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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 | 연재 [문화저널]
<문화가이드-연극>관념에서의 탈피 그 일상의 자유로움
박병도 ·극단 황토 상임연출가(2003-12-18 10:58:45)


 인의 시적 이미지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약산 진달래」는 감상자로 하여금 떠나보내는 자의 심경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는 응축된 시적 재료로서 충분히 구체적일 수가 있다. 아울러 소설의 서술은 작가의 주제 전개에 있어서 좀더 배려가 가미된 것이어서 다이얼로그는 어쩌면 더욱 상징성을 띠고 다가오는 것 같다.

 

 희곡은 다이얼로그의 연속이다. 때로 지문이라는 것이 있어서 상황을 지시하고 설명해 주지만, 수 없이 오고 가는 대사의 전개에 그다지 충분히 적극적인 것이 되지는 못한다. 대개는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희곡은 작가의 ‘의도’를, 연출은 그 의도에 ‘해석(독자적인)’을, 배우와 기타 기술적 배려는 ‘구체적인 설명’을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알 수는 없으며, 무대에 펼쳐진 모습을 두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승화시켜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첨단의 과학이 만들어낸 카메라는, 그것이 가는 곳이 곧 관객의 눈이 된다. 카메라가 바닷속으로 가면 우리는 안방에서 해저의 신비로운 만상을 즐길 수 있고, 달나라에서 지구를 잡으면 우리는 극장에 앉아 수만 키로의 거리를 왕복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다 카메라 트릭까지 가세하면 스필버그의 재기 또한 이해함직 하잖는가 중세로부터 시작된 무대에 대한 개념은 인류가 원(圓)올 발견한 그 이상의 중요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 무대는 오늘날에 와서 극장의 형태로서 구색을 갖추고 온갖 메커니즘의 수용을 겸비하였지만, 무대의 그림은 필름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세트는 원 세트 내지는 회전무대인 경우 투셋트 등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시야의 전개를 기대해 볼 것인가. 명상이 주는 버라이어티가 잠자는 듯한 무대의 정적과 비교될 수 없는 검이 바로 앞서 말한 ‘이미지의 형상화’인 것 이다.


이제 시대가 바뀜에 따라 좀더 섬세한 정보시대에 접하게 됨에 과거의 「스토리 텔링」의 전개 형식은 세인에게 있어서 옛날이야기 정도에 불과하다. 끊임없는 정적과 대사의 기염속에 숨겨진 진실과 주재는 약간 더디게 우회하여 접근하는 법이다. 또한 양식이라는 터울 속에 갇힌 일방적 사고는, 무대 위에 죽어 나자빠진 배우가 끝내 땅속에 묻혀야 된다는 억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약속이 곧 사고를 자유롭게 해 주며, 우리는 그 약속의 질서 속에서 승화된 이상의 자유로운 환타지률 나름대로 간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20여년전에 성도착 조모와 지진 부 사이에서 태어난 핏덩이, 그래서 무밭에 묻힌 것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을 알고 20년만에 찾아온 집에 서, 청년은 말없이 턱 버티고 서있는 불은 벽돌 벽에 술병을 던지기 시작한다. 한 개 두 개…… 족히 십여분을 그렇게 던지는 손에는 콜라병 쥬스병 맥주병 샴페인병 등 아주 시원스레 빨랫줄처럼 날아가 박살나는 그 모습은 말없는 무대, 정지된 공간에 어떤 물옴을 던지는 것인가 샘 세퍼드의 ‘매장된 아이’란 작품이 갖는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정관념의 탈피에서 열리는 세계 - 것은 시나 소설을 원고 난 후에 잠시 눈을 감아 보는 그 오묘한 해방감 같은 것이 아닐까?

 문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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