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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 | 인터뷰 [문화를 짓는 사람들]
<아리아리> 김언경 대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
김하람 객원기자(2022-11-11 22:45:23)



'문화를 짓는' 사람들 1 <아리아리> 김언경 대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



김하람 객원기자







우리의 삶은 많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어떤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때때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산다. 그렇지만 먹고살기 바쁜 그 삭막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더하는 기획자들, ‘문화를 짓는’ 사람들을 문화저널이 만난다.


아리아리, 길이 없으면 만들어 나가자


완주 상관면에 위치한 정신재활시설 회원으로 등록된 장애인과 종사자들이 모여 만든 문화공동체 아리아리. 그 중심에는 정신건강간호사 김언경 씨가 있다. 간호학과 학생 시절 정신과 실습을 하면서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을 한 그는 간호사 면허증을 따자마자 정신건강전문병원인 전라북도마음사랑병원에서 10년 정도 근무하며 정신건강간호사 자격증을 따로 땄다. 이후 그는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의 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업무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약물 교육이라든지, 병원에 잘 다닐 수 있도록 돕는 등 전반적인 상담과 관리를 해 주는 것이다. 직업상 정신장애인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그는 그들의 현실을 바라보며 참담한 마음이 든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분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참담함이 느껴져요. 무언가 즐길 거리도 없고, 같이 어울릴 거리도 없고… 시설이라도 다니면 출퇴근하듯 시설과 집을 왔다 갔다 하겠지만, 그것조차 안 하시는 분들은 하루종일 집에만 있거나, 심하면 병원을 순회하며 지내는 분들이 계셔요. 그런 경우를 보면 ‘이 사람들에게는 언제 기회가 주어지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들끼리 자주 모임도 하고, 서로 연대하며 목소리를 높여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거나 또 다른 직업군을 창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으로, 시골로 내려올수록 그런 활동의 기회가 적고 질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설에서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항상 뭔가 변함이 없이 똑같고 재미도 없고 회원들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왜 3년, 4년 계속 같은 것을 하고 있어야 되나 궁금했어요. 이 사람들과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활동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항상 고민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완주문화도시추진단의 ‘완주 컬처 메이커스 스쿨’ 사업을 만나고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을 구체화해 만들게 된 것이 ‘아리아리(구 아이리스)’다. 아리아리는 사진 촬영, 그림, 천연염색, 토탈공예, 미디어 등 회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기획하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간호사 직종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까 문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무작정 뛰어들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에게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히려 큰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왜 나는 꼭 굳이 그 편견을 해소하겠다고 이런 활동을 하려고 하나, 누구를 위해서 하는 활동인가. 정작 회원들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그는 다시 활동의 중심을 잡았다. 함께 활동하는 회원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 편견과 악조건 속에서 스스로 낙인찍어 자신을 낮춰서 생각하는 그들에게 아리아리 활동은 잃어버린 이름과 꿈을 되찾아 주었다. 


“조현병 김언경 이렇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작가 김언경, 미술작가 김언경 이런 식으로 불리는 것이 당신의 몫이었다고,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니까 오히려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병에 걸리고 여건이 좋지 못해서 포기할 뻔 했다는 회원이 있다. 아리아리를 통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작가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 그는 그림에 대해서 더 큰 꿈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꿈도 가지게 되고,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아리아리는 회원들 스스로가 자기를 사랑하고 꿈까지 꾸게 하는 것을 중점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이후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평범한 일상마저도 꿈을 꿔야 하는 것이었다. 아리아리 활동을 통해 어쩌면 너무 당연했을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기획자의 고충


2018년에 단체를 만들고 2019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니 아리아리의 대표로 활동한 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업무의 일환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활동이 이제는 업무 외적인 것들이 더 늘어나면서 점점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단다. 현재 같은 시설의 직원들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업무 외 활동이다 보니 강요할 수는 없다. 회원들의 힘으로 자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겠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그 사람들은 약을 먹으면서 자기의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버텨가는 데도 충분히 많은 힘을 쓰고 있는데, 이런 일까지 가중하게 되면 너무 힘들잖아요. 아리아리 회원들이 자주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제가 신경을 못 쓰고 있는 형편이에요. 그래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같이 고민하며 기획할 누군가가 두세 명 정도 더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어쩌면 모든 기획자들의 공통된 바람이 아닐까. 돈을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3년 이상 정신적 보상 외에 어떤 보상도 없이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기획을 위해서 모든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다해 준비해도 기획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은 ‘내가 소진되면 아리아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해요. 4년을 너무 열심히 달려오니까 지치기도 해서 약간 내려놓고 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랬다가 아예 놓아버리면 어떡하나 그게 걱정이에요.”




대화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

버거움을 느끼는 요즘이지만, 아리아리라는 끈을 놓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회원들을 위한 활동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지금까지의 활동이 아리아리 회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사랑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 그 경계를 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들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 경계를 꼭 무너뜨려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내가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분명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에게 나를 계속 맞출 순 없잖아요. 저희 회원들도 그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모두 다 다르며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경계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경계를 부수려고 하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리아리 활동을 하며 얻은 깨달음이다.


“다문화 여성팀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 회원이 ‘정신장애인인 우리는 환청도 있고 망상도 있지만 그런 소리가 하루종일 들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들린다는 그 고통은 굉장히 힘들고 괴롭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것을 들은 다문화 여성분이 말했어요. ‘그 고통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결혼하면서 이 나라에 처음 왔는데, 모든 사람이 나에게 얘기를 하지만 그 소리를 다 알아듣지 못하니까 꼭 환청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 고통이 얼마만큼 힘들지 알 것 같다’고. 상황은 다르지만 그 감정 자체를 서로 이해해주는 것이죠.”


앞으로 언제까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아리아리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대화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사회에 스며들게 되는 것. 그가 마음을 다독이며 걸어가는 이유다. 






아리아리 회원들이 공동체 활동을 통해 어쩌면 너무 당연했을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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