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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 문화현장 [이이화선생 별세]
민중사학의 개척자 역사가 되어 떠나다
역사 대중화 이끈 재야사학의 별, 이이화 선생 별세
이동혁(2020-04-10 12:12:33)



민중사학의 개척자,
역사가 되어 떠나다

그와 같이 민중과 가까웠던 역사학자를 우리는 달리 모른다. 그가 바라보는 역사 속엔 늘 민중이 함께 있었고, 그렇게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천착했던 그 역시도 길 위에 선 한 사람의 민중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 삶에 진솔하게 배겨 들었던 그의 주옥 같은 말과 글들. 그런 그가 이 시대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안타까운 소식에 한동안 가슴이 절절하게 메어 왔다.


민족사 정립과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헌신해 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지난 3월 18일 오전 11시경 향년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이화 선생은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으나 담낭암 진단에 따른 두 차례의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이이화 선생은 1970년대부터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 규장각,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 등 역사 관련 시민단체에서 학술 연구와 실천 운동에 매진해 100여 권의 역저를 출간하는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는 등 역사 정의 실현에 크게 기여해 왔다.


우리 지역 전주와 맺고 있는 인연도 각별했다. 동학 전문가로서 전주동학농민혁명 기념주간 사업을 통해 전주의 역사, 문화를 담아내는 다채로운 역사문화축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했고,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장기간 보관돼 있던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완산공원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영구 안장하는 데에도 힘썼다. 이런 노고를 인정해 전주시는 지난해 12월 23일 선생을 138번째 명예시민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토록 빛나는 족적을 남겨 온 이이화 선생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방황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부모가 있었으나 가출해 전국의 고아원을 전전했고, 곡절 끝에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해 ‘여관뽀이’를 하며 어렵게 졸업을 했다. 그후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했으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와 밥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가짜로 서울대 배지를 달고 한 문제집 장사부터 아이스케키, 빈대약, 가루치약 장사, 보험사 외무원, 심지어 매혈까지, 세상천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일을 다 겪었다. 학교 대신 거리에서 세상을 배우며 민초의 삶을 깊이 통감했다.


선생이 역사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른세 살, 1968년 동아일보사의 연감 편집 임시직으로 일하며 한국사 관련 책들을 접했던 선생은 평생 역사학자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다. 이윽고 선생은 1973년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을 발표하며 역사학자로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뿌리깊은나무>, <월간중앙> 등에 한국사 관련 글을 연재하고 꾸준히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며 연구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이화’ 특유의 역동성과 활달함이 돋보이는 대외 학술 활동이 전개된 것은 바로 이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한데 이어 1989년 설립된 역사문제연구소의 운영위원, 소장을 역임했다. 나아가 1993년부터는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와 관련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는데, 이는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1993), 동학농민혁명유족회(199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2004) 설립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선생이 이끌어낸 연구업적으로 1996년 발간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관한 굴지의 바이블로서 자리매김, 현재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이화 선생은 정규 코스를 밟지 않은 학계의 아웃사이더로, 곤궁함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학계에서 선생의 존재는 더욱 유별했다. 그리고 선생 자신이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일까. 선생이 조명하는 인물들은 줄곧 주류가 아닌 비주류, 지배계급이 아닌 저항하는 기층민중이었다. 그런 인식 속에서 탄생한 『한국사 이야기』(총 22권)는 이이화 선생의 평생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한국사 이야기』는 기존의 왕조사와 정치사 중심 서술이 아닌 신기원을 연 민중사적 관점의 역사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파벌』,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등 수십여 권의 저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생의 의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은 연구와 저술에만 열정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현실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 각계의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특히 친일 청산, 한일과거사 문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문제 등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는 분야의 활동에 강한 의지를 보였는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등에 참여한 것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심산상, 단재학술상, 청명학술상,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녹두대상 등 숱한 수상 경력은 그의 막대한 노고에 대해 사회가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정부는 역사 대중화와 역사 정의 실현에 기여한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0일 김거성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보내 유족을 위로하고 훈장을 전달했다.


민중사학자, 재야사학자의 대부로 불린 이이화 선생. 그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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