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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 | 칼럼·시평 [문화와사람]
<작가를 찾아서>소설가 徐廷仁
'강'에서 '달궁'까지
문화저널(2003-12-18 11:13:31)


 1.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서정인의 단편 ‘강’을 기억한다. 더구나 문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시률 쓰든, 소설을 썼든, 시와 산문을 가리지 않고 문학의 입문 세계에서 어떤 독특하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서정인의 ‘강’에 대하여 아련한 향수에 짖는다. ‘강’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서정적이고 슬픈 냄새가 배어있는 그의 소설들을 읽어 나가노라면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찬 물소리처럼 흘러가는 소리들을 들을 수있다.

 대개 소설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제목의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소설을 읽어가기 마련인데 작가 서정인의 초기단편들에서 보듯 그는 우리를, 책을 읽는 독자들을 놓아주지 않고 뭔가 곰곰 하게 생각케 하는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요즘처럼 소설에 대하여 머릿속에 시끄러웠던 적이 없었던 나는 그런 의미에서 작가 서정인의 세계를 깊은 눈으로 지켜봐왔다. 그것은 작가 서정인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의 다양하고 참된 삶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그리운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게 하는 거울이라는 인상이 짙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섬세하고 날카로우며 투명한 문체로 지저분한 일상의 삶들을 걸러내는 독특한 소설기법이 다른 작가들과 구별짓게 만드는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무엇보다도 꼼꼼하고 착실하게 기록해 가는 성실성을 무기로 한다. 잘못된 삶, 타락한 삶 또는 사회, 세계에 대하여 그는 어떤 거창한 논리나 이슈로 대하지 않고 일상의 평범한 진실로 접근해 나간다. 그것은 마치 깊은 강이 멀리 흐르듯, 타락한 삶과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삶의 존재 이유와 삶의 궁극적 진실을 묻게 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속에서 생활자체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성실한 참여 속에 있음을 각성시킨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내용들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답답하게 그려져 있으며 가난한 한국적 서정들로 가득차 잔잔한 물결들로 우리의 의식을 찾게 하는 힘이 강하다.

  삶과 인간의 외연보다는 안으로의 의미로 소설을 포착해 가는 서정인은 그의 첫 창작집 ‘강’의 후기에도 나와 있듯 한 편 한 편을 쓸 때마다 장티푸스를 앓고 난 후와 같다라고 비유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소설을 한밤중 세상의 캄캄함과 아득함 속에서 의식의 가장 정제된 형식으로 언어를 택하여 원고지에 옮겨가고 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원고지 한 장마다 피가 마르고 살을 깎는 체험으로 그가 소설을 써나가는 행위는 곧 그의 작가적 성실함을 말해주는 일단이 아닐까.


 

  2. 작가 서정인은 1962년 ‘思想界’지 신인상으로 ‘後送’을 발표 작가 생활을 시작, 첫 창작집 『강』에서부터 『가위』 『토요일과금요일 사이』, 『철쭉제』, 최근의 연작소설 형식을 취한 『달궁』에 이르기까지 다섯권의 소설집을 내었다.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그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다. 단지 대학시절 학보에 발표되는 당선작들을 구경하며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는 학과공부에 더욱 충실하였다. 문학에의 동기랄까 하는 것을 굳이 따지자면 체질적으로 선천적으로의 탐구심과 사색이 그를 대학에서 문과로 택하게 하였고 문과 중에서도 이른바 영문과가 그의 공부에 걸맞을까 싶어 택하게된 것이었다.

 그 시절에 흔히 그렇듯 법관이나 의사에의 꿈은 사춘기 소년들이 가지는 사회에의 빛나는 꿈이었겠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를 지망하였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의 작가에의 출발은 군사혁명 직후 서울 삼선중 ·고등학교 근무시 어려운 생활과 여건 속에서 해매이다 여름방학 고향에 내려가 무더위와 싸우며 중편 ‘後送’을 쓰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데뷔작 ‘後送’은 그의 군대 체험이 깔려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군대체험은 성인으로 가는 사회에의 통과의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자유롭고 치열하며 발랄하고 순수한 감성의 시기에 군대라는 집단적 타율성 속에서 젊은 날들을 낭비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슬프다. 그것은 곧 그의 아름답고 슬픈 단편 ‘강’에서도 고깔모자의 사나이를 통해 군대에 의한 우울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하는 퉁 논산이라든가 입대라든가 하는 말 들 속에서 6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상처를 보게 한다. 그 다음70년대의 황석영이나 박영한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월남전 체험들과 같은 전쟁체험에서 더 깊고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우리가 경험하듯, 서정인의 군대체험은 80년대 젊은이들 상처의 원형적 씨앗이기도 하다. 그의 작가 시작이 이렇듯 군대 체험을 통해서 삶의 아프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찰들을 만나며 그는 우리의 가난하고 소외된 삶의 편린들을 이웃들의 희망 없고 어두운 묘사를 통해 그의 작가적 세계를 넓혀간다. ‘물결이 높던 날’ ‘가을비’ ‘산’‘벌판’ 등을 읽어보면 삭막하고 답답한 일상들을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하게 작가적 렌즈로 포착하여 독자들 앞에 내놓아 삶과 인간을 되돌아보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릇 좋은 소설이란 팽팽히 담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감 속에서 독자와 작가가 진쟁으로 동참하는 세계를 열어 보일 때 가능하다. 그것은 곧 쉽게 읽혀지지 않는 독자의 어려운 책읽기가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공간에서 열려진다고 생각한다면 작가에게 있어 독자는 얼마나 위대한 스승일 것인가? 서정인은 꽉 짜여진 구성과 그의 문체, 내밀한 서정으로 독자들의 긴장감을 조성시킨다.

  3. 19살 때 그는 고향 순천을 떠나서 근20년 동안 전북에서 살아오고 있다. 그 동안 그는 틈 나는 대로 산을 찾아 다녔다. 작가는 그의 작품 속에서 늘 새로운 형식을 찾아야 하고 또한 그 형식을 늘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듯 그는 매번 산을 오르고 내리며 작가적 숙명을 절감한다. 작품 하나가 산 오르기이고 매번 명지에서 새로이 산을 올라야 하는 눈부신 고통들 속에서 그는 위대한 작가이기보다는 성실한 작가이기를 고집한다. 그리하여 고산장이나 봉동장 동을 다니며 고추 사러 다니는 일도 손수 맡아 하며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세심하게 지켜보아 그의 소설 공간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결국 작가란 삶에 대한 절실한 것들을 스스로의 감동 없이는 쓸 수 없고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보아 넘기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해두는 그의 버릇은 발전하여 그의 소설미학의 근간을 이룬다.

 초기 ‘강’의 세계에서 최근 ‘달궁’의 세계까지를 훑어볼 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언어미학이나, 스타일, 작가적 세계관은 ‘강’의 세계나 ‘달궁’의 세계에서나 똑같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가 직접 접한 삶을 강에서도 그려나갔고 달궁에서도 그려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입가에 웃음을 떠올린다. 소설이란 작가가 완성시킨 허구이긴 하지만 그 허구 속에는 작가가 부딪히며 접한 세세한 현실의 단면들이 우리가 흔히 잊고 살아간다 싶은 진실들의 열려진 창고 몫을 하므로 결국 작가의‘언어의 세계’와 ‘삶의 세계’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한 것이다. 언어를 통하여 새로우며 더 나은 삶을 표출시키고, 타락하고 답답한 삶 속에서 작가는 눈부신 언어를 발견해내기 때문 일 것이다.

 나는 시간을 보며 문학적 실천과 실천적 문학에 대하여 그에게 동의를 구해보았다. 그는 특유의 속도 있는 어투로 말하였다. 광산에 가 본 작가와 광산이라고는 곁에도 가보지 못한 작가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거냐고 나에게 되물으며 민중의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나가는 훌륭한 문학 작품에는 공감이 가나 실천 류의 대명제에는 수긍이 안 간다고 말하였다. 결국 실천 류의 평론가들의 양심과 작가들의 양심이 대립될 때는 작가는 작가적 양심, 삶의 성실성에 따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는 자세와 성실성만이 작가의 몫이며 재능과 날카로운 시각과 섬세한 감수성들이 작가를 작가이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사는 전북대학 인문관 현관문을 밀치고 나올 때 차갑고 매서 운 바람이 심하게 몰아닥쳤다. 진눈깨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어둡고 흐렸다. 나는 그의 소설‘강’올 다시 한번 생각하며 ‘달궁’까지의 거리는 얼마만한 거리일까를 헤아려 보았다

 소설,  작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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