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7.11 | 칼럼·시평 [문화시평]
열악한 조건, 다양한 무대에의 성취-전북 무용제
백의선 원광대 무용과 교수(2003-09-25 09:20:43)

전북 예술의 잔치, 제26회 전라예술제의 개막 5일째는 무용협회 전북지부의 주관으로 제2회 전북무용제가 10월 25일 올려졌다.


한국 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전북지회가 우리 모두의 염원인 지방문화 육성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씨뿌리기 작업과 같은 이번 행사에는 그래서 관계자들이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으리라고 짐작된다.

예술의 드높은 경지를 이해하고 무엇보다 함께 귀 기울이며 감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주최측뿐만 아니라 관심이나 호응도라는 측면에서 지방의 관객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용제전은 이런 점에서 앞으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출연진과 관객들의 똑같은 열망이 어우러져 좋은 성과를 본 이번 공연은, 누구에게나 꽉 찬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박수소리에 의해 이런 염려는 탕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의 다채로운 무대를 위한 출연진과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격려를 해준 관객들의 호응도에 비해, 후원 측의 성의가 오히려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출연자의 일부 의상비조차 자체부담이었다는 점이 그러한 서운함을 더욱 부추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 지방의 경우, 국립이나 시림의 정기공연 작품을 원형 그대로 올릴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작품의 진가를 십분 발휘할 기회도 감상할 기회도 없다는 점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예향의 고장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시설다운 시설을 하루 바삐 갖출 수 있도록 각 해당 부처의 관심과 선처가 촉구된다.


이번 무용공연 역시 위에서 말한 이런 악조건을 안고 무대에 올려야만 했기 때문인지, 출연진의 의욕과 관객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소품위주의 공연이었음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우선, 여러 작품 가운데 일곱 번째로 선을 보인 현대무용 「생(生)」은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두 명의 여성 무용수와 한 명의 남성 무용수의 등장은 유일한 외국무용 군무의 첫 장면이었는데, 출연진의 짧은 연륜과 연습부족으로 테크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듯하다. 따라서 의미의 전달도 자연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 3명과 다음 순서의 14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모두 고등학생들로 의상이 일률적일뿐만 아니라, 조명마저 변화 없이 단조로와서 다양한 삶의 총체성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예술제라는 커다란 축제 마당에 주최자로서 참여한다는 의식으로 보다 치밀하고 진취적인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쉬웠다. 한국 무용 작품들은 대체로 많은 작품이 성의껏 무대에 올려졌던 관계로 호감이 갔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문정근씨의 「승무」와 김광숙씨의 「연」이 주목을 끌었다.

문정근씨의 「승무」는 동작단위의 동작소를 통해 팔 동작과 발 동작이 분석의 초점으로 원무되어, 인체의 평형과 직립의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의 동작이 유발되는 자연스러운 춤사위가 돋보였다.


한국무용의 기본을 충분히 습득한 것에 힘입어, 승무의 중요동작에서 후속동작으로 발전되어 가는 가운데 한국인의 인체에 걸맞는 감정적 동작을 훌륭하게 연출하였기 때문에 이번 승무공연은 관객들에게 훨씬 친밀감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국립국악원 중견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문정근씨의 「승무」는, 까치걸음, 큰 걸음 등을 통해서도 그의 이력을 쉽게 엿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김광숙씨의 「연」에서는 무고한 공간-바람 속을 두 눈 가득 막막함을 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안타까운 인간상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가없는, 하늘을 향한 비상의 몸부림을 연줄에 감고 이 땅에 질긴 뿌리를 내리려는 안간힘과 의지가 사뭇 인적이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공연한「심청이야기 중에서」도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용협회지부장인 금파씨가 안무한 이 작품은, 주지하다시피 효나 결혼 등과 관련 있는 여러 가지 설화를 중요 모티브로 하는 대표적인 우리 고전으로서, 이미 연극, 창극, 한국무용, 발레, 오페라 등의 형식으로 무대에 많이 올려졌었다.


이번 금파씨가 안무한 「심청이야기 중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형태로 공연되었던 심청과는 달리, 이런 설화적 제요소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민중의 의미나 전통성을 관객에게 새롭게 환기 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우리 고유의 민족성이 내제된 소재를 발굴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은 우리 문화의 보편성 획득 또는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의선·원광대 무용과 교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