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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 | 특집
문학과 미술의 지역성과 시대정신
문화저널(2003-12-18 10:49:33)

참석자
·이영옥 소설가·인동출판사 대표
·송만규 화가·민족미수협의회운영위원
·백학기 시인·본지편집장
·때:1988년 1월 4일
·곳:소극장 예루

백학기 : 본 문화저널 3호에 특집으로 마련된 문학과 미술의 지역성과 시대정신의 좌담에 참여해주신 두 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저희 문화저널은 전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종합문화정보지의 성격을 가지고 대중들을 위한 문화의 인식과 폭을 깊이 다지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단순한 문화정보 공급지로 머물러서는 안되며 우리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대중화자업에 기여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한 능력이 문화저널에 기대되는데 이제 갓 3호를 만드는 입장에서 우리 지역문화의 창조적 작업들과 병행하여 본 좌담을 꾸미게 된 것은 더없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타 지역과 비교해볼 때 우리 전북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독자성으로 하여 그 長短이 지니는 바 복잡한 문제점을 안고 문화의 파행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여 우리 지역의 독자적인 정신 문화 일반이 뛰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지역의 논의적 점검들을 통해 유추해 볼 때 그 낙후성은 확연히 드러난다고 보겠습니다. 해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적 계층문제들이 반도 어느 곳에서나 드러나고 있지만, 남쪽 이곳에서의 문제 비중 또한 엄청난 쌓임에도 불구하고 도외시되온 게 사실입니다. 정치·경제적 의미성을 띤 제반 여건들로 하여 가장 살아 있어야 할 삶의 모습들이 해체된 형식으로 나타났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비로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절시하며 건겅하게 담아내야 할 장르로서의 문학과 미술의 문제점들이 지적되어야겠습니다.

이영옥 :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적 현실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나야 하는가라는 문학 미술인들의 자각이 없었다는 말이 되겠군요. 아까 백학기씨가 말하는 우리 전북지역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생각해 볼 때 떠오르는 건 문화의 정체성과 자각의 결여라는 것입니다.

백학기 : 결국 예술인들의 자각의 결여에서 나오는 문화의 정체성 아닌가요?

이영옥 : 그렇지요. 예로부터 전북의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한 한계라고 할까. 오랫동안 땅의 유장한 심성에 모습을 대고 있다고 할까, 그러한 이유들이 변혁을 싫어하는 원시적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예술을 할 수 있는 토양은 이쪽 지역이 강했거든요. 그것이 너무 보수적이고 생명력이 없는 전통성으로 유지되고 있는 데, 판소리 부분의 음악성과 서예 등 이른바 유한 지주 계급들이 그저 향유하고 즐기기 위한 예술 형태로 남아 있고 보존되어 있어서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만나는 사회적·시대적 과제에 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물론 그 자체 예술 형태로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판소리 문화인들에 의해서 당대와 맞게 재구성해나가는 작업은 거의 없죠. 새로운 문화의 역동성이란 바로 이러한 면에서 찾아지는 건데.

백학기 : 좋은 얘기신데요. 어느 글에선가 호남의 정신을 사랑과 혁명의 정신이라고 지목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이거다 싶더군요. 백제 시대의 정읍사가에서 밤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그것과 근세 조선의 봉전 전체에 대항하고 싸웠던 동학혁명 정신을 일컬어 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데 바로 이 뛰어난 두 정신이 발전적으로 열려 나가지 못하고 묻혀 있는 게 오늘의 지역 현실이 아닐른지. 나아가서 大野東頭點點山이라고 너른 들과 들 끝 점점이 모이고 있는 산들의 모습인 지역적 풍토성이 우리 지역인들의 너그럽고 유장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그것들이 아니었는지 짐작도 해봅니다만. 그러니까 공동체적 삶의 여러 모습들이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농악을 치면 신명이 나고 봄산 진달래 피는 들길로 상여나가면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들을 하죠.

송만규 : 그건 꼭 우리 지역만이 그런건 아닐게고 농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반도 어느 도시나 산골에 살건 마찬가지죠.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농악에 신명이 나고 상여에 눈물이 나죠. 다만 우리 지역에서는 문화의 정체성과 보수성으로 인한 운동성의 결핍, 이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문학예술인들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자각이 오랫동안 결여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 근대사에서 수많은 외세에 의한 억눌림이 반도 전체를 대한 자각이 오랫동안 결여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 근대사에서 수많은 외세에 의한 억눌림이 반도 전체를 멍들게 했고 그중에서도 일제의 침탈 이래 호남을 식량공급기지로 주무르면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파괴시켰죠. 우리는 지금 분단국가이면서 안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워나가는 시대적 책무에 발 맞추며 그에 알맞는 작품들을 생산해내는 데 열을 올려야 할 터인데 특히 우리 전북은 그런 쪽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게 사실이죠. 80년도 광주사태만 보더라도 가장 인접해 있는 도시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우리 전북 지역은 동참을 못했어요. 민주화와 민족통일로 나가는 길목에서 문화 담당의 선도에 서야 할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무가 크다고 봐요.

백학기 : 시대적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진보적 의식을 지니고 있는 문학예술인들의 양심의 문제지요. 그건 이영옥 선생님의 소설 <남으로 가는 헬리콥터>에도 나와 있죠.

이영옥 : 제 얘기로 돌아오는 데 저는 그 무렵 내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참담한 심점으로 기록해보았어요. 그때의 극심한 자괴감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여 쓴 겁니다.

백학기 : 광주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서 있는 자리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지요.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올까요?
지금도 들려오는 흥겨운 농악 소리라는 신동엽 시인의 싯귀에도 나오 있듯이 그것이 몸에 가장 잘 살아있는 기질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우리 지역이라고 봐요. 땅의 심성이 가장 잘 몸에 배어 있고 들에서 들려오는 깽매기치는 소리로 어우러진 터전. 태양 아래서의 건강한 노동등.

송만규 : 신동엽 시인은 충남 부여 사람이죠?

이영옥 :같은 백제문화권이죠.

송만규 : 이 지역의 농업 현실은 가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계속해서 소외당해온 우리 지역은 근대 산업화 과정 속에서도 비껴나 있고 실제 운동 차원에서 노동운동보다는 농민운동이 뿌리를 더 내리고 있지요. 문학미술인들의 실천적 자각을 통해서 우리의 지역 현실과 근본적으로 만나져야 하는데 그러한 현장 작업이 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예술의 큰 힘을 얻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학미술의 근대적 보수 의미로 완전한 주체와 객체의 분리 현상으로는 주고 받는 관계 밖에 성립되지 않아요. 지식인계층 다시 말하여 청년문화 담당 주체들이 운동권으로 많이 편입되는 데 노동 현장 문화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관념적인 문제로 노동운동에 접근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실제로 농촌에서의 농민운동은 작년의 소몰이싸움이나 외국농축산물 반대운동에서 보듯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큰 충격을 안겨 주었죠.

백학기 : 그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예술화, 그러니까 생명력을 얻기 위하여는 문화예술인들의 가슴속에서 얼마간 꿇어 올라야겠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농촌 현실 속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가며 삶의 근본 문제들과 맞닥뜨릴 때 제 경우 시속에 뭔가 떠오률 텐데 사실 제가 살아가는 구체적 현장 속에서 아픔과 고통이 없이는 글 한 자도 못쓰는 체질이거든요. 그러니까 실제 소몰이싸움에 참여해 본 시인과 그렇지 못한 시인이 글로 그 내용을 적어나갈 때는 엄청난 차이가나리라 생각합니다.

송만규: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이쪽 지역에 있는 문학 미술 인들은 우리 지역 현실 내용들이 체질화가 되어 있어야하며 끊임없이 문제들을 찾아 나서는 일까지 함께 하여야 된다고 봅니다.

이영옥 :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의 경우 김용택 시인은 농민적 정서가 체질화되어 맑은 가락으로 노래를 하죠. 그것이 더 넓은 의미로는 우리 조국의 현실인 분단 문제까지로 확대되기도 하죠. 모름지기 시인은 역사의 주역으로서 뛰어난 서정성과 운율로 삶의 총체적 양상을 직관으로 파악해 내는 자라야 합니다. 소설가들이 당대의 이야기꾼으로서 삶의 여러 아픈 모습들을 그려나가듯이 말입니다.

백학기 : 제대로 이야기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문학미술 인들이 중앙쪽을 선호하여 나가는 느낌이 짙어 드리는 말씀인데 오히려 우리. 지역 현실에 몸담는 작품 생산이 아쉬워요. 그렇다고 너무 지역적인 것 이되어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이영옥 :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실체로서 숙명이랄까 뭐랄까 아픔이나 슬픔, 쌓인 것들이 많은 데도 크게 터치지 못해요. 오히려 이쪽에서 ‘고요한 돈강’ 같은 가장 혁명적이고 서정적인 글이 나올 법도 한데요.

백학기 : '돈강' 은 감동을 넘어서서 삶의 지평과 세계룰 보게 하죠. 우리의 지역성과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상당히 가열하게 진행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80년대 들어 탁월한 두 잡지가 폐간되면서 소집단적인 활자 매체들이 대두되었는데요. 이를테면〈文·知〉와〈創·批〉의 성격을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에 걸맞는 ‘실천’ 의미가 중요하게 나타나게 되었죠. 그래서 〈실천문학〉의 창간이라든가, 문학적 이념과 생각을 같이하는 동인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의해서 여러 동인지들이 출현하여 그야말로 문학의 민주화를 이루게 되었지요i 이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확산시켰다는 것이죠. 다아시는 바와 같이 박노혜의 ‘노동의 새벽’을 보더라도 우리가 관념적으로 받아들였던 ‘노동’의 의미가 실제 생생하고 구체적 목소리로 우리에게 쉽게 와 닿았죠. 그리하여 이른바 노동자문학이 이 땅에도 굳건히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수기나 르뽀 소설 등 산문 분야에서도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죠. 우리지역에서는 ‘南民詩’가 젊은 시인들에 의하여 주도되면서,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학의 봉건성 보수성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줄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시대정신, 분단상황, 역사성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나 하는 긍정적인 면 도있지만, 이야기를 문학과 미술의 시대정신에 비추어볼 때 광주 쪽에서의 ‘5월시 판화집’은 즐거운 충격이었어요. 시와 판화의 건강성이죠, 역사를 향한. 그 무렵에 우리 지역에서‘땅殿’이란 시와 판화의 움직임도 있었지요.

송만규: ‘땅殿’은 순수합의 발로였죠. 기왕에 우리 주변에서 시를 쓰는 친구들이 시화전이라 하여 시 속에 양념으로 그림을 찍어 넣는 형식을 택하여 폐쇄된 공간에 걸어놓는-형식을 버린거죠.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진실로 우리 시대와 역사를 생각하는 글 쓰는 친구와 그림을 하는 몇몇이 모여 그 방법을 택한 거예요.

이영옥: 얼마전 남민시 출판기념회에서 택한 형식도 바람직하던데요. 색깔들인 한지에 그들의 자필로 시 한 구절씩 적어 압핀으로 꽂아놓는 거요. 건강하던데요.

송만규: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우리들의 표현 욕구와 예술행위를 재대로 드러내지 못했어요. 어차피 미술이란 것도 어느 사회의 일반적인 생산물처럼 사회적 생산물이라 믿는데요. 그렇다면 작가 개인의 독특하며 순수한 창작방법도중요하겠지만그사회와그시대와그역사와동떨어져따로폰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유스럽게 우리시대를 보여주는 우리 역사를 보여주는 치열한 그림 행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이란 게 문학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수인 탁월한 개인들의 전유물로 오인되어서도 안되겠고 무엇보다도 문학미술 인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런 의식들을 비판하여야 합니다.

이영옥 : 그러니까 예술에 대한 자세, 즉 태도의 문재인 것 같습니다. 문학을 하든, 미술을 하든 소위 예술 일반의 집단은 개개의 독창성과 그 다양성으로 드러나는 데, 그것이 앞 부분에서도 이야기된 것처럼. 당대의 구체적 진실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느냐에 시각이 결정돼 있다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요. 예술에 대한태도는 항시 두 가지 견해가 대립돼왔지 않아요?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도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면서 새로운 걸 이끌어냈다고 보아집니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 고유한 내적 논리와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쪽과, 예술이란 사회의 여러 활동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는 것과 다를 게 없다와 같은 예술이란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쪽이죠. 후자쪽은 실천론적.비판성을 요구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송만규씨 입장쪽에서는 전시장에서의 그림 전람회에 별반 의미를 두지않게 되지요.

송만규: 제가 전시장에서의 전람 형식을 부정한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요. 전시장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소수의 그림 관람자와 그림을 그린 작가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그 틀을 벗어나자는 거지요. 예술을 담당한 주체와 그것을 수용하는 객체 사이의 단절 현상이죠. 예술이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건강한 사회성획득, 역사성 획득일텐데 전시장에서의 형식이란 반동적이잖아요. 또한 전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란 예술에 대한고급 취미에서 비롯되는 문화귀족 주의자들 이예요.

백학기 : 그 툴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죠?

송만규 : 미술 쪽에서는 80년대 들어 미술운동이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의 체질개선을 부르짖으면서 활발히 진행되어오고 있어요. 우리의 삶의 모든 부정적인 제 현상들을 척결하면서 새로운 시각 외 미술 운동을 창조하려는 의지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우리 미술계의 국전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화풍과 모더니즘 계열의 실험미술로 양분되었던 것이70년대를 지배해온 터이지만 80년대의 리얼리즘 운동이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려는 의지로 구현되가고 있습니다.

백학기 : 미술에서의 80년대 리얼리즘 운동의 구체적 형식들은 어떻게 이야기 될 수 있는가요. 특히 우리 지역 쪽에서는.

송만규 : 서울에서의 ‘현실과 발언’ 창립전은 기존 미술인들을 당혹감으로 몰아넣었지요. 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저게 무슨 그림이냐 식이겠지만 그들이 그림이라고 생각해왔던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지요. ‘현실과 발언’전은 구호성과 함께 강한 현실성의 발언이지요. 또한 장안을 떠들썩케했던 미술공동채 소속의 화가들에 의해서 신촌역 앞의 도시벽화 ‘통일과 일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유연복 써 둥에 의한 ‘상생도’둥 미술운동이 확실히 달라졌지요. 84년 7월이든가 우리 지역 쪽에서는 놀이패 녹두골 소극장에 ‘새날의 벽’이 그려졌지요. 이러한 미술운동은 기존의 특정한 개인 창작 형식이 집단적 틀로 바뀌어가는 과정이면서 여렷이서, 함께, 지향하는 통일의지이지요.

백학기 :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논의 요지를 정리해본다면 우리 전북 지역은 여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 문학 미술인들의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자각의 결여에서 오는 문화적 정체성을 들 수 있겠고 그로 인해 운동 단계의 미성숙성, 그리하여 민주화와 민족통일로 나아가는 길에서 문화 담당의 선도에서야 할 예술인들의 실천성 결여 등등이 되겠군요. 마무리하는 말을 이영옥 선생께서 해주시지요.

이영옥 : 아까 초반에도 얘기되었듯 이 지역의 구체적 현실은 이 지역 문화 예술 담당 주체들의 자각의 결여라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운동 논리률 우리 지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게 바로 우리지역의 독자성이죠. 이 지역은 이 지역 나름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 거지요. 백학기 시인이 말했듯 ‘사랑과 혁명의 정신’이 근대 이전까지는 다른 지역보다도 강하게 태동되었는데 발전적으로 열려나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아버린 거지요. 아물든 문학 미술인을 포함한 문화담당 주체들의 진보적 의식을 가진 실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백학기 : 오랜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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