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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연재 [읽는 영화 보는 영화]
전장의 참상 한 가운데에서 써 내려간 영상 일기
사마에게
김경태(2020-02-10 16:49:16)



2011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정부군의 과잉 진압으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현재까지 지속되며 그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와 피난민이 발생했다. 그동안 여러 다큐멘터리들이 그 내전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도 공개된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2016), <시리아의 비가(悲歌): 들리지 않는 노래>(2017), <라스트맨 인 알레포>(2017) 등이 있다. 이들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전쟁의 참상과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반면에 <사마에게>(2019)는 감독의 내밀한 고백이 담긴 영상 일기의 형식을 취한다.

영화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 내전의 경과가 아니라 와드 알-카팁 감독 자신의 10년 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자신에 대한 소개로 영화를 시작한다. 뒤이어 정지된 카메라가 갓난아기의 해맑고 평온한 얼굴을 한동안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그녀의 딸 ‘사마’이다. 곧바로 공습 상황이 벌어지면서 감독은 사마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급격히 흔들리는 카메라는 지하로 도피하는 사람들을 뒤좇는다. 자연스레 사마의 안위가 염려된다. 다행히 무사할 뿐만 아니라 예의 그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부터 관객은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사마의 얼굴을 중첩시키며 시리아 내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응시하게 된다.   

감독은 알레포 대학 재학 시절부터 내전의 시발점이 된 아사드 정권의 독재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그 후 5년간 지속된 정부군의 공습과 포격의 공포 속에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저널리스트가 되어 의사인 ‘함지’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키우며 일상과 전쟁이 맞물린 삶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내전의 참상과 더불어 사마의 성장 과정을 촬영한 영상 위로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내레이션이 겹쳐진다.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도 가족의 삶은 계속된다.

<사마에게>의 페이소스는 전쟁을 마주하는 감독의 복합적인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녀는 알레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자 하는 저널리스트이자, 그 스스로가 그곳에 거주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폭격과 그 희생자들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포위된 알레포의 수호라는 사명감과 딸의 돌봄이라는 모성적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철함은 딸아이의 얼굴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이곳을 지켜야 하는 명분도 그 딸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혹자는 종용할지도 모른다. 정말 딸을 지키고 싶다면, 부모로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면 하루빨리 그곳에서 도망치라고. 혹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공명심 때문에 딸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심리적 긴장감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쉬이 포기할 수 없는 바로 그 두 정체성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위험한 곳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부모가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행동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런 곳에 태어나게 한 잘못에 대해 딸에게 용서를 빈다. 앞선 선택에 대한 후회는 딸의 출산에서부터 함자와의 결혼으로, 나아가 고향을 떠나 알레포로 온 것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사실, 딸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 하는 만큼, 또한 딸을 위해 이곳을 지켜야 한다. 폭격의 굉음과 비명 소리로 가득한 죽음의 공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탄생하는 새 생명들로 활기를 불어넣는 것만큼 상징적인 저항이 있을까. 아이의 맑은 얼굴은 그 자체로 희망 어린 미래의 가능성을 환기한다. 아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할 강력한 정서적 근거가 된다. 이로써 영화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끔찍한 죽음이 일으키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넘어 아이의 얼굴을 한 미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마침내 가족은 알레포를 무사히 벗어나고, 곧 사마의 동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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