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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전호용의 음식 칼럼 >자급>]
다꾸앙
열한 번째
전호용(2019-11-15 11:06:17)

곧 김장철이다. 요즘은 김장을 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지만 손바닥만 한 남새밭과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는 여전히 길러낸 배추와 무를 뽑고 나르고 절이는 진풍경이 집집마다 벌어진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도 매한가지인데, 우리 밭에는 남들이 심지 않는 한 가지 작물이 더 심어져 있다. 그것은 단무지무라 불리는 왜무다. 우리가 흔히 보았던, 두껍고 묵직하고 단단한 조선무가 아니라 가늘고 긴, 초록 빛깔은 전혀 없이 하얗기만 한 왜무를 매년 심는다. 이것을 기르는 이유는 김장철에 맞춰 단무지를 담기 위함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단무지가 아니라 짭짤하고 곰삭은 막걸리 맛이 나는 '다꾸앙'을 만들기 위함이다.


'즈케'라 불리는 일본의 절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금에 절인 야채나 생선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먹는 절임류와 같이 소금을 주재료로 사용하지만 발효가 되고 나면 묘한 술맛이 나는데 청주나 청주를 만들고 남은 주박(술지개미)을 첨가해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김치나 짠지와는 다른 형태의 발효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즈케'의 근간에는 백국균이 자라잡고 있다. 백국균은 탄수화물을 당화시키는 최적의 효모인데 발효과정에서 잡내를 내지 않고 단 맛을 풍부하게 이끌어내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사케와 미소를 만들 때 백국균을 이용해 왔고 오늘날에는 제빵에도 활용해 일본에서만 만들어지는 독특한 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식의 특징이라면 극단적으로 정제된 재료를 이용해 완벽이라 말할 수 있을 어느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백국균은 그 의지의 초석이라 할만하다. 공기 중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효모가 떠돌아다닌다. 이 중 백국균만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깨끗한 대나무통에 밥을 지어 담아놓고 백국균이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자연상태에서 백국균만 내려앉을 확률은 극히 미미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얗고 보드라운 백국이 내려앉는다. 이것을 무균실로 옮겨 대량으로 배양하는데 무균실이 없던 시절에는 편백나무통을 이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국균으로 술과 미소를 담고 야채를 절이는데도 이용했다. 그렇다고 '정제된 재료'라던가, '완벽이라 말할 수 있을 어느 수준의 음식'이 민중들에게 일반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백국을 얻기 위해 실패를 거듭할 만큼의 밥이 남아돌 리 없었고 야채를 절이기 위해 청주를 빚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귀족들이 먹는 맛있는 절임야채를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 들지 않았을까. 다꾸앙 이전에 소금과 사케로 절인 벳다라즈케라는 고급 무절임이 있었지만 민중은 다가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래서 조금 쉽고 간편하게, 흔한 재료로 벳다라즈케와 비슷한 맛을 내는 무절임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이름이 '다꾸앙'스님 이었고 그의 이름을 따 다꾸앙즈케라 부르게 되었다.


다꾸앙은 쌀겨를 이용해 발효시킨다. 쌀겨는 벼의 속껍질을 말하는데 청주를 만들 때는 속껍질을 매우 깊이 깎아낸 하얀 백미만을 이용한다. 그 이유는 쌀겨에 포함되어 있는 미강유를 제거하기 위함인데, 쌀겨에는 많은 양의 미강유가 포함되어 있어 발효 시 악취를 풍기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쌀겨에는 다량의 탄수화물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발효 시 단맛이 나고 술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매우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술이겠지만…….


일제 강점기에 군산은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들었던 도시였다. 귀족도 상당수였지만 대부분은 일본에서 농사짓던 민중들이 토지를 불하받아 못난 팔자 한 번 고쳐보려는 심사로 넘어온 평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먹던 것을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그들과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는 그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을 어깨너머로 배우게 되었고 그 방법을 딸들에게 전하고, 그 딸들 중 하나였던 내 어미는 또다시 나에게 전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습관적인 생활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겨울에도 다꾸앙을 담을 것이다.


 내 어미는 다꾸앙을 이렇게 담는다. 술지개미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꾸들꾸들 마른 무를 항아리에 한 켜 담고 쌀겨, 소금, 물, 고추씨와 함께 엿기름을 섞은 반죽을 부어가며 항아리를 채운 뒤 뚜껑을 열어두고 발효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엿기름에는 아밀라아제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을 발효의 기폭제로 이용하고 공기 중에 떠도는 수많은 종류의 효모들이 내려앉아 발효를 일으키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다꾸앙선사에겐 미안할 일일까? '제멋대로 뒤죽박죽, 레시피 따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만들어 먹는 것이 닥꽝이더냐?'며 혼구녕을 낼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는데 지금처럼 청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에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다꾸앙을 왜 만들어 먹고 있느냐고 의아해하며 반문할 듯싶다. 그러나 민중의 문화(이 글에선 'Subculture'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듯싶다.)라는 것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고급진 벳다라즈케를 들이밀어도 꼬랑내 풍기는 닥꽝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소주가 물보다 싸다 한들 막걸리가 세상에서 사라질 성 싶은가? Subculture는 지배와 피지배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즐겁기만 하다면, 살아내는데 필요하다면 서로가 서로를 거침없이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하며 세상에 없던 무언가로 다시 태어난다. 다꾸앙, 닥꽝, 단무지, 꼬들단무지, 치킨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살아서 자유롭게 펄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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