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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2 | 칼럼·시평 [작가를 찾아서]
서양화가 박민평의 繪畵精神
백학기 시인(2003-09-26 13:11:15)

1.


"모든 예술 작품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그 작가의 개성과 기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호프만(Hans Hoffmann)은 말한다. 한 작가가 세상에 나서 그 나름의 시각으로 事物과 세계를 보고, 그의 內面에서 충격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그의 독특한 개성에 의하여 표현해낸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바라보게 될 때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울림들을 우리는 경험한다.


그 울림들은 우리로 하여금 전혀 낯설며 새로운 세계를 느끼게 하기도 하며 혹은 우리들의 가슴 저려오는 유년(幼年)의 한날을 보게 하기도 한다. 산등성이를 불어가는 바람이라거나 오래도록 미루나무 끝에 머무는 노을이라거나, 어느 도시를 여행하게 될 때 문득 만나는 어두워가는 지붕들이라거나, 죽어 있다고 생각했던 사물들이 어떤 생명감을 가지고 우리의 눈 앞에 현실로 살아오며, 격정적 운동감으로 우리의 온 몸을 흔들어노는 체험을 한 회화작품에서 느꼈다고 한다면 지나칠까. 사실 예술적 감동이란 특히 그림에서의 경우는 회랑에서 그림을 감상하다가 찰나적으로 눈썹을 건드렸던 것이 머리로 가슴으로 온 몸으로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느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동의 진원을 분석적으로 논리적으로 점검해 보지만 그때는 이미 감동의 덩어리가 해체되어 찾을 길 없는 바가 되고 만다면 너무 개인적일까. 위대한 예술 작품 속에는 뭔가 새롭고 독특한 것이 표현되는 데 이는 곧 사람들의 일상적인 혹은 습관화된 인식의 양태를 바꾸어 놓아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며 이 지상에서 노동이나 작업을 아름답게 눈부시게 뒤돌아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2. 


박민평의 회화에는 서정적 색채 감각이 짙다. 이는 아마도 그의 고향이 전북 부안의 시골 농촌이고 어렸을 대 각시붕어를 잡으러 다니며 자치기를 하며 커온,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적 정서를 그가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민평 하면 떠올려지는 그의 숱한 모습들과 그의 회화정신을 곧바로 연결하는 일이란 어렵지 않다. 그와 만난 경기전 안은 노랗게 떨어져내린 은행나무 잎새들로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는 깊은 눈길로 노랗게 불타는 은행나무 잎새들의 잔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전 앞 네 거리에서 전주 천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그가 25년 가까이 봉직하고 있는 聖心女高가 있다. 경기전 안에서 은행나무 잎새들에 발목을 묻으며 우측으로 올려다보면 6층 높이의 건물이 그가 근무하는 성심여고이다. 그는 그곳 5층의 미술실에서 경기전을 내려다보며 파릇하게 돋아나는 잔디, 봄 햇살들, 新綠, 가을의 빛깔, 눈 내리는 풍경들에 이르기까지 네 계절의 변화를 참으로 화가답게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하였다. 하늘이 좋고 따뜻한 날에는 미술시간에 아이들을 경기전 안에 이끌고 가 寫生도 한다고 말하였다. 박민평의 회화는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만큼이나 정감적이며 부드럽고 따뜻하다. 일견, 서정 회화가 주는 그 양감의 질박한 면들을 박민평의 모습에서 느낄 수가 있다. 사람마다 분위기가 있듯 박민평의 분위기는 이처럼 휴머니즘에로의 回歸가 분명한 바 있는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자연과 事物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며 닦고 감싸온 그의 장인정신에서 유래한다. 그의 서정적 색채 구성은 전북의 한 시골인 부안에서 자라나 어디서나 들과 산을 접하게 되고 생활과 가장 가까운 소재로서 곧바로 그의 내면에 짙은 음각을 새기게 되어 회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미술 공부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온다라 미술관 초대 전시장에서의 그의 회화는 최근 그가 일련의 주제로서 그려오고 있는 <山> 연작들과 상이하리만치 다른 형태로 돋보이기도 한다. 정물·A(62×85, 1961)의 초기작이나 70년대 중반의 해바라기·75-B,(53×44) 장미·76-A(25×34, 1976)등은 이른바 그가 착실하게 서양 회화 공부를 해왔음을 입증한다. 정물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풍경 그리고 單一의 소재로서 장미, 해바라기를 선택하여 화폭에 옮겨놓는 그의 작업은 진지하지만 반·고호를 연상시키는 장미는 어딘지 그의 내면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분열 의식을 엿보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건강한 회화정신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정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 이후 1977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하는 <산> 연작은 방금 말한 사물의 철저한 해체 작업의 토대 위에서 깊고 넓은 세계를 지향하며 그의 유년과도 통하는 따스한 시각으로서의 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70년대 후반의 <산> 작업은 이렇듯 화실 내에서의 정물이나 풍경 그림이 화실 바깥 세계의 장미나 해바라기 소재를 거치면서 뜨겁고 치열하게 불타올라 만나게 되는 박민평 특유의 오리지널이다. 그의 '산·77-C'(34×53, 1977)을 보고 있으면 화폭에서 그려진 산으로서가 아니라 화폭을 벗어나 이어지는 생생한 산이 보인다. 산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일상이지만 한 작가의 개성과 기질에 뿌리를 둔 산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 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그는 산에 몰두해 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이 이룩해내는 화필 속에는 무수히 들끓어 품어 올라오는 진정한 예술정신이 발현된다. 예술정신, 즉 작가정신이란 무언가. 이는 한 주제를 치열하게 탐구해내며 살아있으려는 무한한 생명력이다. 대상으로서의 사물이 한 작가의 정신과 만나 일체감을 이루게 될 때 품어져나오는 눈부심이요 빛이다. 이를 박민평은 탁월하게 수행해낸다. 문학평론가 이보영은,


……박민평은 처음에는 산을 객체적인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어느 정도 表現主義的인 기법에 의하여 개성적으로 표현했지만 이내 그 대상은 상당히 내면화되어 산이라는 생명체의 고뇌요 환희가 南道的인 정감이 짙은 <山>으로 바뀌더니, 그 산은 대담하게 추상화되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색채로 표현된 우주적 交感 그것으로 화하는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잇다…. 고 말한다.



3.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에서부터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라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부심하는 흔적이 뚜렷한 박민평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특한 자기 무엇이 아니고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의 어린 날의 기억들은 따스하지 만은 않다. 크레용이나 물감이 귀한 시절에 공책 낱장에다가 그림을 그려 넣고 환쟁이가 되겠느냐 꾸중들은 일에서부터 귀 먹은 베토벤, 모차르트의 초상들을 똑같게 그리는 일 등, 그리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여 1961년 국전에 처음 출품한 경력을 계기로 현대작가 공모전 6회, 7회 입선, 國展 10회, 22회, 24회 입선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화가의 삶을 걸어가는 그에게 최근 <산> 연작은 그의 정신사에서 의미하는 바가 깊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야 하고 자연의 형태로서의 산이 아닌 그의 내면 속에 깃들어 있는 산으로 세계와 만나야 하므로, 그것이 곧 그의 예술이 되어야 하므로, 박민평은 그의 가슴속에 크고 깊은 산을 지녀 때로는 로랑생처럼 때로는 모딜리아니처럼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들에 뭉클하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했듯 위대한 예술 작품에는 항시 새롭고 독특한 무엇이 표현되어 왔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혹은 이 지상에서의 노동이나 작업을 아름답게 눈부시게 뒤돌아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약력

·1940년 전북 부안 출생

·전주대 미술교육과 졸업

·개인전 6회(전주, 서울)

·지방작가 초대전(문예진흥원)

·서양화 10인 초대전(선화랑)

·한·일 합동전(아랍문화회관)

·아시아 현대미술제(동경미술관)

·1982년 동경전(동경미술관)

·프랑스 초청 한국전(그랑팔레)

·아시아 수채화전(프레스센타)

·수채신작파전

·상형전

·한국미협 회원

·현 전주성심여고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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