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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 | 연재 [홍PD가 만난 청년]
생각의 혁신, 실천하는 예술에 매료되다
아트디렉터 송대규
홍현종(2019-09-17 11:20:50)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 우리가 접해본 문화를 넘어서,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송대규. 전동성당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지역에서는 접해보기 힘들었던 예술을 시도하였던 그를 만나 예술의 새로운 변화상과 그가 꾸고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송대규는 어떤 사람인가요?
"빛으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작품의 제작뿐 아니라 전체적인 연출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저는 저를 아트디렉터 송대규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평가는 어떤가요?
"우선은 행동주의자이고 싶습니다. 먼저 실천하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많다 보면, 생각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이 없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우선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많았고, 혼자서 집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부터 그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자연스레 그리는 실력도 향상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칭찬도 받게 되었고,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는 고교시절, '이중섭 평전'을 읽었는데, 무언가 내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미술로 미래를 결정하고 홍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미대 진학은 어떠셨나요?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는 홍대미대로 대학 진학의 꿈을 꾸었습니다. 워낙은 서양화과 진학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생고 시절 내신이 조금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안전하게 서양화과 말고 도예과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서양화과와 도예과가 학부 수업을 함께 진행하였기에, 전공에 상관없이 서양화과 수업을 전공인 도예과 수업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은 어떠셨나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백남준이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자료실에서 그의 영상을 찾아보고, 개인적으로 더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그냥 예술가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행동주의자'였습니다. 모든 새로운 예술을 생각이나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새로운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백남준은 예술의 장르를 해체한 사람입니다. 음악과 미술, 영상, 행위예술을 넘나들며, 자신이 생각을 결과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가 독일에 머물며 실천하였던 '플럭서스'운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았는데, 현대 예술가라면 이런 길을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제게 필요했던 것은 '생각의 혁신'이었고, '실천'이었습니다. 결국 '그림'보다는 '퍼포먼스'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라는 조직에서 꾸준히 퍼포먼스 활동을 하고, 실험예술제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전공이었던 도예는 관심에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전주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전주로 내려오신 계기가 있었나요?
"2006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혼자 계셨던 부친께서 건강이 안 좋으셨습니다.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전주예술고등학교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책임강사라는 제도가 있는데, 미대를 지망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서울로 진학을 했고, 친구들과 활동하던 차에 고민이 되기는 하였지만, 전주예고 쪽의 지속적인 요구와 아버지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전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전주예고에서 3년간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주에서의 활동은 어떠셨나요?
"전주예고에 출강하면서, 전주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행위예술 중심의 퍼포먼스 팀을 만들었습니다. 한 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진예술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당시 1,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고 객사 주변에서 어항을 뒤집어쓰고 벌이는 퍼포먼스를 하였습니다. 'The Gaze'라는 작품이었는데, 생소한 작품에 주변의 반응은 '충격적이다'였습니다. 물론 저희들은 충격적으로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행위예술이 좋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보니, 지역 연극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연극 무대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연극과 뮤지컬 관련 무대제작을 몇 번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인력들과 친해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나름 활동을 하다 보니,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위예술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행위인데, 예술은 사라지고 결과로 남는 것은 사진을 비롯한 기록뿐이었습니다. 결국 예술의 행위는 사라지지만 어떻게 기록으로 담아낼 것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상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카메라 1대로는 부족한 입체감 있는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미디어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아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전주예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여유 자금이 조금 생겼습니다. 이후 2009년 프랑스 뚤루즈 지역의 레지던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신발공장을 재생한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유럽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극,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섞여 있었는데, 매주 금요일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장르를 혼합해서 시도해보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며, 결국 예술이라는 것도 매체의 영향을 받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매체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라는 장르를 생각해보면, 영화라는 매체가 곧 영화라는 예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프랑스에 머물 당시 미디어 아티스트들도 많이 만났고, 많이 배웠습니다. 귀국 후에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서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공부하고는 했습니다.


처음 미디어아트로 시작한 사업은 무엇인가요?
"2011년 말에, 제 자취방에서 '30Days'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김중현이라는 친구와 둘이서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영상관련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서, 평가판으로 제공되는 30일의 기간이 저희들 작업시간의 한계였습니다. 결국 30일 안에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하면, 컴퓨터 전체를 포맷해서 새롭게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다시 30일간의 평가판으로 작업을 이어가고는 하였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팀 이름을 30Days 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행위예술 하던 시절 사용하던 가정용 프로젝트 3대가 남아있었고, 이 장비를 이용해 2012년 1월 전주 객사에 첫 번째 작품을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가옥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인데, 어설프기도 하였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예술, 미디어파사드를 시도했던 송대규에게 전환점 같은 일이 생기는데, 전주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전동성당을 배경으로 전주와 전라북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사업이었다.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호응을 얻어내며, 그의 역량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송대규 하면 전동성당 미디어파사드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나요?
"전주한옥마을을 생각해보면 전통문화가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게 전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전통문화에 최신 트렌드를 입혀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 전통의 반대일 수 있는 서양식 건물 전동성당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건물에 미디어파사드를 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사전 준비를 하고, 2015년 국가 지원사업을 통해서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지자체의 지원을 받게 되고, 전동성당을 배경으로 미디어파사드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총 36대의 프로젝터와 4대의 서버를 사용하였는데, 저희로서도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 반면에 기대 이상으로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뭔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전주한옥마을에 딱 필요한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후 2016년에 풍남문을 배경으로 새롭게 전주의 역사를 표현했던 기억과 2017년 덕진공원 야간분수를 배경으로 뮤지컬 영상을 상영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전주를 기반으로 생소한 예술 장르인 미디어파사드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안동, 부산에서 프로젝트로 활동을 해봤습니다. 경상북도에서는 공간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좀 더 큰 도시로 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산업, 네트워크의 개념은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메일이나 SNS 등을 통해 지역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예전의 고급 정보도 이제는 손쉽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지역이 글로벌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전주 최고의 팀이 세계 최고의 팀이 될 수도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전주는 문화예술 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물론 제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결국 지역의 특화된 스토리, 그 이야기들을 새롭게 담아내는 것이 예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주에서는 인적교류와 협력도 유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외면과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 고향 전주가 충분히 미디어파사드의 성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전동성당 외벽을 배경으로 두 번의 공연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전동성당 내부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작품입니다. 지금 한창 준비 중인데, 전주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올림픽이나 국제 행사의 연출진으로 활약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기간입니다.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 꾸준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실천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한 발이라도 움직여서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실천을 통해서 고민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고민이 없이 행동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고민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또라이'라고 칭하는 사람 송대규. 그런 그의 발칙함과 아이디어가 전주를 새로운 문화도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조금은 기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은 낯선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의 예술 영역을 개척해가는 사람. 창의적 아이디어와 두려움 모르는 실천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그의 '또라이 여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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