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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 | 문화현장 [꽃장]
너무나 쉽게 빼앗겼던 그 이름
'꽃장' 이름이 도용됐다고?
이동혁(2019-02-25 15:18:15)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시작은 항상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꽃길'로 불리는 전주시 중노송동 문화1길도 그랬다. 칠순의 할머니가 대문 앞에 내놓았던 꽃 화분 하나가 이윽고 동네 전체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 사람이 내민 손 위에 차곡차곡 보태어진 갸륵한 손길들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꽃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역에서 활동하던 청년 예술가 여섯 명이 조금씩 힘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꽃장이었다. 여기에 자발적으로 모인 꿀벌들의 손길까지 더해지면서 꽃장의 의미는 더욱 각별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꽃장과 관련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주문화의집협회에서 진행하는 생활 문화 장터 포스터에 꽃장이란 이름이 쓰였단 소식이었다.


논란은 전주문화의집협회가 제작한 포스터가 지난 1월 5일 시중에 공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해당 포스터에는 꽃을 든 돼지 그림과 함께 꽃장이란 이름이 커다랗게 들어가 있었다. 꽃장 측은 이 포스터에 사용된 꽃장 이름과 관련해 전주문화의집협회 측으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논의나 협의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문화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꽃장 이름 도용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전주문화의집협회 측은 즉시 해당 포스터와 관련 홍보물을 폐기하고, '꿀돼지장터(꿀장)'로 행사 명칭을 변경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런 해명도 받지 못한 꽃장 측은 결국 지난 1월 11일, SNS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항의문을 전달했다.


저희 꽃장은 이번 모 단체의 포스터를 보고 심히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의미는 다르지만 꽃장이라는 이름을 도드라지게 제작한 의도가 무엇인지, 아울러 규모가 있는 단체가 민간 차원의 자발적 사업을 이토록 쉽게 여길 수 있는 현실과 이번 일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분위기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안타깝게도, 지역 안에서 응원이 아닌 조롱을 받는 듯하여 2019년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준비하는 꿀벌들(자원봉사), 꽃잎들(셀러), 꽃들(주체)까지 벌써 힘이 빠지고 지치려 합니다.
세대를 넘나들며 모두가 동료가 되는 일, 권력의 구조가 사라지고 수평의 지형에서 함께 걷는일,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다문화의 지형이 지금 이 곳에서부터 시작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해당 게시글이 달리고, 약 여섯 시간 뒤엔 전주문화의집협회 측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과글도 올라왔다.


꽃장(꽃돼지장터)명칭관련 본의아니게 물의?를 일으켜 사과드립니다. 꽃장관계하시는 분들을 절대 폄하할려하거나 꽃장의 명칭을 도용?하려 했던것도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아직 행사전이여서 명칭을 변경, 관련 홍보물을 다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꽃장대표님과 구두로 오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주문화의집협회 생활 문화 장터 행사와 관련해 홍보물 제작을 담당한 전주 삼천문화의집 최기춘 관장은 “올해가 돼지의 해여서 처음 행사 이름을 논의할 때 돼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후보로 금돼지, 꿀돼지, 꽃돼지 등이 나왔는데, 그림 속 돼지가 꽃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꽃돼지장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줄여서 꽃장이라 불렀을 뿐, 민간 단체인 꽃장의 이름을 도용할 생각은 없었다”며, “포스터를 공개하고 인후문화의집 김현갑 전 관장으로부터 꽃장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즉시 해당 포스터와 홍보물을 폐기하고 다시 제작했다”고 전했다.


규모 있는 단체의 이 같은 횡포에 대해 실망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우리 지역 문화 구조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 하겠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논란에서 꽃장의 이름을 사용한 전주문화의집협회 측에게 물론 법적인 책임은 없다. 하지만 마땅히 지켜야 할 도의라는 것이 있다. 특히, 2016년부터 진행돼 온 꽃장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상대 단체를 존중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큰 것이 작은 것을 압도하는 잘못된 문화 풍조가 바로잡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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