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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연재 [홍PD가 만난 청년, 그들]
형식에 대한 탈피, 무용의 '확장성'에 목숨을 걸다
공연제작자 오해룡
홍현종(2019-05-31 15:36:38)

예술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무용이 그렇다.
우리가 연극을 보고, 음악을 듣고, 미술을 감상할 수는 있으나, 무용을 접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무용으로 전라북도를 대표해보겠다는 젊은 예술가가 등장하였으니, 무용하는 사람 오해룡(40)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본인이 생각하는 오해룡은 어떤 사람인가요?
"공연제작자 오해룡입니다. 물론 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으로부터 저의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공연 제작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 무용은 언제 시작하였나요?
"중학교 때, 무용이 아닌 춤을 추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추는 스트리트 댄스 수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서태지의 컴백홈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따라 추는데, 춤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고향인 남원 춘향예술회관 입구를 거울삼아 매일 밤 연습하고는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전주에서 열린 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석대 손정자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발레가 전공이셨는데, 저에게 무용과를 추천해주셨고, 고민 없이 우석대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 무용과는 어떠셨나요?
"1학년 1학기 때, 발레를 처음 해봤습니다. 발레는 제가 추던 춤과는 다른 춤이었고, 제가 원하던 춤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1학년 말에 실용 댄스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공부하러 갔었는데, 그때 전미례 재즈무용단 대표님과 박명수 안무가를 만났습니다. 재즈댄스를 전공하신 분들인데, 그분들로부터 모든 움직임의 기초는 '발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군무의 형식은 물론 몸동작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발레였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발레가 좋아졌고,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은 발레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20대는 발레학원에서 살았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발레였기에 밤낮없이 연습해야만 했습니다. 군에 입대하기 전날에도 학원에서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대 내무반에서도 몸이 굳을까 항상 스트레칭을 해야만 했습니다. 발레는 제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 그 이후로도 발레를 지속적으로 좋아하셨나요?
"2006년 신선호 안무가를 학과 특강시간에 만났습니다. 뮤지컬 안무를 담당하시는 분이셨는데, 강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서울 강남의 스튜디오로 찾아가 3년을 배웠고, 신 교수님 주도로 2007년 '포스댄스컴퍼니'를 창단하였습니다. 기존 교수님들과는 다른 이분 무용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는데, 그 근원이 미국에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2010년 LA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데 언어가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복합무용, 융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라스베이거스에 갔었는데, '카쇼', '오쇼', '르레브' 공연을 보았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무용을 계속하려면, '무조건 따라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하였습니다. '관객이 재미있어야만 한다'는 저만의 공연 철학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 기존 무용 전공자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수님들은, 무겁고도 진중하게 춤을 대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춤에 대해서 고정되어 있는 무엇이 있는데, 제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형식을 탈피해야만 성공한다'고 결론 내린 저로서는 더 이상 도움을 받을 것도, 도움을 드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발레와 같은 순수 예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용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다양한 종류의 춤과 발레가 함께 가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해룡'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하셨나요?
"대학 졸업 후에 무용학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생계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입시생 위주의 학원이었는데, 4년 정도 지나니 '내가 학생들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용만 가르치고, 진학만 시키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활동할 곳이 없는 후배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먼저 개척해보면 어떨까 하는 용기와 사명감이 생겼고, 직접 공연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배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흥행까지 거둘 수 있다면, 일자리 창출과 무용 인프라 확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2010년 우석대 후배들과 '판타스틱'이라는 작품을 제작해 삼성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습니다. 처음 제작한 작품이었지만,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작품을 우진문화공간에서 공연하였는데, 이 공연을 계기로 우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우진문화공간에서의 성과는 어떠셨나요?
"2014년과 2015년 '포스댄스컴퍼니'로 우진문화공간 상주단체 활동을 하였습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년간 총 5개의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우진의 지원금 4천만 원으로 '판타스틱 정글', '판타스틱 앨리스', 판타스틱 아쿠아' 총 3작품을 연속으로 제작하였습니다. 관객이 즐거워할 요소를 최대한 반영한 작품들이었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부족한 제작비로 세 작품을 만들다 보니 의상은 물론 무대까지 단원들과 직접 제작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남원 고향집 창고에 세트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만의 작품이 정해지니 오히려 편해진 면도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이 작품들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용과 소품 등은 꾸준히 개선하고 있습니다."


- 부안으로 이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간법인은 상주단체를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기고, 우진문화공간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부안예술회관에서 온 가족을 대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팀을 찾고 있었고, 저희가 나름 적합한 팀이었습니다. 더욱이 클나무오케스트라가 상주단체로 기존에 활동하고 있었기에, 오케스트라와의 콜라보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주저 없이 옮기게 되었습니다."


- 부안에서의 활동은 어떤가요?
"전주는 경쟁이 심하고, 대형 공연이 많이 있기에 오히려 부안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부안은 제게 '판타지' 그 자체입니다. 가는 곳마다 환상적인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부안앞바다 '개양할미' 설화를 2시간 동안 길에 서서 지역 어르신으로부터 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부안처럼 문화자원과 설화가 많은 곳도 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안은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 영화 같은 곳입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무용을 활용하고 작품을 제작해오던 오해룡 대표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춤을 활용한 '퍼레이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퍼레이드를 도입한 이후 그의 활동은 확연히 달라졌다.


- 퍼레이드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디즈니의 영화 '모아나'를 보았습니다. 하와이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지역의 작은 설화가 모티브였고 그 작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공략하는 그들의 전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저희에게는 개양할미 설화도 있고, 마고할미 설화도 있으니까요. 저 자신부터 이러한 흥미진진한 설화가 우리 지역에 전해지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이러한 설화를 모르는 이유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지역의 설화를 세상으로 꺼내놓겠다고. 설화를 바탕으로 공연을 만들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퍼레이드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해룡 대표가 생각하는 퍼레이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공연을 공연장에서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안에 와보니 다양한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봄철에 열리는 '마실축제'가 유명한데, 이 축제의 현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해 '개양할미' 퍼레이드 퍼포먼스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작품을 제작해보니 퍼레이드 장르의 장점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역의 정체성을 관객과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용의 정체성을 확장하기에 적합한 장르라는 것입니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을 생각해보면, 성공한 퍼레이드 축제가 어떤 모습일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축제는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개별적인 공연과 달리 예산을 활용하기에도 훨씬 수월한 장점도 있습니다. 퍼레이드와 스토리가 만나 하나의 한국적 판타지가 되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 실제로 해본 퍼레이드는 어떠했나요?
"퍼레이드는 이미지, 비주얼이 가장 중요한 예술인 것 같습니다. 이미지로 충격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2017년 5월 마실축제에 '개양할미 설화'로 처음 참가하기로 결정하였고, 설화 속 개양할미를 실제로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구조물 제작하는 곳에 문의를 해보니, 3,000만 원 견적이 나왔습니다.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단원들과 회의 끝에 구글과 유튜브를 검색해가며, 외국 사이트를 참고해 직접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무용학원은 세트 제작소로 변신되었고 단원들과 함께 1,500만 원에 완성하게 됩니다. '개양할미'를 마실축제에 처음 선보이는데,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습니다. 설화 속 개양할미가 눈앞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탄성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것이 판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좋아하셨습니다. 부안의 문화자원이 현실로 등장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고, 확장성이 얼마나 클지 예상할 수 없는 저희들만의 퍼레이드 작품이 처음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 이후에도 퍼레이드 공연을 계속 하셨나요?
"2018년 9월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에 부안 격포의 도깨비를 주제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포스댄스컴퍼니 멤버와 우석대 태권도시범단 등 총 70명이 참가하였는데, 한국적인 요소인 도깨비가 무용과 태권도를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대형 용을 앞세운 전략이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저희 팀이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3,000만 원의 상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고생한 단원들에게 나눠줄 돈도 생기고, 대외적으로 인정도 받고,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조직위에 해외에도 나가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보았더니, 뜻밖에도 한번 해보자는 답변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싱가포르에 가게 됐습니다."


- 싱가포르에서의 퍼레이드 공연은 어땠나요?
"올 2월 싱가포르 칭게이퍼레이드에 참가했습니다. 40년이 넘는 축제이고, 싱가포르 관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저희는 100명이 함께하는 군무로 정면승부를 하였습니다. 한국적 이미지에 무용과 태권도가 어우러지는 작품에 찬사가 쏟아졌고, '전체 참가팀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이라 말했던 대회 총감독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덕분에 싱가포르 대통령은 물론 총리와 함께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꿈같은 공연이었고, 저희의 콘텐츠로 충분히 세계와 겨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지역에 남아서 활동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판타지 요소가 많은 곳은 서울이 아니라, 여기 전북입니다. 이곳에 있는 문화 자원들을 개발해 서울로 진출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전라북도는 판타지 영화니까요. 현재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500명의 출연진을 데리고 브라질 리우 카니발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북이 중심이 되어야 하겠고,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지역으로 내려와서 저희와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규모가 가장 큰 대회에만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검증을 받고, 그 자신감으로 '포스댄스컴퍼니'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 오해룡에게 열정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공연이 끝난 후 쏟아지는 관객의 환호. 그 에너지가 근원입니다. 공연은 받은 대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2만 명 관중터널 안에서 함성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정말 엄청난 경험이고 에너지이며, 그 짧은 순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 젊은 예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한마디로, '재미있어야 한다'입니다. 본인 스스로 재미있지 않다면, 버틸 수 없습니다. 더욱이 제가 찾았던 부안의 설화처럼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관객도 나도 재미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쉰 살 전에 브라질 다녀와야 저 스스로도 '정말 재미있게 살았다'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라질 꼭 가보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사람 오해룡. 다소 엉뚱한 면이 있지만, 그 엉뚱함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근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단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무용'의 확장성에 목숨을 걸고 있는 그의 엉뚱한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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