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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 특집 [2018 전북독립영화제를 돌아보며]
오늘은 넘어져도 '내일은 격파왕'
임연주(2018-12-31 11:38:33)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열리는 영화제가 있다. 매해 11월 초에 열리는 이 영화제도 어느덧 올해로 18번째를 맞이했다. 전북독립영화제. 아직 전북도민에게 낯선 영화제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생소했다. 진지하거나 무거운 마음에서 비롯하여 이 영화제를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당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프랑스 영화 읽기'라는 수업의 강사였던 유순희 선생님(현 전북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이 영화제를 수강생들에게 알려주었다. 궁금증이란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처음 듣는 영화제에 관객으로 참여했던 것도 벌써 6년이 되었다. 2013년 자원활동가, 2014년 스태프, 2015년부터 올해까지 관객심사단으로 참여하면서 이제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영화제이다. 이 영화제에 짧지 않은 시간을 참여했기 때문에 애정이 생기게 되었을까? 감정적인 친밀함도 있겠지만 전북독립영화제만의 특색이 나를 계속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이번에도 관객심사단으로 임한 입장에서 이 영화제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상영 프로그램은 모든 영화제에서 특히 공을 들인다. 그 이유는 관객의 관심도를 끌어내고 해당 영화제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올해 전북독립영화제의 상영표를 보고 다소 당황했다. 국내 여타 영화제에서 접하지 않은 영화를 선보이는 경향을 보여 온 전북독립영화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단편영화에서 처음 보는 제목의 영화들이 다수를 이루었다(장편은 다른 영화제에서도 한두번 들어본 작품들이었다). 미지의 것은 두려움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일으킨다. '어떤 영화들일까?', '전북독립영화제에서 선정한 것이니 믿을만하지 않을까?'. 상영작들에 대해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개막작은 예년과 동일한 구성으로 '마스터와 함께하는' 전북단편영화제작스쿨 선정작 1편과 3편의 초청작으로 이루어졌다. 몰카사건, 군입대, 취업난과 가족관계 등등 감독 각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볼 수 있었다. 경쟁섹션의 상영작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 커플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오성호 감독의 <눈물>은 마치 내가 그 커플의 한사람이었던 듯한 감정적 격동을 일으키는 수작이었다. 경쟁작을 다 본 후, 관객심사단은 한 식당에 모여 열띤 토론을 이어간다.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지고 색깔도 강한 작품들이 많아서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는 매년 관객심사단의 구성원이 바뀌어도 반복되는 일이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져 언제나 활기차서 지루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개인의 관점이 상이하고 그 의견들을 들음으로써 내가 간과했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점이 관객심사단을 매번 꾸준히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영화를 볼 때 한 번 더 다른 시선, 다양한 입장에서 보는 습관을 익히게 하였다.


개성이 뚜렷한 경쟁작들도 좋았고, 초청작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관객심사단은 경쟁작 전편을 봐야했지만 초청섹션은 자율적으로 관람하면 된다. 지역초청부문의 상영작 김호 감독의 <유라>, 문재웅 감독의 <김녕회관>, 엄하늘 감독의 <찾을 수 없습니다>, 허지은 ‧ 이경호 감독의 <신기록>은 다시 볼 수 있다면 꼭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작품으로 추천한다. 또한 전북독립영화제만의 독특한 초청섹션이 있다. <살롱 데 르퓌제>라는 섹션은 전북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초청 상영한다. 지역경쟁부문인 온고을경쟁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전북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전북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관객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크다. 만든 이의 노고를 알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기 마음 아픈 부분도 있다. '지역'이란 이름에 매몰되거나 작품의 한계를 합리화해서는 안 될 것임도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가 집담회였다. '전북독립영화협회와 함께하는 지역 영화 집담회 : 지역영화 활성화를 위한 지역영화인과 유관기관의 협력과 활동 방향성'이란 제목으로 박영완 전북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전주영상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하기로 했는데 불참하였다. 제작 투자를 받기 어려운 단편영화의 여건상 제작지원은 꼭 필요한 제도이다. 따라서 단편영화 제작지원을 하는 전주영상위원회와 의견 교환을 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 행사에서 전북지역에서 어떤 영화 제작 환경이 마련되어있는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영화 창작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고민을 들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제 기간에는 일회성인 행사였지만 영화를 만드는 지역민들이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한 만큼, '독립영화인의 밤'에서는 전국의 독립영화인과 교류할 수 있었다. 상영작의 감독, 스태프, 배우를 포함하여 심사위원과 타지역 독립영화협회 관계자 등등 전북독립영화제를 방문한 모든 이가 함께할 수 있었다. 다른 영화인과 정보 공유도 하고 영화 이야기도 하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자리였다.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어 앞으로의 영화 작업에 서로 도움과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든든한 영화 동료를 알게 되었다.


전북독립영화제의 색다르고 개성적인 상영작과 다양한 행사만큼 GV를 빼놓을 수 없다. Guest Visit의 약자인 GV에서는 영화의 감독, 배우와 관객이 질의응답과 감상을 나눈다. 다른 영화제에서 15분에서 30분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전북독립영화제에서는 약 1시간 가량 이루어지고,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심도있는 내용과 영화의 못다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눌 수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다가 의아하거나 질문이 생기는 순간이 있고, 창작자는 관객이 어떻게 봤을 지 감상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전북독립영화제는 GV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더레이터도, 관객도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진중한 의견을 보이고, 감독과 배우도 성심성의로 답변한다. 장시간으로 꾸려지는 GV는 관객과 창작자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라는 예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다른 한 축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토론이나 비평이 될 수도 있고 가벼운 수다나 단상이 될 수도 있다. 전북독립영화제, 특히 관객심사단을 통해 익힌 것은 영화를 대하는 자세,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고 함께하는 삶이다. 전북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인구 대비 영화관이 많고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관객층도 있다. 비평이 사그라진 시대라지만 영화를 말하고 떠드는 이가 지역에 있다면, 특히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에 대해 논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떨지를 상상을 하게 된다. 만들어지고 보고 논하는 순환적인 고리가 형성되면, 전북·전주에서 영화 문화가 삶의 곳곳에 스며들 것이다. 4년째 운영되는 관객심사단이 꾸준히 지속된다면 그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지만, 이는 전북독립영화제의 몫이 아니라 지역 영화 관련 기관 모두가 고려하길 바라는 부분이다).


2018년에 새로운 집행부로 바뀌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고 무사히 영화제를 마친 집행위원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의 영화공부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제에 비판보다는 칭찬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고민할 지점은 여전하다. 영화제가 지역 주민과 어떻게 발맞춰 나갈 수 있을지, 영화제가 지향하는 점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이를 온전히 전북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에 떠맡기기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고심하고 헤쳐 나가길 소망한다. 18년 동안 이어온 전북독립영화제는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더 많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과 트레일러처럼 오늘은 넘어져도 '내일은 격파왕'이 되길 바라며 문제점과 고민을 하나씩 깨고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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