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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여성의 삶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로 획득하는 동시대성
작은 아씨들
김경태(2020-04-10 11:58:30)


여성의 삶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로 획득하는 동시대성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2019)은 ‘루이자 메이 올콧’이 쓴 동명의 자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앞서 이미 여러 차례 영화 및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가장 가깝게는 1994년에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가 있으며, 이 작품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남북전쟁이 한창인 19세기 미국의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가 화자가 되어, 네 자매를 비롯해 이웃하는 저택의 절친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그녀의 조력자 ‘프리드리히(루이 가렐)’와의 관계,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여성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 말고는 여자가 다른 꿈을 꾸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동시대에 주는 울림은 무엇일까.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재현을 하면서도, 동시대성을 겸비하기 위해 자신만의 해석을 새긴다.


먼저, 플롯 구성의 변화가 눈에 띈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이미 작가로서 돈을 벌기 시작한 조가 출판사 사장에게 원고를 건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작가가 되기 위한 조의 노력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사장은 소위 잘 팔리는 소설에 필요한 몇 가지 조건들을 제시하며 수정을 요구한다. 그의 주장에는 다분히 여성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 감독은 여성이 작가로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적 한계를 짚어내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쓸 수 있고 또 써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그 논의를 확장한다. 따라서 조에게 작가는 생계를 위한 직업을 넘어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7년에 걸쳐 펼쳐지는 서사는 시간순서가 아니라, 현재로부터 출발해 과거를 소환한다. 마치 조가 회상을 하듯, 혹은 앞으로 써내려갈 소설의 내용처럼, 과거는 현재 속으로 틈입해 들어온다. 현재와 과거의 교차편집은 사건의 인과적 전개보다 정서적 공명을 우선시한 전략이다. 그것은 꿈과 현실의 허망한 괴리, 신념과 현실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일례로, 과거 조가 로리의 사랑을 거부했던 장면은 곧바로 이를 뒤늦게 후회하는 현재의 조로 이어진다. 독립된 여성이 되고자 애쓰며 철없이 사랑을 거부했던 조는 보다 성숙하게 사랑을 대한다. 일과 사랑이 더 이상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망설이던 조는 자매들의 도움을 받아, 기차역으로 향하는 프리드리히를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 카메라는 그들이 극적으로 재회하며 키스하는 순간을 반대쪽에서 한 번 더 반복해서 보여준다. 특히 그 두 번째 쇼트는 그들을 실루엣으로 처리하며 결말의 클리셰에 양식적인 고전미를 더한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확인으로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자 한다. 또한 1994년작과 달리 로맨스의 완성에서 영화를 끝맺지 않는다.


이 시퀀스는 플래시포워드 등장하는 근미래와 교차된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가 출판사 사장과 소설의 인세와 저작권을 놓고 팽팽하게 실랑이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와 달리 그녀가 협상의 주도권을 지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수미상관을 이루는 결말로 사랑의 성취보다는 작가로서의 성장에 무게 추를 둔다. 나아가 로맨스 장르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은 달콤한 로맨스의 여운마저 상쇄시킨다. 조는 결혼이 소설에서조차 경제적 거래에 불과하다며 냉소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달리 상업적 의도에 부응하기 위해 여주인공을 결혼시켰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당차게 말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마침내 (남자가 아니라) 제본되어 나온 첫 소설을 품에 꼭 안는 조의 환희에 찬 표정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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