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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 칼럼·시평 [문화칼럼]
바이러스 위기 속 ‘비대면’ 사회에서 살펴야할 것들
이완(2020-04-10 09:27:21)

바이러스 위기 속 ‘비대면’ 사회에서 살펴야할 것들


아침에 뉴스 보기가 겁이 나는 하루하루다.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다지만, 지속적으로 경계심을 유지하거나 올려야 한단다. 틈 날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전세계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끝이 모르게 올라가고, 그 안에 살아 숨 쉬었을 한 명 한 명은 그저 사망자 숫자 하나 올리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소수자 및 약자에 대한 배려’와 ‘형평성’,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다수의 안전’ 그리고 ‘종교의 자유’와 ‘공공 보건’ 등 어디까지가 꼭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고 어디부터는 다수의 안전을 위해 양보해야하는지, 소중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하거나 논쟁해보지 못한 일들이다.
이런 비일상적 일상 속에서 새로운 합의와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한국사회가 이번 기회에 꼭 해야 할 일들 중에 한가지이다. 너무 당연하게 양보되거나 위기상황이니 모른 척 넘어가고 있는 일들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위기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애써 쌓아올린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겠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사회의 여러 다양한 모습을 보게 해주고 있다. 아니,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중 하나가 확진자의 동선을 다루는 우리의 모습이다. 지자체에서 보내는 확진자의 동선 메시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계심을 높인다. 하지만, 개개인의 매우 사적인 정보까지 모두에게 노출되며, 불필요한 억측과 조롱 또한 이어진다. 실제로 몇몇 확진자의 동선공개 이후,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느냐고 힐난하거나, 개개인의 매우 내밀한 사적 활동까지 공공연히 내뱄고 범죄를 저지른 듯 비난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에서도 이미 이 부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고, 얼마 전 중앙안전대책본부에서도 확진자의 동선 공개에 대해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한 번 점검해야할 사항이지만, 위기 상황속에서 공공의 안전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일정한 사회적 기준과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몇몇 확진자의 동선에서 살펴보았으면 하는 점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사회는 ‘잠시 멈춤’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자 의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몇몇 확진자의 동선에는 장소 정보 이외에, 절대로 멈출 수 없는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일상이 함께 담겨있다. 어떤 확진자들의 동선 속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배달 일을 하고 아침 9시까지 다시 다른 회사로 출근, 이후 점심은 구내식당이나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출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닌 일상이 담겨있었다. 또한, 오전에는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퇴근이후에는 다시 음식점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일을 이어가던 확진자도 있었다. 많은 확진자들의 동선 속에는 증상이 있었음에도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한 경우도 확인 할 수 있었다.
확진자들의 동선에서 공공의 안전뿐만 아니라, ‘비대면’,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우리 이웃의 고단한 삶이 들어 있었다. 이들에게 이번 바이러스 위기는 한국사회 개개인인 분담해야 하는 고통의 총량보다 훨씬 많은 짐이 부과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따로 눈이 달려있지 않는 한, 소득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를 따라  가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가장 힘들고 어렵고 평소에 소외되어온 집단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바이러스 재난상확 속에서 사회적 고통의 차이는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게 바라보아야 하는 또 다른 민낯이 있다. 이번 전염병 위기가 오기 오래전부터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제로 진행된 사람들이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던 많은 환자들은 의학적으로는 입원치료가 꼭 필요하지 않았으나, 오래 전부터 가족과의 연락이 단절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정신과 병동 입원 환자 103명중 101명이 확진을 받았고, 이중 7명이 사망했다. 정신 병동의 철창 밖 일반병동에서는 단 두 명의 확진자만이 나왔다. 정신과 병동의 103명의 입원환자 누구도 지난 한 달간 면회나 외출이 없었다고 하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미루어 짐작 할수 있겠다. 열악한 환경과 닫힌 공간속에서 98프로가 감염되도록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또 다른 대상인, 이주민이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바이러스를 타고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시에서는 지역의 유치원등에 마스크를 배분하면서, 조선인 학교는 제외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하지만,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는다. 지난 3월3일 대구시는 주민에게 무료로 마스크를 배포했지만, 외국인주민은 제외했다. 대만 국적이지만, 대구에서 태어난 49년째 살고 있던 한 주민은 마스크 한 장 받지 못하고 배제되는 현실을 매우 가슴 아프게 이야기했다.
또한, 정부에서 발표한 이번 마스크 보급 정책은 물량부족 상황에서 나온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지만, 일주일에 겨우 두 장의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 사람들도 있다. 비자가 없는 이주민, 단기체류자 그리고 난민신청자 등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마스크를 구매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제한된 환경과 자원에서 누가 우선시되고 누가 배제되는지를 살피면, 그 사회에서 누가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 사회에서 읽어야 할 것은 비대면 너머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생물학적 위기 상황 속에만 갇혀 있다면 볼 수 없다.
비대면 사회에서의 불평등한 불안과 고통까지 읽어 낼 수 있다면 좋겠다.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고 대안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모두가 꿈꾸는 모두에게 평화롭게 안전하며, 평등한 사회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이 드러낸 감추어졌던 민낯을 살피고 물리적 거리두기와 함께 이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심리적 거리 좁히기’를 해보면 좋겠다.
언젠가 이 위기도 끝나리라 생각된다. 이 위기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를 서로 얼마나 갈망하는지,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서로를 얼마나 보듬었는지를 경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이미 사회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존재 자체가 잊혀 왔던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기억되고 일상에서 대면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 바이러스 위기에서 꼭 얻어야 할 것이다.

글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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