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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 특집 [기고]
미나리 화가 김충순을 추모하며 | 서른 두번째 개인전
그리기는 그의 놀이였고, 만들기는 그의 휴식이었다
최진규(2020-03-06 11:42:03)




김충순 형이 세상을 떠난 지 삼 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는 투병 중에도 살아생전 마지막 개인전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며 서울 전시를 준비하면서 붓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은 원하던 전시를 해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이제 그가 못다한 얘기를 이어보기 위해 유족과 지인들이 뜻을 모아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화가 김충순보다는 인간 김충순으로 만나고 어우러졌던 수많은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그의 그리기와 만들기에 대한 열정의 흔적들이 목구멍을 뜨겁게 달군다.


전시 준비를 위해 그의 작품을 연도별로, 재료별로, 장르별로 정리하여 분류작업을 하다 보니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삶이 다시금 고스란히 느껴졌다. 넘치는 ‘똘끼’로 무장된 그의 예술세계만큼이나 수없이 다양한 재료에, 신출한 아이디어를 섞으며 장르를 뛰어넘어 작업을 해왔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가느다란 세필과 로트링펜으로 수많은 여인들의 표정과 일정한 패턴의 꽃문양을 변형시켜 마치 종이 위에 새기듯이 반복적으로 그려낸 노동의 고된 흔적과 땀이 곳곳에 배어 있다. 때로는 그런 꼼꼼함을 포기하고 몇 백호 크기의 대형 광목천이나 배접한 한지 위에 수많은 군상들을 거칠고 빠른 붓질로 그려내곤 했는데, 그 붓질의 흔적들이 그의 숨결처럼 숨 가쁘게 흩어지다 다시 모이기도 한다.



나는 그를 ‘칠쟁이 김씨’라고 불렀지만 그는 어쩌면 신바람몰이 광대였는지도 모른다. 자유분방했던 그는 정형화된 프레임을 유난히도 싫어했다. 자신의 내면에 침잠되어 있던 고통과 슬픔을 감추면서 흥에 겨워 신바람을 몰아치며 그리기와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기와 만들기는 그의 일상이고 생활이었다. 정해진 전시를 위해 날밤을 새며 그림을 그려대는 것이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그의 놀이였고, 무언가를 꼼지락꼼지락 만드는 행위가 그의 휴식이었다. 그는 느닷없이 돈키호테가 되기도 하고, 피노키오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수가 되기도 했다. 투병 중에도 병원의 식단표나 인쇄물 뒷면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려대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그의 작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평면은 합판 위에 젯소를 바른 다음 과슈, 먹, 수채, 아크릴릭, 각종 천, 색실 등을 섞어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고 이를 제외한 드로잉, 실크스크린, 고무판화, 일간지에 연재했던 일러스트까지 합하니 완성작만 400여 점이 넘고, 연도 미상의 작품과 미완성작까지 합쳐 놓으니 작품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평면 외에도 코발트 도자기와 테라코타, 목각인형 등을 정리해놓고 보니 그의 엄청난 작업량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알루미늄 캔부터 잡지 표지, 포스터 뒷면, 나무 쪼가리 등 남들이 버린 폐기물(!)을 작품으로, 그리고 보물로 업싸이클시키는 남다른 장인이자 털보선장이었다. 김충순은 가히 보물선의 털보선장이다.


아마도 회화를 전공했던 그로서는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흙을 매만지는 느낌을 기꺼이 즐기고 사랑했다. 한편 캐스팅으로 사출된 컵이나 접시에 코발트로 그림을 그려 생활 자기로 구워서 판매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생활 자기들을 팔아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했던 컵이나 접시에 그려 넣은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소통의 창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생활소품으로 유인(?)된 팬들을 위해 자신의 작업과 작품을 정성스레 설명해가면서 미나리 카페(김충순의 생활 현장이자 작업장)는 물론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충순빠’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커뮤니티’는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고, 와인과 막걸리를 마셔가며 삶을 얘기하고, 음악과 미술 이야기를 뒤섞어 가면서 신박하게 만들어진 문화의 토론장을 확장시켜 나가기도 했다.



이제 그는 떠나고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살아왔던 삶의 자취는 세상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와의 대면은 중단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화가 김충순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 그가 채 마무리하지 못한 서른두 번째 개인전을 치러내며, 지유롭고 치열했던 그의 삶과 섬세한 작품들 속에 담긴 그의 뜨거웠던 열정을 새삼 돌아본다.


최진규 김충순의 지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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