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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 | 연재 [여성, 사회를 바꾸다]
비혼, 나의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김하람(2021-01-06 10:50:12)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비혼, 나의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


우리는 살면서 여러 불평등을 겪는다. 오랜 역사 가운데서 이미 익숙해진 불평등은 그것이 문제임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만들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며,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우리 주변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움직임들. 문화저널은 그중 우리 지역 문화예술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움직임들을 전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들의 공동체,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의 이야기를 담았다. 수많은 매체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 속에서 결혼에 대한 이상들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정말 결혼만이 행복한 결말일까. 공간비비의 상근 활동가 김란이, 이미정, 봄봄 씨는 또 다른 행복의 길을 말한다.



비혼들의 비행

‘비비’라는 이름은 ‘비혼들의 비행’의 줄임말이다. 단독비행(Flying Solo)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으로, 2003년 전주여성의전화 소모임으로 출발했다. 당시에 골드미스라든지 화려한 싱글 등의 단어가 유행을 하면서 한국여성의전화에 싱글 모임이 생겼다. 김란이 씨는 전주에서도 싱글 모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변의 30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성들에게 모임을 제안했다. 

비비 : 비혼에 대해서 결혼을 반대하거나 안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희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내가 어떻게 살 것 인가가 훨씬 더 고민의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임으로 출발했어요.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 가운데 서로 지지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출발한 비비는 한 달에 한 번 같이 모여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서로를 더욱 알게 되는 가운데 어떤 단체에 속한 소모임 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2006년 전주여성의전화에서 독립했다. 


비비 : 그때 우리 모임의 지향을 비혼여성 공동체로 설정하게 됐어요. 비혼 여성들의 커뮤니티이고 비혼 여성들과 연대하는 모임인 거죠. 그전에는 여성과 관련된 것, 경제나 미래에 대한 것, 가족, 사랑 등 굉장히 많은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2006년 이후로는 공동체를 주제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겠다기보다는 각자의 모임이 나중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여성 공동체를 향해서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 비비 구성원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란이 씨가 40대로 들어 가는 주기부터는 새로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노후나 부모 문제, 그리고 모임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것이다. 워크숍을 통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 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모임의 형태를 협동조합으로 조성하고,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김란이)

(이미정)


비비 :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니까 사회단체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주체가 되는 것이 비혼으로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 더 좋다고 생각했고요.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내든, 적게 내든 1인 1표잖아요. 누구든 공평하게 자기 의사 결정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2010년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를 오픈 하고, 2016년 협동조합으로 형태를 바꾸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합원은 7명. 여성들의 space & link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간을 조성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좀 더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비혼 여성들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비혼여성아카데미’다. 2016년부터 해마다 연중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비혼여성아카데미는 비비의 브랜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비혼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전망도 나누며 비혼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2020년에는 ‘비혼센스북토크’와 ‘여성노인공동체워크숍’을 준비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비비 : 여성노인공동체 워크숍은 여성노인공동체주택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고민하고 있어서 그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 데, 코로나로 상황이 안 좋아서... 아쉽지만 2021년에 다시 시작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간비비의 또 다른 브랜드 프로그램 ‘페미야학’은 2017년부터 진행됐다. 학제를 적용해 1, 2학기와 방학, 졸업발표회까지 1년간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강좌는 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끝이기 때문에 여성주의 공부를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다. 여섯 개의 주제를 정해 한 주제당 한 달씩 진행한다. 한 달에 세 번 만나면서 한 번은 책을 읽고 만나고, 두 번째는 그것을 가지고 토론하고, 나머지 한 번은 강연을 듣는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진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이는 것도, 강연을 듣는 것도 어렵게 되어 한 권의 책을 정해서 필사하고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 외에도 한 해 한 해 새로운 기획을 계 속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상근 활동가 3 명이 각자 운영하는 타로, 요가, 글쓰기 강좌나 고민을 나누는 상담은 일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대 비혼 여성으로 사는 것

비혼이라는 단어의 역사는 20년 정도지만, 비혼이라는 것이 특화되어 이야기된 것은 2년 정도다. 결혼을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시대에서 결혼을 선택이라고 생각하 는 것 자체가 낙인이었던 시절. 지금에 와서는 비혼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다.


비비 : 비혼은 정상적인 생애 주기 과제 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요. 가정을 꾸리고 출산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삶이 완성이 된다고 생각 을 하는 거죠. 그런 생애 주기를 거치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나중에 늙어서 혼자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하는 질문들을 하는데, 가족 이외의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 청년들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는 것도 사실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비혼을 선택 한 자들의 선택을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 이나 그들이 비혼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많은 구조는 남녀 간의 결혼을 통한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비비 : 저희가 재작년에 여성노인공동체 탐방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를 다녀왔어요. 거기에 계신 분들에게 저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비혼’에 대해 결혼의 여부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신선하게 느껴진 게, 비혼을 선언하는 한국적 사회현상이 오히려 극단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동거나 동성애 등 결혼과 관련된 다양한 대안들을 가지고 있는 서구 사람들 눈에는 비혼여성공동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던 거죠.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지만, 가족의 형태로 법적인 인정은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생활동반자보호법을 통해 두 명의 사람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조치를 했지만, 공동체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공동체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상속권이나 가족권 역시 없다. 


비비 : 가족 구성권이 좀 더 다양하게 고민되어야 된다는 것에 동의하며, 생 활동반자보호법에 대해서도 확장돼야 된다고 생각해요.최근 문제인 대통령은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종합 패키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협소하다. 노인 1인 가구의 경우, 전국적으로 여성 노인 1인 가구가 남성 노인 1인 가구에 비해 더 많지만 대부분의 1인 가구 정책은 고독사를 중 심으로 남성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집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신혼부부나 청년을 위한 정책은 많으나 비혼 여성 을 위한 제도들은 취약하다. 비비는 20 18년, 2020년에 지자체 선거와 총선에서 비혼 여성 1인 가구 정책을 제안했다. 비록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가족 구성권에서 벗어난 대안적 가족 구성을 위한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비비 : 법적 제도는 아니더라도 프로젝트들을 냈을 때 통과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어요. 여성 관련된 사업에서 이해와 의식이 있지만, 정부 프로젝트에서 심사가 올라갈수록 가장 최고 결정권자는 남성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해요.




함께 해온 시간들을 바탕으로 신뢰를 세우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해온 비비. 긴 시 간을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비비 : 처음 소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우리를 공동체로 규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공동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왔어요. 공동체의 특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어떤 규율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어요.


규율의 최소화와 만장일치제도, 적절한 거리두기가 오랜 시간 동안 큰 갈등 없이 모임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회비 납부와 월정기 모임 참여를 규칙으로 정하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강요하는

것이 없다. 또한 일을 진행할 때 모두의 동의를 얻는 과정을 통해 개개인이 소외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비비는 생활 공동체, 1인 가구 네트워크가 특징이다.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각자의 삶을 살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으로 점점 신뢰를 쌓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비 :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모임을 하다 보면 갈등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지 않거나 해산되는 경우가 많았 는데, 비비의 모임에서는 그런 갈등을 최소화하고, 거기서도 내가 내 의견을 말 하지 못했다거나 소외되는 것으로 인한 감정적 상처 없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한 것 같아요. 


비혼이 바라보는 비혼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을 행복하다 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식욕을 조절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몸매를 가지는 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행복 의 기준은 다르며, 그 모든 행복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비혼 역시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간다고 틀렸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수많은 다름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비비는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비비 :  60~70년대에는 산업 역군을 만들어 내야 해서 아이도 많이 낳아야 하는 사회였어요. 거기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80~90년대를 지나서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자기의 자아를 표출하는 것도 많아지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뛰쳐나온 사람들도 늘었어요. 70년대생 여성들이 그런 선택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90년대생 00년대생 여성들이 2~30대가 되면서 결혼의 제도나 문화를 자기중심적으로 선택해갈 수 있는 힘이 생긴 시대라고 생각해요. 점점 회사나 집단 안에서 비혼에 대해서 포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럴 수 있겠다는 허용적인 문화들이 생기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비비 :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씀이 전혀 없으신 분인데, 자식들에게 한마디 하는 문구가 있다면 ‘네가 알아서 해’였어요. 그렇지만 결혼을 안 할 줄은 몰랐던 것 같아요(웃음). 비혼의 삶이 어느 하나의 생활양식이라는 인식이 많아지면 좋겠 다는 바람이에요. 이를 위해서는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나 기술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에게도 해당되지만요.


비비 : 모르면 알려고 하거나 들으려고 해야 하는데,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사실 자신이 경험한 삶만 알지, 비혼의 삶에 대해서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비혼의 삶에 대해서 알려고 해야 하는데 자꾸 아는 것처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것은 비혼뿐만 아니라 많은 기성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신세대들에게도 나타나는 문제인 것 같아요.


기혼의 모습이 다 동일하지는 않잖아요. 결혼을 인생의 무덤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면서 비혼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이중적인 태도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경우 비혼의 모습에 대한 모델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비혼이나 기혼이나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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