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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사연도 많고 매력도 많은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이 도시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
윤지용(2019-11-15 10:57:30)

사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과 이스탄불(Istanbul)은 같은 도시다. 이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고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해협 양안(兩岸)에 걸쳐 있어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본래는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식민도시였던 비잔티움(Byzantium)이었다. 서기 330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후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꿨다.



천년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아야소피아
동로마제국(Eastern Roman Empire)은 '비잔티움제국' 또는 '비잔틴제국(Byzantine Empire, 영어식 표기)'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인다. 동로마제국이라는 용어는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영역인 '서로마제국'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비잔티움제국'이라는 이름은 서기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긴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서기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동로마제국은 천 년 동안 존속했다.
동로마 제국은 십자군원정 이전까지만 해도 고대 로마의 적통을 잇고 유럽 기독교문명을 주도하는 강대국이었다. 그런데 사실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로마보다는 그리스에 가까웠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은 최전성기에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스페인 남부, 시칠리아, 에게해 등 지중해의 대부분을 제패했다. 동로마제국을 본산으로 하는 동방정교회세력은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세력과 기독교문명의 주도권을 두고 여러 세기 동안 각축을 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로마제국의 쇠락은 이슬람세력이 아닌 서유럽 기독교세력의 침공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초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슬람세력으로부터 탈환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던 십자군원정은 갈수록 약탈전쟁으로 변질되어갔다. 십자군은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여러 차례 침공해서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다. 경쟁상대인 동방정교회를 제압하려는 로마교황과 지중해 일대의 해상교역을 장악하려던 베네치아의 상인들, 서유럽의 왕들과 제후들의 야합에 의한 것이다. 그렇게 쇠약해졌던 콘스탄티노플은 마침내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 튀르크의 대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아야 소피아(Αγία Σοφία)는 서기 537년에 동방정교회의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긴 세월만큼 수난도 많았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부터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이때 벽면과 천장의 기독교 성화들 위에 회칠을 해서 덮어버렸다. 내부에는 무슬림들의 기도를 위해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미흐랍'이 만들어졌고 외부에는 이슬람 사원의 상징인 '미나렛(첨탑)' 네 개가 세워졌다. 아야소피아는 탈 이슬람 세속주의를 표방했던 터키공화국의 수립 이후 1935년에 박물관이 되었다.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과 슐레이마니예 자미
오스만제국은 튀르크족의 일파인 오스만 1세가 1299년에 아나톨리아반도 서북부에 세운 왕조였다. 오늘날의 터키와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는 튀르크 족은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돌궐(突厥)족의 후예다. 이들은 본래 중국의 한족(漢族)을 서쪽에서 위협하던 기마유목민족이었는데 몽골제국에 밀려나 점점 서쪽으로 향하다가 아나톨리아 일대에 정착했다. 오스만제국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를 석권한 후 중부유럽까지 진출해서 한때 비엔나를 점령하기도 했고,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강성했던 오스만제국은 슐레이만 대제 사후에 레판토 해전에서 유럽 연합함대에 패해 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중해 일대와 발칸반도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참전해서 패전국이 되었다. 이 패전으로 아라비아반도와 북아프리카지역을 영국과 프랑스에게,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는 숙적 그리스에게 빼앗기고 제국이 해체되었다.
아야소피아가 콘스탄티노플의 상징이었다면, '슐레이마니예 자미'는 강성했던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상징한다. 이슬람 사원을 영어로는 모스크(mosque)라고 하지만, 무슬림들은 아랍어로 '마스지드'라고 하고 터키에서는 '자미(cami)'라고 한다. 슐레이마니예 자미는 오스만 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슐레이만 대제를 기리는 이슬람 사원이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인 슐레이마니예 자미는 이슬람 건축의 대가인 미마르 시난이 1557년에 지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터키공화국
이스탄불의 중심에 있는 탁심광장에는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독립혁명가들의 동상이 있다. 도시 곳곳에 아타튀르크의 초상화가 붙어있고 심지어 식당이나 가게들에도 초상화를 붙여둔 집들이 많다. 터키의 독립영웅 아타튀르크의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 파샤였다. 오스만제국 말기의 젊은 장군이었던 그는 청년 장교들을 이끌고 그리스에 빼앗겼던 영토수복전쟁에 승리해서 오늘날의 터키 국경선을 확보했다. 그는 유명무실해진 오스만 왕조의 술탄을 폐위시키고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때 붙여진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은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타튀르크는 유럽식 근대화와 탈 이슬람 세속주의를 추구했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 시절에 사용했던 아랍문자를 폐지하고 서양식 알파벳을 도입했다. 아야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바꿀 당시에 '더 이상 거룩한 이슬람 사원이 아니다'는 상징적인 행위로 일부러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고 한다.
오늘날 터키의 정식 국호는 터키공화국, '튀르키예 줌흘리에티(Türkiye Cumhuriyeti)'다. 터키 전역에는 가는 곳마다 붉은 바탕에 흰 초승달이 그려진 터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만큼 터키 국민들은 공화국에 대한 긍지가 높다. 이스탄불은 오늘날의 터키에서도 여전히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지만, 수도는 아나톨리아반도의 중앙에 있는 앙카라이다.


보스포러스해협과 골든혼
이스탄불에는 여러 개의 바다가 있다. 남쪽으로는 마르마라해가 펼쳐져 있고 흑해로 이어지는 보스포러스해협은 이스탄불을 유럽지구와 아시아지구로 나눈다. 유럽지구는 다시 '황금 뿔'이라는 뜻의 '골든혼(Gold Horn, 한자로 金角灣)'에 의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 난간에는 온종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이곳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의 수가 이스탄불의 실업률 지표라는 말까지 있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매일 '투르욜(Truyol)'이라는 연락선을 타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오가며 생활한다. 여행자들의 입장에서는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낭만적인 유람선으로 손색없는데, 이스탄불 시민들의 필수 대중교통이다 보니 요금이 우리 돈으로 몇백 원 수준이다. 연락선 선창가에서는 빵 두 조각 사이에 구운 생선을 넣은 고등어 케밥을 판다.
보스포러스해협을 끼고 늘어선 카페들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도 이스탄불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이다. 베벡이라는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 베벡'은 전 세계의 별다방들 중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답다고 자처하는 곳이다. 이집의 테라스에서는 보스포러스해협에 한가롭게 떠있는 유람선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사실 별다방보다 더 좋은 곳은 해협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피에르로띠 언덕이다. 이스탄불을 사랑했다는 프랑스인 피에르 로띠가 매일 이 언덕을 찾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곳에서는 아메리카노보다 전통 터키식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다. 커피가 터키어로는 '카흐베'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터키에 정착한 카흐베가 비엔나에 가서 '카페'가 되고 영어로 '커피'가 되었다. 전통 터키식 카흐베는 구리로 된 작은 그릇에 커피를 가루째 넣고 숯불 위에서 일일이 한 잔씩 끓인다. 에스프레소만큼 진하고 입 안에 커피가루가 낀다. 그래서 쓴 입맛을 달래라고 '로쿰'이라는 전통젤리를 곁들여주고 입을 헹구라고 물 한 잔을 함께 내준다.
1,600여 년 동안 두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는 아야소피아와 슐레이마니예 자미 말고도 수많은 역사유적들이 있다. 로마의 황제가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오벨리스크부터 거대한 지하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 로마시대에 상수도 물길이었던 발렌스 수도교 등 고대 유적들이 수두룩하다. 오스만제국을 다스렸던 술탄의 톺카프 궁전은 마르마라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다. 아타튀르크의 집무실이었던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든 시계는 1938년 11월 10일 그가 사망했던 시각인 9시 5분에 맞춰 고정되어 있다. 파리에서 출발하는 오리엔탈 특급열차의 종점이었던 시르케지역도 빼놓을 수 없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사연도 많고 매력도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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