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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연재 [전호용의 음식 칼럼 <자급>]
돈으로 치면
여덟 번째
전호용(2019-08-14 15:29:32)



하지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가봤더니 이웃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밑이 잘 든 감자가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우리집도 감자를 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밑이 잘 들지 않아 씨알이 작고 볼품이 없었다. 이웃 아주머니가 감자 필요하면 싸게 준다기에 감자 한 상자를 밭에서 바로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감자를 보면 몇 년 전 여행을 하며 강원도 동해시에서 만난 정혜연 할아버지와 박금자 할머니가 떠오른다. 노부부는 배고픈 나에게 여러 가지 감자요리를 만들어 먹였었다. 찐 감자 위에 감자반죽을 얹어 함께 쪄낸 감자붕생이, 감자를 강판에 갈아 전분을 내리고 전분 빠진 섬유질을 함께 반죽하고 고추를 넣어 지진 감자전, 비단조개, 애호박, 고추,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감자반죽을 새알로 굴려 넣고 끓인 옹심이가 그것인데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음식들임에 분명하다.


삼척, 동해, 강릉 일대에선 비단조개가 흔히 잡히는 것이라 할머니는 비단조개로 옹심이를 끓여주었지만 이곳에선 비단조개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서해에는 바지락이나 생합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옹심이도 끓이고 이참에 바지락죽도 해먹자는 심사로 새벽부터 친구를 불러내 부안앞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이 빠지고 갯바위가 드러나자 그 사이사이에 바지락이 가득했다. 아무리 흔하다 해도 땡볕아래 앉아 호미질을 해서 한 알 한 알 찾아내야 하는 일이다. 친구는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더니 이내 지치고 실증이 났는지 "아휴, 이만큼을 돈으로 치면 이 만원 어치도 넘겠다." 몇 개 더 캐다 말고 또 "마트에서 사려면 삼 만원도 더 줘야겠는데...."라며 끈임 없이 칭얼거렸다. 호미질을 하며 친구 말을 듣다가 키득 웃음이 나오며 품바 한 자락이 터져 나왔다.


"다앙신 쪼까 나를 싸랑해 주실랑이면은 핸드빼꾸 살줄라요, 핸두빼꾸 형편없다 골망태가 어떠냐. 씨러씨러라 나는 실탕께 골망태는 씨러라~"...."이런 그지놈이....세상만사 다 돈으로 치믄 거렁뱅이 식은 밥 한 사발도 못 읃어묵고 굶어 뒤지는겨.... 시끄랍고 허기 싫으믄 쩌짝으로 물놀이나 댕기와 시키야!"


언제부터 모든 것을 돈으로 치는 세상이 되었을까.... IMF때부터 였을까.... 나는 그 무렵에 막 성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발을 디뎠었다. 어른이 되었다는 허세와 세상에 대한 불신, 겉멋으로 착용한 우울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든 기성을 향해 짱돌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 나는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든 기성이 되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을 돈으로 치는 버르장머리를 심어 주었거나 또는 떨쳐내도록 돕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지난 5월,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미공개 신작 <사랑하는 아들에게>를 오슬로대학에 있는 미래도서관에 전달했다. 이 글은 앞으로 100년 후에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녀는 전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원고가 이 숲과 결혼을 하는 것 같기도,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작은 장례식 같기도,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기도 하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이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지금 태어난 아기에게 100년 후에 눈을 뜨라고 타이르는 어미의 애절함이 그려지기도 했고, 나를 포함해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 한강이란 소설가를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생전에 이 글을 읽을 수는 없으리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완성된 무언가를 후세에게 온전히, 그러니까 완성된 것을 현세대가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물려줄 뿐만 아니라 그 평가까지도 온전하게 그들에게 이양했던 역사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유산이란 사용해보고, 읽어 보고, 생각해 보았던 것들을 후일담 형식으로 남기거나 오늘을 살고 남은 찌꺼기를 죽고 남긴 것뿐이지 않던가.


이 기사를 읽은 이후로 계속해서 궁리중이다. 나는 완성시켰으되 한 번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그 무언가를 100년 후의 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자급을 시도하는 이유는 100년 후를 살아갈 후세에게 돈으로 치지 않아도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전달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직 그 방법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내 손으로 잡은 바지락에 돈이라는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여러 사람과 모여앉아 바지락옹심이를 나누는 일이라는 것 정도다. 그리하여 오늘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눈 훈훈함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퍼져나갈 때 100년 후의 그 누군가에게도 따순 옹심이의 쫄깃함이 전해지는 것 아닐라나.... 아직 그 정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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