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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 | 연재 [여행유감]
뉴욕에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꿈꾸다
뉴욕 맨해튼
최규상(2020-08-12 10:00:29)

여행유감 | 뉴욕 맨해튼


뉴욕에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꿈꾸다
글•사진 최규상 원광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 원불교학전공


나는 대학원생이다. 우리의 사상인 동학과 개벽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있다. 대학에서 자기경영을 공부했고 대학 생활을 자기 경영하는 활동으로는 ‘100인 인터뷰’ 개인 프로젝트를 9년째 이어오고 있다. 인터뷰를 5년 정도 했을 당시 ‘대한민국이 참 건강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함께 가는 대한민국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소통하는 대한민국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자연, 민족까지 모두가 함께 가는 세상을 그려보았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유학하고 키르기스스탄에서 교육 봉사를 하며 보고 배운 것도 소통하며 함께 가는 건강한 문화였다. 생명이 외면 시 되는 사회를 보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꿈꾸었기에 외국의 건강한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왔고 생명의 본질을 의미하는 우리의 사상인 동학과 개벽학을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서른 살의 시작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에 다녀왔다. 원불교 교정원 국제부에서 주최한 ‘UN-NGO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프로그램을 소화해내기에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했음에도 용기 내어 도전한 이유는 어릴 적 꿈과 주변 분들의 연이은 권유 덕이었다. 맨해튼에서의 공식 일정은 4박 5일이었으나 자유롭게 머무르며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주어져 일주일을 더 남아 생활했다. 프로그램 참관기, 유엔 이야기, 뉴욕 이야기 순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평화활동가로서 마주한 ‘UN-NGO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1월 27일 14시간의 기나긴 비행을 마치고 존에프케네디국제공항에 도착하며 미국에서의 첫 하루가 시작되었다. 저녁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맨해튼 교당 교무님이 준비한 세계 여러 음식을 나눠 먹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뉴욕에 왔음을 실감했다. 가장 인기 있는 세계 음식을 준비해 주셨음에도 처음 접해본 음식이 많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내가 평화활동가이자 뉴요커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은 전 세계의 식자재가 모이고 각국 전통 요리의 대가들이 대거 들어와 있어 본토 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본토 음식을 맛볼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에 나의 한국적인 입맛을 새로운 맛에, 나의 귀를 새로운 소리에, 나의 마음을 새로운 사람에게 주는 생활을 한다면 뉴욕에서의 생활이 더욱더 다채로워질 것만 같았다.


 28일 종교 NGO 심포지엄 참석과 종교 연합예배가 있는 날이다. ‘베이징 선언 이후 : 여성과 평화 그리고 종교 NGO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시작에 앞서 주최 측의 소개가 있었다. 한국 같으면 대표만 소개하고 행사를 시작했을 텐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사를 준비한 사람 모두가 각자를 소개했다. 소개한 사람들의 직위가 모두 높은지는 몰라도 나에겐 모두를 귀중하게 여기는 문화로 다가왔다.


 심포지엄이 끝난 뒤에는 교당 교무님이 진행하는 명상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대에 갔다. 뉴욕대는 자유분방한 삶을 누리고 싶은 청년들의 집합지였으며, 빼곡한 건물 사이 여기저기 ‘NYU’라는 보랏빛 문장이 새겨진 깃발만이 이곳이 뉴욕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건물은 성 소수자들이 자주 모인다는 한 성당이었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 소수자 커뮤니티가 모여 사는 곳으로 뉴욕대도 성적 소수자를 가장 잘 받아들이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커밍아웃한 사람만 해도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심한 차별에 시달렸을 그들이 아웃사이더들을 포용하는 뉴욕에 정착한 후에는 오히려 사회를 이끄는 리더 역할을 했다. 뉴욕의 이러한 포용력을 받아들인다면 어느 곳이든 이점이 되어줄 것이다.


 29일에는 유엔NGO협의체 대표를 만났다. 바우티스타 대표는 오늘날 종교연합운동은 종교 간 협력의 담론을 넘어 모든 주체가 협력해 평화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이제는 종교연합의 논의가 아니라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했다. 나는 한국의 천도교와 기독교 사례를 예로 들며 주류와 비주류 종교가 뒤바뀐 사례가 있는지 그리고 이를 회복한 사례가 있는지 물었는데 대표는 기독교가 선교를 통해 토착종교을 약화시킨 사례는 너무나 많다며 먼저 사과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토착종교에게 사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오후에는 유엔종교NGO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된 히로 사쿠라이 창가학회 유엔 대표를 만나 창가학회의 역할과 활동, 평화운동에 대해 배웠다. 앞으로 모든 종교인이 다 같이 존중받고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방향을 밝혔다. 또 방글라데시 대사를 언급하며 유엔에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와서 왕성하게 활동하자 방글라데시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히로 대표에게 그동안 인터뷰를 가장 길게 한 사람의 종교가 창가학회였고 나 또한 창가학회 명예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의 책을 선물 받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무척 놀라며 반가워했다.


 30일에는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홀로코스트 추모행사에 참여했다. 유엔에서 주관한 국제회의를 직접 참관하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오후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종교센터를 방문해 다종교•다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무슬림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공식 일정을 마치는 날에는 교당 로비에 모여 종교연합세미나 자리를 가졌다. 종교란 으뜸이 되는 가르침을 뜻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연합운동이 우선 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 있다. UR(종교연합)은 UN(국가연합)과 달리 세계의 정신을 이끌고 다루는 일을 역할을 해줘야 한다.


 다시 유엔의 뿌리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1941년 8월 9일부터 12일, 미 해군의 순항함 USS 어거스타호에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타고 있었다. 유엔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도 두 사람이 만나고 난 뒤 8월 14일에 대서양헌장이 발표된 때였다. 헌장을 채택한 이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국가의 주권이 차츰 약화되다가 이어서는 철저히 파괴되기에 이른 것이다. 범인은 세계를 대상으로 발판을 넓혀가던 금융자본의 소유주인 소수 지배집단이었다. 국가의 결정권이 국가의 정부에게서 초대륙적이며 세계화된 자본을 가진 소수 지배집단의 손으로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넘어간 것이다.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기후 변화로 인류가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와있다’며 세계에 경종을 울렸고, 트럼프 대통령을 연신 쏘아보는 모습은 언론의 화젯거리가 됐다. 그런데 툰베리 뒤에 유엔사무총장이 있다는 얘기가 타당성을 얻고 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가 유엔사무총장이 되던 해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유엔에 공식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 중심의 패권적이며 폐쇄적 이익 추구이자 자신의 국가와 민족 중심의 이익 추구를 위한 것이었다. 유엔사무총장은 여전히 사업가의 눈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뜻이 통하지 않자 청년이 지구의 미래임을 연일 주창하며 그레타 툰베리를 자신의 입과 눈으로 대신해 트럼프 대통령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현재 유엔의 상태는 여러모로 나쁘지만 그래도 희망은 유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41년 어거스타호에서 생겨났던 희망을 다시 꽃피우고 훗날 살인적인 세계 질서를 부술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유엔이 다시 재기하려면 유엔의 뿌리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쿠바의 작가 호세 마르티는 진리는 한 번 깨어나면 다시는 잠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의식은 깨어났다.


 처음의 에너지가 가득한 곳
 시인 도로시 파커는 이렇게 말했다. “런던은 만족하고 있다. 파리는 자포자기한다. 뉴욕은 계속 희망한다.” 서울은 뉴욕에 비하면 쾌적한 환경을 가졌지만 사람들에게서 뉴요커의 파릇파릇한 생기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 뉴욕은 처음의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다. 다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왔으니 가혹한 현실은 뒷전이다.


 얼마 전 뉴욕을 소재로 한 영화 <조커>가 한국을 강타했다. 주인공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인데 맨정신으로는 그가 설자리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조커의 모습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요커는 인간의 공통점을 믿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많이 처해본 뉴요커는 인간이 압박을 받으면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 선택은 언제든지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뉴욕을 다녀온 많은 사람이 뉴요커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뉴요커는 말이 빠르고 거칠며, 무례하다. 발걸음은 더 빠르며, 사람들을 밀치고 지나가면서 사과 한마디 없다.’ 그런데 내가 만난 뉴욕은 달랐다. 맨해튼에서 휴대폰 유심을 사지 않아 길을 나서면 인터넷이 안 되어 수많은 뉴욕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착해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물었는데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바쁜 길을 멈추고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이는 우리가 미국 백인의 선입견을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여과 없이 받아들여 할렘을 위험한 동네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면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오해했던 부분도 인터뷰하고 난 뒤에는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오해에서 이해로 바뀌는 계기가 인터뷰였던 것처럼 현상을 바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말에 ‘조장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농부가 벼들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자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벼를 조금씩 뽑아 주었다는 알묘조장에서 유래한 말이다. 벼의 성장을 도우려 한 농부의 행동이 오히려 벼의 성장을 저해하고 죽게 했다는 것인데 나는 우리 사회도 조장된 사회가 아닐까 우려한다. 사회와 어른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한 일이 어쩌면 아이의 성장을 저해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장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면 된다. ‘100인 인터뷰’를 실천해 오는 이유 중 하나도 조장되지 않은 우리의 지혜를 모으는 데 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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