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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 | 특집 [기고]
발효음식의 선구자 루나경을 만나다
발효음식의 미학을 프랑스에 알리다
한경미(2021-01-06 11:18:21)

기고 | 발효음식의 선구자 루나경을 만나다


발효음식의 미학을 프랑스에 알리다

한경미 자유기고가




프랑스 파리에서 발효음식과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 프랑스에서 31년째 살고 있는 Luna Kyung (본명 경유경, 54세)씨. 그는 프랑스에 한국의 발효음식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이다. 그 덕분에 발효음식은 썩은 것, 지저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프랑스인들은 발효음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씻을수 있게 되었다. 이미 “L’art de la Fermentation, 발효의 예술(Camille Oger와 공저, Editions La Plage, 2016)”와 "Easy Corée (2020)"를 출간한 그는 스스로를 ‘spécialiste du kimchi et de la fermentation 김치와 발효음식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2019년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심포지엄 ‘Manger le vivant pour vivre 살기 위해서 산 것을 먹는다“에 참여했던 그는 지난해 6월엔 RFI (Radio France Internationale) 라디오의 Le goût du monde (세계의 맛)에 출연하여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만큼 프랑스 사회에서 발효음식과 한국 음식을 알리는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이나 파리의 한인사회에서는 그의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우연히 알게 된 그를 지난해 여름, 파리 19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음식의 도시 전주의 독자들에게 전한다 .




프랑스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89년 3월에 파리에 왔어요. 파리 8대학 미술대(art plastique)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아티스트로서 몇 년 작업을 했습니다. 디자인 작업도 하다가 지인과 19구에 갤러리 <국경이 없는 예술공간(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s)>을 열고 큐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한국 음식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전공을 바꾼 계기가 있었습니까

당시 실험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전시 후에 음식을 내놓는 자리에 가능하면 색다른 음식을 준비했었습니다. 원래 음식 먹기를 좋아해 2009년에는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창조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개인적인 블로그였는데 어느 날 프랑스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인류 요리학 담당 기자였는데 ‘네가 하는 것이 재미있어 보인다, 발효음식을 많이 선보이는데 자기랑 같이 책을 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요리하는 사람들과 좀 더 진지하게 만나게 되고 그렇게 출간된 책이 “발효의 예술(L’Art de la fermentation)”이었어요.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한식의 세계화> 행사가 열렸을 때는 한국에 가서 사찰음식 전문가와 함께 일을 하기도 했지요. 그분들과는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이 3권인데, 아시아의 사찰음식과 발효음식에 관한 것입니다. 


발효음식은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습니까

한국 음식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 음식에는 발효음식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당시 프랑스에 알려진 한국 음식은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없을 때였는데, 중국이나 일본 음식처럼 아이덴티티가 있는 한국 음식이 뭘까 고민하던 중에 만나게 된 것이 발효음식이었습니다. 발효음식은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지요. 그런데 발효는 레시피를 따라 하는 음식이 아니라 곰팡이 효소와 같은 기다려야 얻게 되는 음식이어서 오히려 익숙한 음식 요리보다 더 미학적인 요소가 있었어요. 아티스트로서 그런 요소가 잘 맞았고, 제게는 예술작업의 연장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작업을 충분히 해놓으면 시간과 기온과 그때그때 재료의 특성들이 알아서 작업을 해주죠. 굳이 비교하자면 도예 작업과 같은데 작품을 가마에 넣은 후에는 가마가 알아서 작품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죠. 또 한 가지는 발효음식이 건강음식이다 보니 당연히 관심을 모으게 되고 한류로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을 모르는 프랑스 사람 중에도 김치를 아는 사람은 적지 않거든요. 



발효음식은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 발효음식을 섭취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발효음식에는 우리 몸에 좋은 프로바이오틱 요소가 많고 만드는 과정이 생태학적이죠. 저장 수단으로서 냉장고를 쓰지 않고 상온에 보관할 수 있으니 에너지 절약도 되고 제철 음식을 만들어서 다음 계절까지 먹을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지역마다의 지역색이 있는 지역 생산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한국의 경우는 김치고 프랑스의 경우는 치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죠. 


한국의 일간지에서 “한국, 코로나 사망 적은 이유-불 연구진이 밝힌 비결은 ‘김치’”라는 기사 (발효 배추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할 때 이용하는 ACE2효소를 억제한다는 설명)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는 ‘반신반의’예요. 발효음식이 건강음식이긴 하지만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떤 병에 좋다는 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프랑스인은 과학과 논리적인 것에 강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성향이 있는데 반해 아시아인은 정신문화가 강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더 세고 그런 차원에서 발효문화가 코로나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사실 프랑스인들에게 ‘발효(fermentation)’라는 말은 부정적인 용어였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발효(fermentation)’란 용어를 써야 할지 아니면 유산균 발효(lacto-fermentation)란 용어를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나 책이 나오면서 발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프랑스에는 발효음식의 선구자가 2명 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 또한 발효음식 선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발효에 대해 더 많은 책이 나오고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제 책이 발효음식에 대한 일종의 레페랑스(지침서)가 됐습니다. 


이어서 출판된 한국요리책 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습니까

출판사에서 제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해왔어요. 이 출판사가 원래 세계 각국의 레시피를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한국판이 없다면서 부탁을 한 거죠. 사실은 3월에 출판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묶여 있다가 6월이 되어서야 출판이 되었어요. 이 컬렉션은 인기 있는 책으로 알려져 있어요. 프랑스인이 좋아할 만한 클래식한 한국 음식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거기에 맞추어 메뉴를 짜긴 했는데 꽤 인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디오게네스의 식탁은 둥글다(La table de Diogène est ronde)라는 블로그를 2009년부터 운영해오고 계신데 제목이 아주 독특합니다. 

디오게네스는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이 분이 ‘나는 세계인이다(Je suis le citoyen du monde)’라는 말을 남겼어요. 열린 음식을 다룬다는 차원에서 붙인 이름이죠. 원래 한국 음식 블로그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양적으로 예전보다 훨씬 알려졌고 건강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인지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큽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이 지금은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변해 버려서 저는 예전의 자극성이 없는 한국 음식을 더 발굴하려고 노력해요. 문제는 k-pop을 좋아하는 젊은 층이 한국 음식을 많이 찾는데 요즈음의 자극적인 음식을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30년 전의 가정식 한국 음식을 아는 프랑스인들이 별로 없죠. 그래서 그런 음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예요. 



파리의 한국 식당 음식은 어떤가요

메뉴가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물론 잘 팔리는 음식을 기준으로 하고, 또 다양한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으니 한계가 있긴 한데 그러다 보니까 프랑스인들에게 한국 음식은 비빔밥, 불고기, 잡채, 갈비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국 음식을 현지화 시키는 과정에서 좀 더 다양한 음식이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 식당에서 취급하지 않는 한국 음식 중에서 프랑스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나리 강회나 김구이, 백김치, 오이김치, 미역국 등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 음식과 한국 음식을 하나씩 들자면

밥과 미역국, 김치를 좋아하고 프랑스 음식은 염소치즈(crottin de chèvre)와 화이트 와인의 조화를 좋아합니다. 


프랑스 음식도 장단점이 있지요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 뜨겁게 먹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죠,. 한국인은 맵고 뜨거운 음식을 좋아해 음식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없거든요.  단점은 음식이 너무 기름지다는 것, 음식을 너무 태워서 먹는다는 것,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한경미  프랑스에서 3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한경미 씨. 불문학을 전공하고 번역가, 영화감독 일을 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오마이뉴스 통신원, 경향신문, 쿨투라 등에 프리랜스로 여러 기사를 게재해왔다. 작년 문화저널 2월 호에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씨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프랑스에 한국의 발효음식을 소개한 루나 경 씨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보내왔다. 음식의 도시 전주와도 잘 맞는 주제를 보내주신 한경미 씨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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