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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 | 문화이슈 [SNS 속 세상]
카톡업무지시금지법과 조용한 퇴직
과도한 연결과 번아웃, 조용한 퇴직의 곤란한 동맹
오민정 편집위원(2022-11-11 23:23:59)

SNS 속 세상 | '카톡업무지시금지법'과 조용한 퇴직

과도한 연결과 번아웃, 

조용한 퇴직의 곤란한 동맹



글 오민정 편집위원






“OO씨, 미안한데 다음주 출근하면 XX를 좀 처리해줄 수 있을까? 내가 월요일부터 출장이라서 말해두는 거야. 자리에 메모해 뒀고, 내가 카톡으로 내용 남겨놓을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팀원에게 일요일 저녁 늦게 전화를 했다. 당장 월요일부터 출장을 가야 하는 터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였지만 역시나 마음이 무거웠다. 늦은 저녁을 같이 하던 친구에게 고해성사를 했더니 “‘카톡업무지시금지법’ 발의되면 넌 이제 갑질 신고 감”이라며 내게 숟가락을 든 채 삿대질을 했다.



근무시간 외 반복적인 업무 연락은 갑질이자 괴롭힘이다?

지난 9월 8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의원이 퇴근 후 카카오톡 등 휴대폰을 이용한 반복적인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제6조2항, 근로자의 사생활보장 항목을 신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용자가 근무시간 외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릴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2016년에 발의된 바 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의원은 퇴근 후 문자나 SNS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78%의 지지를 받았으나 당시 과잉 규제라는 비판에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실제로 얼마 전 카카오톡의 대규모 먹통사태에도 오히려 상사의 카톡이 오지 않아 해방감을 느꼈다는 소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처럼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지시와 연락은 이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고, 여전히 미결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또 개정안이 상정된 것일까?



과도한 연결과 상시 작동하는 업무문화

‘근로시간 외 카톡업무지시금지법(이하 카톡업무지시금지법)’이 다시 부상한 이유는 무엇보다 업무환경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업무수행이 활성화됨에 따라 메신저를 통한 상시적 업무지시 사례가 증가하였으며 여전히 직장인 대다수가 퇴근 후 카톡 등을 이용한 업무지시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대면 업무수행의 증가 뿐만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지금까지 눈부시게 발전해온 디지털 기술의 일상화가 우리를 이 ‘연결지옥’에 빠뜨렸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우리는 일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을 분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연결과 상시 작동하는 업무문화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레슬리 펄로(Leslie A. Perlow)교수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녀는 컨설팅 회사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정시에 퇴근하고 퇴근 후에 휴대폰을 꺼놓도록 했다. 일정 기간 후 직원들을 분석했을 때 규칙을 지킨 실험집단은 78%가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는 답변을 한 반면, 규칙을 지키지 않은 대조군은 49%만이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레슬리 펄로 교수는 또한 만족감 외에도 과도한 연결과 상시 작동하는 업무문화가 직원들의 정신적 자원을 분산시킨다고 보았다. 이러한 조직 문화 속에서는 근로자가 자신의 업무 주도권과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번아웃’과 ‘조용한 퇴직’ 사이

언제부턴가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일상언어로 쓰이게 됐다. ‘번아웃’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지고 피로감이 오며 집중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경쟁에 내몰리고,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에 대한 열정과 효능감은 금세 사그라든다. 


최근 MZ세대 직장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퇴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용한 퇴직’이란 주어진 만큼만 일하고 그 이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한다. 물리적인 퇴직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일에서 거리를 두며 정서적으로 사직한다는 의미다. 2021년 ‘대퇴직(Great Resignation)’의 시대를 넘어 이제 인플레이션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그만두기보다 소극적 기피와 거리두기를 택한 것이다. 영리하다고 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퇴근 후 카톡을 통한 업무지시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처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러한 법적 제한은 일정부분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메신저 말고도 일과 삶이 너무 많이 밀착되어 있다. MZ세대에게 있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자아실현과 성장이라는 목표와 멀어지는 업무환경과 조직문화, 무한경쟁과 뒤쳐짐에 대한 강박, ‘갓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메신저만 통제한다고 일과 삶이 분리될 수 있을까?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 전반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 혁신, 일과 삶의 조화로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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