어떤 상징처럼 돼버렸잖아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고, 보통 불혹이나 지천명, 이순 같은 단어도 10년을 단위로 하잖아요. 이번 공연 대사 중에도 불혹을 가지고 말장난을 한 게 있어요. 불혹이 아니라 어딘가에 딸린 부록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불혹은 흔들리지 않아서 불혹이 아니라 아무도 우릴 유혹하지 않아서 불혹이 아닐까, 라는 대사가 있어요.


박영준 :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쉰이 되면 또 다른 생각들이 많이 생길 것 같고, 그 세대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고, 시대에 맞게끔 시대성도 같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우리가 여자, 쉰을 쓴다고 해도 공감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때가 되어야지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주기를 저희는 10년으로 본 거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관객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 우리도 만족하지만 관객도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자, 서른과 여자 마흔에 담긴 주제는 뭐였나요.
이혜지 : 주인공의 컨셉이 라디오 DJ예요. 여자, 서른에서 DJ가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그날의 주제가 서른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불안하고 흔들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그런 서른에 대한 사연들을 받아서 라디오를 진행하는 동시에 서른을 맞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풀었어요. 주인공의 가족사가 드러나고 엄마와 할머니의 서른에 대한 이야기까지 극으로 끌어들였어요. 그 과정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자의 굴레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보통 엄마처럼 안 살 거라고 말하지만, 나이 먹으면 똑같이 닮아 가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여자의 딸이고, 이 여자도 그 엄마의 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자, 마흔에선 주제를 크게 두 가지로 잡았는데, 마흔 살 여자의 삶과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에요. 주인공을 통해 경단녀, 육아맘, 직장맘 등 마흔을 맞은 여자들의 고충과 불합리한 사회상을 보여 주고, 극 속 극으로 진행되는 라디오에선 시간을 다루었어요. 마흔이란 나이가 애매한 나이잖아요. 젊다고 하기도 그렇고, 늙었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파릇파릇했던 젊은 날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 돌아가고 싶은 순간, 바꾸고 싶은 순간, 멈춰 버렸으면 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다뤘어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요.
박영준 : 왜 배우 활동이 뜸하지, 왜 공연을 안 하지, 라고 아내에게 질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유는 한 가지예요. 아이들을 봐야 하잖아요. 대부분의 극단이 저녁에 연습을 한다고 하면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되기 때문에 연극 배우로서 활동을 못해요. 지금은 아이가 어린이집이랑 학교를 가는 세 살, 여덟 살이 되어서 아이들이 나가 있는 시간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어요. 아침 열 시부터 세 시까지 하고, 요즘에는 공연이 얼마 안 남아서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연습을 해요.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아요.


연극활동을 하면서 아이 키우는 일이 아무래도 가장 큰 어려움이겠군요.
이혜지 : 모든 엄마들이 다 안고 있는 문제겠죠. 결혼 초에는 나 혼자 누리는 자유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 화장실도 잘 못 가요. 다 참아야 돼요. 저는 첫 애 낳고 울었던 게 산후우울증 그런 것 때문에 울었던 게 아니라 세수하고 싶어서 울었거든요. 이런 건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아이가 많이 어리면 밥도 싱크대에 꺼내 놓고 대충 먹고 그래요.  내 몸의 자유가 없어지는 거예요.


앞으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이혜지 : 8년만에 복귀하는 거라서 지금 당장은 여자, 마흔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고, 그 이후에 여력이 되고 시간이 된다면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다른 무대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박영준 : 우진문화공간에서 공연 기획 제작 쪽과 공연장 운영 쪽의 일을 하다 보니까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의 활성화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거든요. 활성화가 많이 되고 있어서 이제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보려고 해요. 결국 직장이 미래의 목표가 되는 것 같아요. 더 나은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희망을 갖고 일하고 있고,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모습도 보고 있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열정이 식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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