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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 | 기획 [도시의 유산 | 무주의 공공건축물]
삶 속에 들어온 건축, 도시의 중심에 서다
김하람 기자(2022-01-11 13:16:32)


                                                                 속에 들어온

                                                                             건축,

                                                                 도시의 중심에

                                                                              서다


 김하람 기자 · 사진 김경기             



도시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란 어떤 것일까. 크고 웅장하며, 독창적이고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어 지어진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건축물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건축물을 갖고 있는 도시의 주민들이라면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그러나 우리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면서도 의미 있는 건축물은 뭐라 해도 공공건축물일 것이다. 


대부분의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건축물은 흰색이거나 회색의 대칭적 구조를 가진다. 민과 관이 가장 밀접하게 만나는 공간으로서 주민들의 생활을 돌보는 공간이지만 오로지 실용성을 극대화하고, 딱딱하고, 위계적인 분위기에 선뜻 들어서기도 어려우며 볼일을 마치면 빠르게 나와야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이런 공공건축물을 주민들의 삶과 가장 가깝게 다가서게 하려했던 건축가가 있다. 공공건축물을 문화적으로 해석한 건축가 정기용이다. 그는 사회의 문화적 지표가 되고 나아가서는 삶이 문화로 전환되는 것을 건축이 이끌어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공건축물이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세상과 소통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계한 그의 작품이 군단위의 작은 도시에 모여 있다. 공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그래서 그의 철학이 가장 깊게 녹아난 무주의 건축물들이다. 10 동안 그가 무주에 남겨 놓은 30 개의 공공건축물들은 이제 작은 도시의 소중한 유산이 됐다. 



정기용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공공건축물, 옷을 입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1945 충북 영동군에서 출생한 건축가 정기용. 그는 언어와 소통, 공공성, 삶과 거주, 건축의 사회적 실천 문제에 누구보다 앞서서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긴 인물이었다. 평생 건축을 천직으로 삼으며 공공건축에 힘쓴 그는 건축이란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이라 여겼다. 


정기용이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한국 건축계에서 자신의 활동의 방법론으로 삼은 것이말과 이었기 때문.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파리에서 건축을 배운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흙집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흙집은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가장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가 전통 건축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농민은 농사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새끼줄도 꼬고, 베도 짜고, 집도 짓는 종합 기술자요 문화 전수자였으나 일제강점기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자부심을 잃어버린 . 주변 경관을 찌르는 건축이 아니라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혼융되는 건축을 추구하는 그는 흙집을 통해 전통 건축에 대한 자부심을 찾길 바랐다.



그가 자연,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추구하는 것은 속에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과 사회와 건축에 대한 그의 깊은 고찰이 담긴 건축의 중심에는 있다. 공공건축물은 무엇보다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어야 하나,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은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사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축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정기용은 어떻게 그것을 파악하고 건물을 설계했을까. 바로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필요를 묻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수용했다. 


어떻게 건축해야 것인가.’ 정해진 답은 없지만 그는 평생 답을 찾아 나갔으며, 과정 속에서 무주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고 자연과 사람,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한 건축가의 고뇌의 결실이 무주 곳곳을 채웠다.







무주와의 만남

정기용은 1996년부터 10 동안 전북 무주군에서 4개의 면사무소 (주민자치센터) 공설운동장, 납골당, 버스정류장 30 개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무주 프로젝트를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국 땅에 변치 않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아직 남아 있다니!’ 그의 무주에 대한 인상이다. 아파트가 없이 트인 농촌의 풍경을 그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이것이 그가 무주에서 10 년간 공공건축물에 공을 들인 이유이다.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지다. 사람, 식물, 시간. 그는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며, 사람과 식물은 흐르는 시간으로 건축을 완성시킨다고 말했다. 변화하지 않는 건축물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과 식물이 어우러지면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 무주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공간 안에 풍경을 담으며, 식물을 통해 건축물이 다양한 변화를 나타낼 있도록 설계한 그의 철학을 만나볼 있다.


명의 건축가가 10 년간 지역의 30 이상의 공공건축을 설계한 것은 한국 현대 건축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겉으로만 본다면 공정성의 문제라든지, 획일성의 문제가 대두될 있겠으나, 오직 무주 군민을 위해 지은 건물들은 무주의 유산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영주, 공공건축으로 도시에 활기를 심다

공공건축가 제도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영주는 주민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는공공건축의 성지 떠오르며 전국 지자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007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 개관과 함께 전국 소도시를 대상으로 도심 재생을 위한 마스터플랜 구성에 참여할 곳을 모집했다. 공문을 보낸 영주만이 유일하게 마스터플랜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9 완성된 그림을 따라 이듬해 시장 직속으로디자인관리단 문을 열었고, 당시 조준배 아우리 연구본부장은 직접 부시장급인 단장을 맡고 공공건축가 명을 위촉했다. 국내 최초의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이었다.


공공건축은 국가 기관에서 주민들의 삶의 향상을 위해 짓는 건축물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전자입찰제를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부르는 건축가에게 시공을 맡기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어느샌가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능은 뒷전으로 밀리고, 낮은 건축물들만이 계속 생산되고 있었다. 조단장은 그런 공공건축물을 어떻게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주는 공간으로 바꿀지 고민했다. 나아가서는 단순히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림을 그리며 가지 공공건축 체계를 제안했다.


하나, 공공건축물의 생산 과정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바꾸자( 부서별로 나뉜 행정을 통합할 있는 체계) , 건축이 이뤄지는 모든 프로세스를 새롭게 만들자(전문가와 행정이 함께 일하는 협력적 디자인 관리 시스템) , 주민 참여를 확대시키자(건물의 건축부터 운영까지 함께 고민하고 참여할 있는 체계 구축) , 일관성 있는 도시계획을 수립하자(도시의 장이 바뀌어도 유연성 있게 지속될 있는 계획)


철길에 분단된 고립과 낙후의 대명사로 손꼽히던 영주 삼각지 지역을 포함하여 복합문화공간의 기능까지 맡은 도서관, 체육관, 수영장, 그리고 동네 곳곳에 있는 보건진료소, 경로당 새롭고 신선한 디자인, 확장된 편의성과 함께 옷을 입은 공공시설물들은 이제 시민들의 일상과 떼려야 없는 공간이 됐다.


오랜 고민과 논의의 성과가 모여 공공건축 분야에서 손꼽히는 도시가 영주는 공공건축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게 됐다. “건물이란 사용하기만 편하면 된다 생각했던 시민들도 이제는이왕이면 주변과 어울리는 예쁘고 독특한 건물이 좋겠다 공공건축물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공공의 사업을 통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은 영주의 실험이 주목을 받는 것에서 우리는 공공건축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하게 된다. 획일화되고 기능만 존재하는 공공건축물에서 벗어나 지역의 주민이 사랑하고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공공건축물이 곳곳에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유산 제대로 보기, 제대로 잇기

무주프로젝트 공공건축물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를 찾아볼 있는 지점들이 많다. 무주 군청 2층에 마련한 중정,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볼 있도록자로 꺾어 만든 버스정류장 의자. 무주 풍경을 건물 안으로 들여오는 프레임 같이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설계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예산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계획했던 것이 틀어지기도, 때로는 사용하는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변경되기도 했다. 


버려진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보건의료원은 무주 주민들에게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기용이 건물에서 가장 신경 부분은 후문이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과 그들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지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주 읍내의 풍경을 바라볼 있도록 가로로 길게 개구부를 이별과 애도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그러나 비바람이 들쳐서였을까. 누군가 유리블럭으로 그곳을 막아버려 무주의 풍경을 바라볼 없게 되었다. 국내 최초로 흙으로 지은 공공건축물인 진도리 마을 회관 역시 애초 설계와 많이 달라져 있다. 주민들은 2 누마루에 비바람이 쳐들어오자 창틀공사를 새로 문을 달았다. 1 난간으로 통하는 부분도 역시 비바람을 막는다는 이유로 본래 둥근 지붕에 차양을 덧대 달았다. 내부 보수공사도 여러 거쳤다.


정기용은평범하고 좋은 건축이란 쓰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개입하려 여지를 열어두는 이라 했다. 필요에 의해 고쳐가는 것과, 건축가의 의도를 존중하고 함께 공유하며 지켜나가는 . 어느 것이 옳다 이야기 없지만, 본래의 모습을 잃은 건축물에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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