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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 기획 [기획]
다시, 동네책방 ⓶익산, 군산, 완주
군산
이동혁, 김하람(2020-03-06 11:05:16)

기획 | 다시, 동네책방_군산




마리서사|시간을 거슬러 1940년대의 숨결과 만나다


군산시 구영5길 21-26
화요일~토요일 11:00~20:00 / 일요일 11:00~18:00
063.445.7364


군산 월명동은 또 다른 군산이라 불러야 할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선 1930년대 월명동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지금도 일본식 가옥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절 동국사도 월명동에 있다. 이국의 향기가 짙게 배인 그곳에 1940년대 문인의 숨결과 당시의 운치가 담긴 책방이 한 곳 있다. 바로 ‘마리서사’다. 적산가옥을 그대로 활용한 외견에서부터 당시의 풍취가 숨결처럼 전해져 온다. 오래도록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싶어지는 곳이다.


마리서사는 군산 근대문화거리에 있는 동네책방이다. 적산가옥의 외형을 그대로 살려 2017년 7월 임현주 대표가 문을 열었다. 따스한 조명과 옛 건축물이 자아내는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 구석구석 꼼꼼하게 비치된 책들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책의 양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권, 한 권 손수 고른 책들임을 알기에 그 정성에서 손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마리서사는 1945년 박인환 시인이 종로3가에서 운영하던 문화예술서점의 이름이에요. 마리는 박인환 시인이 좋아하던 프랑스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서사는 서점이란 뜻이에요.”


1940년대 당시 마리서사는 박인환을 비롯해 김수영, 김광균 등이 드나들던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아지트였다. 마리서사를 중심으로 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던 그들은 1948년 마리서사가 폐업한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 가며 이듬해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냈고, 신시론 동인으로 활동하며 모더니즘 계열의 초기시들을 발표했다. 우연히 이 이야기를 접한 임 대표는 여행차 들렀던 군산에서 마리서사에 딱 어울리는 적산가옥을 발견하고 이곳을 개조해 책방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옛 이름을 빌려 쓸 뿐인 공간이 아니라 같은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적산가옥을 통해 1940년대와 현재를 연결한 셈이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임 대표는 잦은 야근과 시간에 쫓기는 업무 속에서 문득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책방을 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특히 군산을 택했던 이유는 역사의 부침 속에서 항상 외지인과 함께해 왔던 군산 특유의 정서 때문이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거주지였고, 한때 많은 화교가 건너와 정착하기도 했던 곳이며, 1974년에는 미군 부대가 들어서기도 했다. 그런 배경 덕분인지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따스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많은 동네책방들이 그렇듯 마리서사 역시 운영자의 취향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코너가 바로 군산을 주제로 한 서가다. 이 서가에는 군산을 소개하는 책들과 함께 군산의 대표 작가 채만식의 작품들이 한데 모아져 있다. 특히,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에는 금강과 군산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만큼 옛 소설을 가이드북 삼아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군산의 명소들을 돌아보기에도 좋다. 동네책방으로서 지역과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북 큐레이션이다.


햇수로 4년. 그동안 적극적으로 책방을 운영해 왔던 임 대표는 현재 안식년을 갖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빈자리를 대신해 지금은 서울 마포구에서 ‘사적인서점’을 운영했던 정지혜 대표가 점장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 2016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2년 동안 ‘사적인서점 시즌1’을 운영해 왔던 정 대표는 휴식기를 가지며 시즌2를 준비하다 마리서사의 위탁 운영을 제안받고 이곳에 오게 됐다고 한다. 편집자와 서점원을 거쳐 책방 주인이 되기까지 겪은 온갖 시행착오와 책방 운영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책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의 저자이자 특별한 책 처방 프로그램으로 사랑받았던 그는 이곳 마리서사에서 임 대표의 안식년이 끝나는 올해 말까지 손님들과 만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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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책방 | 이곳에서 만들어진 책들로 책장이 가득 차는 그날까지


군산시 구영5길 100
평일 20:00~22:00 / 주말 09:00~23:00
010.4658.4678


파란 외관이 청명한 하늘빛을 연상시키는 책방. 근처를 지나다니며 ‘하늘책방’을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녁에만 잠깐 문을 여는 이 책방에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책들도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 아니어서 더욱 호기심을 키운다. 낮 시간에 인쇄소를 운영하다 저녁이 되면 책방 주인으로 변신하는 류인상 대표(49). 여느 책방과는 다른 결을 지닌 이곳 책방 이야기가 궁금했다. 수수께끼를 풀 듯 류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책방 운영과 독립출판물 제작을 함께하신다고 들었어요.
원래 본업이 인쇄업이었어요. 독립출판에 대해 알게 된 게 2015년인데, 당시 서울에서 조금씩 생기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런데 독립출판이란 개념이 아직 생소할 때여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물리적,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게 책을 만들더라고요. 책이 만들어지는 절차를 모르니까 무조건 경기 지역이나 서울이 싸겠지, 하고 먼 곳까지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제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을 만들어 주고 싶단 생각에 독립출판물 제작을 시작하게 됐어요. 출판업을 하면서 책방까지 차리게 된 이유는 독립출판이란 형태로 만들어진 책들이 전국 어딘가 한 곳 정도에는 진열돼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립출판 작가들을 위해서 시작한 책방인 거죠. 아직 권수는 적지만, 언젠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책들로 책장을 전부 채우고 싶어요.



독립출판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성출판사에선 누군가의 글을 책으로 낼 때 교정과 교열 과정을 거치는데, 심한 경우 나온 결과물을 보고 작가가 이게 내 글인가, 하는 분들도 계시대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기성출판사는 팔릴 책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독자 입장에선 문장이나 구성이 깔끔하게 정돈된 글이 읽기 쉽겠죠. 그런데 독립출판은 사실 그런 교정, 교열 과정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만든다에 가까워요. 문장은 투박하고, 순화되지 않은 표현도 많지만, 저는 그런 책도 필요하다고 봐요. 제 역할은 그렇게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기회와 접근성을 주는 거죠.


그동안 책 제작을 의뢰하신 분들 중에 어떤 분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2018년 일인데, 전주 분이셨어요. 근처를 지나가시다가 책을 만들어 드린다는 책방 플래카드를 보고 진짜 책을 만들어 주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12월 15일까지 책이 꼭 나와야 된다고 당부를 하시면서 책 제작을 의뢰하셨어요. 그런데 무슨 날인지 궁금하잖아요. 여쭤 봤더니 아들의 첫 기일이라고, 아들이 그동안 써서 남겨 놓고 간 글들로 책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지난해 11월에 또 전화를 주셨어요. 동생이 죽은 형을 생각하며 쓴 글로 책을 한 권 더 만들고 싶으시다고요. 그런 사연을 들으면서 가슴이 짠했던 기억이 있어요.
또 기억에 남는 손님으로 시각 장애인 분이 계신데, 시집을 만들어 드린 적이 있어요. 이분이 점자로 써 놓은 시들을 교회 아이들이 발견해서 글로 옮겨 적어 왔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동네 시 낭송 모임하시는 분들도 취지가 좋으니까 우리도 동참하겠다 해서 시 전문을 녹음해 유튜브에 올려 주셨어요. 각 시마다 QR 코드를 넣어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들을 수도 있게 책을 제작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책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서 저도 뜻깊었어요.



독립출판물, 그중에서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책들 위주로 책방을 운영하고 계신데, 솔직히 책방 운영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동네 주민분들은 여기가 어쨌든 관광지고 평수도 있으니까 술이나 커피를 팔지 왜 돈도 안 되는 책방을 하느냐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저는 독립출판물 제작과 책 판매를 함께하는 이러한 형태가 사업적으로도 충분히 전망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애초에 책으로 시작된 장소니까, 책방 문을 연 취지 자체가 독립출판 작가들을 위해서였으니까, 어찌 됐든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앞으로 책방을 어떻게 운영해 갈지 계획이 있으신가요.
사실 출판 일을 함께하다 보니까 평일에는 저녁에만 문을 열고 있어요. 그래서 낮 시간에 책방을 지켜 줄 분을 구하고 있는데, 단순히 자리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방을 키우고, 독립출판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분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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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흥분색|공간을 채우는 취향의 향기


군산시 풍문2길 5-2
월요일~일요일 10:00~22:00
010.6833.8770


열어 보기 전까지 무엇이 들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깜짝 선물 같은 책방. 포장지를 벗기는 그 순간의 설렘은 다른 책방에선 만나 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블라인드 북과 여행책이 좁은 공간 구석구석을 알차게 채우고 있는 ‘조용한흥분색’에서 권세나 대표(36)를 만났다. 확고한 그의 취향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다.


어떻게 책방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원래 카페만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이 동네(미원동)가 군산에서 오래된 동네다 보니까 어르신 손님들이 제법 찾아 주세요. 그런데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왔을 때, 어른들 사이에 있는 걸 조금 어려워하더라고요. 이미 그러기 전부터 카페 안쪽 공간에 책을 가져다 채워 놓고 있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이 공간에서 편하게 공부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자기들 공간으로 사용하는 걸 보고 이 공간을 특화시켰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방을 해 보고 싶단 마음이 있었고, 마침 이 공간이 카페와 구분돼 있기도 해서 지난해 6월 책방으로 문을 열게 됐어요.


책방 이름이 재미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책은 펼치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그 안에서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책을 건넸을 때, 혹은 나에게 선물했을 때 흥분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을 전하고 싶었어요. 책이 주는 마음 그 자체를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조용한흥분색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블라인드 북으로 시작을 했는데, 모두 다 중고책이에요. 중고책에 대해서 낡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예 안 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래도 겉은 조금 낡았을지언정 책의 내용은 새책과 다름이 없잖아요. 그래서 블라인드로 포장을 함으로써 열어 봤을 때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고, 책값도 보통 5,000원 정도여서 부담이 없다고 하세요. 저희는 그렇게 책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었고,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 한쪽 책장 전체를 여행책들로 구성한 점도 저희 책방의 특징이에요. 그리고 조용한흥분색이란 곳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블라인드’, ‘여행’, ‘취향’, 그리고 ‘기부’인 것 같아요. 앞서 말한 블라인드 북과 한쪽 책장을 가득 채운 여행책들이 각각 블라인드와 여행을 나타내고, 거기서 저만의 큐레이션을 통해 취향을 드러냈다고 보시면 돼요. 또, 책을 기부받고 있는데, 기부받은 책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져요. 작은 공간이지만, 이 네 가지 파트가 하나로 합쳐져서 조용한흥분색을 이루고 있어요.


동아리 모임이나 클래스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계신데요.
북토크, 강연, 클래스 같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책방들이 많잖아요. 책 판매가 수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 아니어서 많은 책방들이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책방 유지에 힘을 보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이 공간이 제 것이기 때문에 솔직히 운영에 대해선 부담이 덜해요. 그래서 수익적인 면보다는 순수하게 함께 모여 책도 읽고, 수업도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나 그림 모임, 그림 클래스 외에도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챌린지나 경제 책을 읽는 모임도 생각 중인데, 그동안 운영해 왔던 경험에 비춰 보면 많이 참여해 주실지 모르겠어요. 지방에 문화 프로그램이 적다고들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에 비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아직까지는 저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제가 인스타에서 팔로우하는 분이 있는데, 전국에 있는 동네책방들을 찾아다니시는 분이에요. 책방을 다녀오시면 그곳에 대한 안내와 짧은 느낌 같은 것들을 올려 주시는데, 항상 그걸 보면서 언젠가 나도 여기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멋진 책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보니 저희 책방을 다녀가셨더라고요. 저희 책방을 잘 봐 주셨다는 생각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다른 일화로는 저희 책방에서 진행하는 드로잉 클래스에 오셨던 분인데, 클래스가 없을 때 따로 오셨던 적이 있었어요. 마침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군산에도 이런 취향이 있는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또 찾아 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분들이 한 번씩 오실 때마다 저의 취향을 알아 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뿌듯해요.


앞으로 책방을 찾아와 주실 분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나요.
블라인드 북으로만 한 면이 다 채워진 책방은 없어서 낯설어 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조금 낯설지도 모르지만, 포장지를 벗길 때의 그 설렘까지도 즐거운 추억으로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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