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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 인터뷰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 대표 한리안]
전주에 관한 예술적 해석 그리고 도전
글 문신 편집위원•사진 정헌규(2022-08-10 11:09:09)

인터뷰 |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 대표 한리안

전주에 관한 예술적 해석 

그리고 도전



글 문신 편집위원•사진 정헌규







미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objet)라는 인상이다. 본래의 용도에서 떼어내 새로운 프레임을 가동함으로써 사물에 창조적 본질을 발생시키는 상징적인 장르라는 점에서 미술은 확실히 오브제의 예술이다. 이런 느낌은 미술관이나 미술가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아가 미술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모든 사물과 상황들이 오브제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구성하는 구체적이고 질료적인 경험들이 미술이라는 프레임에 포착되는 순간 비일상 혹은 반일상의 오브제가 된다. 흔치 않은 경험이지만 미술관 입구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차원 변경의 문처럼 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입구에 서면 공연장에 들어서는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미술관과의 접점에서 다른 차원의 감각적 경험을 기대하는 열망은 돌이킬 수 없는 오브제의 하나다. 이런 느낌의 연장이었을까? 전주 다가동에서 만난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의 첫인상은 특별한 질감이었다.



심도(深度)를 구축하다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의 한리안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은 흐렸고, 가끔 해가 났다. 비 내린 끝이라 습습했는데, 먼 데 사물이 더욱 멀게 보였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최대한의 심도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이런 날에는 사람 사이의 대화에도 울림이 발생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한리안 대표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가 기획한 프로젝트를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첫인상은 깊었고 한편으로 정확했다. 한리안 대표는 대학에서 순수 미술(Fine Art)을 전공했다. 하지만 현대 미술에 겹겹이 덧칠된 시간의 층위에 매료되어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동양미술사로 전향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전시 기획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려움이 있었어요. 미술에 관해 좀 더 밀도 있는 공부가 필요해서 미술사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2003년에 큐레이터의 세계를 만났어요. 그해 11월에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중 대가: 장우성(張遇聖), 리커란(李可染)>전이 열렸는데, 좋은 기회가 주어졌어요. 제가 중국 미술을 경험했고, 중국어를 할 줄 알아서 전시 통역 겸 큐레이터를 맡게 되었어요.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시 기획의 세계에 매료되었죠.”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은 현충사에 모셔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을 그린 작가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백 원짜리 동전에 부조된 이순신 장군 얼굴도 그의 작품이다. 중국의 리커란(1907-1989)은 중국 현대 산수화의 혁신가로 불린다. 대표작인 ‘만산홍편’ 시리즈 중 1점은 2015년에 366억에 낙찰되기도 했다. 대가들의 전시를 지켜보면서 한리안 대표는 본격적으로 전시 기획자로 나서게 되었다. 창작자의 경험과 미술사에 관한 해박한 이론적 토대는 한리안 대표만의 독자적인 예술관을 만들어주었다.


“제가 원하는 전시를 마음껏 하려면 나만의 갤러리가 필요해요. 이것이 아트이슈프로젝트를 만든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국에서 먼저 문을 열었어요. 갤러리 운영은 작가도 중요하지만, 컬렉터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어요. 해외 컬렉터와 교류하려면 갤러리를 운영해야 해요. 그래서 새로운 미술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던 중국 베이징에 자리를 잡았죠. 중국어도 되고 또 중국 미술을 공부한 영향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전주 재해석 프로젝트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갤러리를 내고자 했지만, 서울에는 이미 많은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전주를 경험할 일이 생겼고, 전주라는 도시에 매료되었다. 그 출발은 팔복예술공장이다. 2018년 팔복예술공장이 개관하면서 개관전 <이미지의 구축: 놀이, 무대화, 상연의 유희>가 열렸다. 이 전시에는 정진용 작가와 게리 힐 작가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한리안 대표는 다른 전시를 통해 두 작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전시회에 다녀가라는 전주 출신 정진용 작가의 초청으로 한리안 대표는 처음으로 전주라는 세계를 만났다.


“전시를 보고 팔복이라는 공장지대, 그 공간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뉴욕의 예술 거리 소호(Soho), 베이징의 다산쯔에 위치한 798예술구(798艺术区)처럼 팔복예술공장은 과거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예술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구상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전주에 시립미술관이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전주에는 전주국제영화제나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세계적인 문화행사가 많잖아요. 그 순간 전주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분명하게 알았죠. 전동성당 등 전주의 소소한 풍경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2021년 4월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를 개관하면서 <백남준 개인전>을 준비한 것은 전주 입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한리안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전주비빔밥이다. 백남준은 1994년 비술비평가와의 대담에서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 백남준 어록에 수록됐다”라고 밝히면서, 전주에서의 첫 전시는 “그의 철학과 정신을 기념하고 그의 예술의 세계를 지역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한 적이 있다. 전주에 입성하면서 전주를 대표하는 예술적, 정서적, 역사적 순간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한리안 대표의 포석이었다.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는 전주를 해석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해오고 있다. 2022년의 아트 이슈는 <동학(東學) 예술 프로젝트-동학 정신 예술로 태어나다>이다. 그 첫 전시로 지난 4월 <이철량 개인전: 우주의 꽃>이 진행되었고, 6월 18일부터는 <동학 정신 예술로 태어나다_사고하는 존재>라는 주제로 <엄혁용 개인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비-시간 속으로’(1994년 作)와 ‘사유의 공간’(2022년 作)으로 구성하여 작가의 구작과 신작을 대비해놓았다. 동학 예술 프로젝트는 2023년까지 준비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 작가의 내면에 있는 ‘재해석된 동학’을 세상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전주에 온 지 햇수로 3년짼데, 갤러리 오픈을 준비하면서 전주와 전북을 많이 공부했어요. 그 과정에서 동학을 만났고, 전주에서 동학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동학을 다시 보게 되었죠. 동학이 사상이다, 혁명이다, 운동이다 여러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동학은 한국인의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시기적으로 동학보다 앞선 프랑스 혁명이 있지만, 동학이 그에 못지않다는 거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고, 평등과 평화를 말하는 것, 나아가 프랑스 혁명이 생각하지 못한 남녀평등까지 동학은 뜻을 펼쳤어요. 동학은 이후에 전개된 민주화운동이나 촛불혁명의 뿌리라고 생각해요.”


한리안 대표는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문화도 동학의 정신을 한 가닥 뿌리로 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동학이 유교•불교•도교 등 다양한 사상과 정신을 융합하고 거기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철학을 만들어낸 것처럼, K-문화 역시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역동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해낸 결과라는 것이다.



전주의 Art, 그리고 Issue


갤러리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지역에서 예술적으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느냐는 전적으로 한리안 대표에게 달려 있다. 세계적으로 개성 있는 갤러리가 국가와 도시를 대표하는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면서 세계인들에게 주목받는 스페인의 빌바오가 대표적이다. 한리안 대표의 꿈은 ‘아트이슈프로젝트’가 전주를 대표하는 갤러리가 되는 것이다. 갤러리가 오브제가 되고, 그 오브제가 새로운 오브제를 계속해서 창작해내는 선순환의 아트 프로젝트가 한리안 대표 앞에 놓인 이슈라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미술과 갤러리가 낯선 대중들에게 깊이 스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술에 관해 나름 안다고 자부하지만, 그 세부로 들어가면 미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술 앞에 놓인 낯선 대중이다.


“미술을 이해하고 갤러리를 즐겨 찾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우리 스스로 작품을 직접 느껴보는 겁니다. 예술은 우리 생활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요. 그런데 어렵게 생각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특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상을 예술적으로 살아간다면, 찻집이나 영화관처럼 갤러리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예술은 일상이라는 한리안 대표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언급한 예술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예술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 사실은 가장 특별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그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느끼는 것이 미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의 세계는 충분히 질감적이다. 알다시피 질감은 총체적 감각이다. 시각이나 청각, 후각과 다르게 질감은 대상과의 접촉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질감은 우리 ‘몸’ 자체가 감각 주체가 된다. 한리안 대표가 강조한 것처럼, 우리 스스로 감각의 주체가 되어 눈앞의 오브제를 느낄 수 있을 때, 우리 삶의 이슈(issue)가 포착될 것이다. 그 이슈를 어떻게 예술(Art)적으로 표현해내느냐가 전주와 전주 미술이 나아갈 프로젝트가 아닐까? 2022년 여름, 한리안 대표와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는 전주에 관한 예술적 해석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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