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1.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코로나 시대, 새만금 해수유통과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거는 기대
이정현(2021-01-06 09:43:21)

코로나 시대, 

새만금 해수유통과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거는 기대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지난 11월 24일 새만금위원회는 환경부와 농림부가 2021년 상반기(2월)까지 수질개선 후속대책과 농업용수 공급 방안을 마련하고, 새만금개발청은 내년 2월 중에 마련할 새만금기본계획(MP)에 후속대책을 반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딱 부러지게 해수유통이라는 말은 없지만 사실상 새만금위원회가 해수유통으로 큰 방향을 잡은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30년이 걸렸다. 뼈아픈 후회, 때늦은 탄식이지만 이 또한 역사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4대강 재자연화도 그렇고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자연의 이치는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 것이다. 오직, 모두의 바다와 다음 세대를 위한 갯벌을 지키려 했던 이들에게 해수유통 결정과 함께 새만금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새만금은 뭇 생명에게 풍요의 갯벌이었다. 동진강과 만경강이 만들어 낸 세계적인 하구 갯벌은 사람과 땅의 오염원을 받아안아 갯벌 생물들의 먹이로 만들었고 어린 물고기를 길러냈다. 백합과 동죽, 바지락을 품은 갯벌과 봄에는 실뱀장어와 주꾸미, 여름은 갑오징어와 꽃게, 가을에는 전어, 겨울은 숭어를 몰아오는 바다는 사람에게도 도요물떼새에게도 풍요의 바다였다.


새만금을 찾은 수십여만 마리의 도요물떼새들은 갯벌에서 휴식을 취했다. 부지런히 먹이를 먹고 기운을 되찾아 다시 이역만리 머나먼 길을 오갔다. 화수분 같은 저금통장을 곁에 두고 산 어민들은 농한기도 없고, 정년퇴직도 없었다. 갯벌이 다칠까 조심조심 그레로 생합을 캐고 물때에 맞춰 갯벌과 바다를 들고났다. 새만금은 가난한 어민들에게 기회의 갯벌이었다. 


 그러나 1991년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바다를 틀어막아 농지를 만들겠다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시작한 이래 아름답고 풍요롭던 생명의 하구 갯벌과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미세먼지만 날리는 죽음의 황무지로 변했다. 2006년 방조제가 막힌 후 새들은 떠나고 물고기는 떼죽음 당하고, 펄은 메워져 미세먼지만 날리는 황무지로 변했다. 2004년 41만여 마리에 달했던 새만금의 조류는 2017년 1월 기준, 5만 9천여 마리로 86% 감소했다. 


바다를 누비던 어부는 불법어업으로 경비정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갯벌에서 생합을 캐던 아낙은 공공 근로를 전전한다. 푸른 바닷물이 드나들던 하구 수질은 20년간 4조 원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5급수~6급수로 전락했다. 어장이 사라진 자리는 미세먼지만 날린다. 흙이 모자라 작은 입자의 갯흙을 준설해 내부 매립토로 쓰고 중금속 오염 우려가 큰 석탄재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의 자궁이자 어패류의 산란처인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전라북도 어업 생산량은 74% 감소했다. 1990년 생산량이 2015년에도 유지되었다는 전제로 계산했을 때 2015년 한 해만 4,300억 원 손실. 1990년부터 누적했을 때 7조 5천억 원 손실이 났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반면 전남, 충남은 생산량이 두 배 정도 증가했다.  


 30년 내내 새만금은 처처공사(處處工事)다. 방조제 건설, 내부 방수제 공사, 산업단지 조성, 동서축 도로, 남북축 도로, 새만금 고속도로, 새만금 신항만 등 기반 시설 토목시설 공사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새만금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새만금산업단지는 지지부진하다 못해 중단될 상황이다. 2018년을 준공시기로 잡았지만 착공 12년이 지난 지금, 공정률은 30%에도 못 미친다. 입주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최대 100년까지 무상 임대, 법인세 감면 조치를 해주는 특혜에도 불구하고 온다는 기업이 없다.  모래 위에 도시를 짓겠다는 새만금 수변도시는 결국 나랏돈을 들여 터를 닦고 있다. 수질이 5급수인데 어떻게 물놀이와 레저 활동이 가능한 수변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오죽했으면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까지 등장했을까.


 원래 새만금사업의 목표는 100% 농지조성이었다. 그래서 농업용수를 담을 담수호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에 농지를 줄이고 복합산업단지 개발로 변경하면서 최종 농지 30%, 산업•관광용지 70%로 계획이 바뀌었다. 농지도 물을 많이 이용하는 논농사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별도로 농업용 저수지를 조성하면 새만금호에 바닷물이 들고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닷물이 드나들면 폐허로 남은 포구들이 다시 흥성스러운 살림의 공간이 된다. 메마른 갯벌엔 하구 습지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푸르름을 되찾은 바다엔 연안 어업이 살아날 것이다. 방조제가 높은 파도와 거센 해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안정적인 양식업과 어업이 가능하다. 예전보다 크게 못 미치지만 방조제와 방수제, 갯 등이 새로운 해안선이 되어 다양한 서식처를 제공할 것이다.


 국책사업, 새만금은 타지역에는 이미 잊힌 사업이다. 민간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국가예산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시대적인 흐름을 선도하고 국가적으로 이익이 되는 사업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만금은 땅부터 보여주자는 매립 속도전에서 벗어나  ‘태양광 풍력, 바이오, 수소 등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한국형 K-뉴딜의 전진기지로 가야 한다. 제품 생산에 드는 전기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한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그렇게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20년 후에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시설은 철거되고 그 자리는 다시 매립된다. 이럴 이유가 없다. 삼성 투자가 무산되면서 사라진 신재생에너지 용지를 복원해야 한다.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생산 단지 조성이 RE100 산업단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해수유통을 늘리는 것을 전제로 조력발전 도입이 가능하다면 갯벌과 바다, 미래에너지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새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북도는 새만금 해수유통 여부를 2025년에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뇌사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자는 것이다. 폭탄 돌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피해자는 전북도민이 될 것이다. 


 산으로 간 새만금 사업인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도 제동이 걸렸다. 이 프로젝트는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인 형제봉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케이블카를 깔고 호텔과 리조트 등 휴양 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이름처럼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를 모범 사례로 삼고 있다. 하지만 120년 전 교통수단으로 만들어진 산악열차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환경파괴를 이유로 대규모 산악 개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산악열차의 신규 건설도 중단된 지 오래다. 기획재정부는 12월 11일  규제 특례(법개정)를 통한 지리산 산림휴양관광 사업에 대해 논의한 결과 ‘사업 재검토’ 결론을 내렸다. 때마침 지리산 반달가슴곰도 이 결정을 환영한다는 듯이 형제봉 산악열차 예정지 부근에 모습을 드러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리산 지킴이 반달가슴곰의 봄이 기다려진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