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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페어웰
진실을 넘어 진심에 닿기 위한 침묵
김경태(2021-03-04 11:21:20)

보는 영화 읽는 영화 | 페어웰


진실을 넘어 

진심에 닿기 위한 침묵


김경태 영화평론가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2019)은 여러모로 이안 감독의 <결혼피로연>(1993)을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미국 이민 세대를 통해 동아시아권의 유교문화가 내세우는 가족주의적 가치를 고찰한다. 먼저, <결혼피로연>에서는 대만계 미국인으로, 동성 연인과 동거 중인 게이 ‘웨이퉁’은 대만에 사는 부모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 ‘웨이웨이’와 위장 결혼식을 올린다. 첫날밤, 의도치 않게도 웨이웨이는 웨이통의 아이를 갖게 된다.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우연히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끝내 침묵한 채 미국을 떠난다. 



한편, <페어웰>에서는 중국에 사는 할머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미국과 일본에 사는 두 아들의 가족들은 ‘병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며 그 사실을 할머니에게 숨긴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한 명목으로, 대신 손자의 위장 결혼식을 꾸며 중국에 모인다. 중국에서는 의사조차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진료 기록을 속이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손녀딸 ‘빌리’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자신을 극진히 아껴주는 할머니이기에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이 버겁다. 일본에 사는 큰아버지가 설득을 한다. 동양에서 개인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체의 일부이며, 따라서 할머니의 짐을 대신하는 게 가족의 의무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 즉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빌리는 차츰 그 말에 동화되어 간다.



이처럼 두 영화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통해 거짓과 진실, 고백과 침묵의 전통적 우열에 의문을 제기한다. 진실은 언제나 거짓보다 도덕적 우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진실에 대한 고백을 스스로 종용하고 또 주위로부터 종용 받는다. 진실에 대한 고백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편해지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이 언제나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들은 자신을 위한 고백보다 타인을 위한 침묵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보여준다. 고백하고 진실을 밝힐 용기만큼 침묵하고 거짓말할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주체의 도덕적 층위에서 재단하지 말고 관계의 윤리적 층위에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 거짓말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안에서 가치를 따져야 한다. 고백은 주체의 의지적 수행이지만 대상이 필요하기에 분명 관계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고백이 미칠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물어야 한다. 관계 안에서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진심이기 때문이다.



고백을 미룬 영화들은 그에 뒤따르는 제한적이고 규범적인 선택지들 하에서 펼쳐질 정형화된 서사로부터 벗어난다. <결혼피로연>의 결말은 서구의 동성애 해방운동이 독려하는 ‘정체성 정치’에 위배될지 모른다. 커밍아웃이 불러올 눈물의 호소와 표면적 갈등 대신에 아버지의 암묵적 인정으로 잔잔한 작별 속에 손주가 이를 가족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아들의 커밍아웃을 직접 마주하며 인정과 불인정이라는 선택지만이 존재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타협적인 결말이다. <페어웰>에서는 만약 할머니가 자신의 암을 인지하고 병원에 입원했다면, 그래서 가족들이 결혼식이 아니라 병문안을 위해 중국에 왔다면, 그들의 조우는 그저 슬프고 무겁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둘러싼 분노와 회한, 유머와 긴장감 등이 뒤얽힌 입체적인 감정들은 보다 평평하고 매끈해졌을 것이다. 진실을 아끼고 진심을 담은 가족은 그렇게 풍성한 감정들 속에서 다시 생생하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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