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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5 | 칼럼·시평 [문화시평]
<시평> 「아울로스목관 실내악단」
- 창단연주를 듣고
신상호·전북대교수(2003-12-18 12:24:42)


 옛날 옛날에 읽은 기억이라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카라마죠프 가의 형채”에 나오는 “알료샤”는 어느 밤 엔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일어오는 울분에 넘쳐 땅에 엎드려 땅에 키스를 한다-. 사람이 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고 살면서 느끼는 생명률(生命律) 또한 수없이 다양하리라.


 갑자기 덧없는 듯한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은 지난 3월 27일 예술회관에서 있었던 "Aulos wind ensemble”의 창단 연주회가 생각 나서다. 신선하고, 그러면 서도 아담한 충격을 주었었다. 비록 “알료샤”의 희열에 비길수는 없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그러한 유형의 예기치못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었다. 문확적인 토양이 기름지다 하는 우리 고장 전주이면서도 세부적인 면면이 사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곳에서 목판악기만의 앙상블출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고, 이제는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는 자극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앙상블의 다양함은 아무래도 관현악기의 어우러지는 묘미에 가장 효과적인 초점이 있다 하겠다.


 현악기들만의 앙상블은 동종(同種)의 가족 군(群)으로서의 음색 표출이기에 서정적인, 표현적인 면은 비할 바 없으나 각양 각색의 음색이 서로 얽혀드는 조화의 묘운(妙韻)은 역시 관악기가 그 중에도 더 으뜸이겠다. 그러한 특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관악기만의 앙상블 활동은 사실 미미했다. 아니 거의 없었던 듯하다. Aulos목관앙상블의 창단은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 고장 음악문화의 질적 변화의 한 단면을 암시하는 듯 하다. 현악은 현악대로, 목관은 목관대로, 금판은 금판대로 세부적인 면에서의 질적 향상을 끊임없이 추구 한 연후에 모인 관현악이래야 훌륭한 관현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말과 글로서만 생각 해 버릇 해 온 인간은 그 버릇때문에 이젠 마음속에 말과글 뿐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름답다”라는 단어에 종속된 의미로서의 “아름다음”뿐이기가 십상 이다. 말과 글로서 표현 할 길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이챈 대충 생각을 안 하려든다. 음악에서는 그 이상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말들만 너무 많이 한다. 말이 많은 곳에 예쁜 이야기는-별반 없다. 말이 많은 곳에는 오히려 함정이 있게 마련이다. 하긴 인구가 많다 보면 말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 시대도 많이 변하지만인 구는 또 오죽 많아지는가 사람으로 살면서 자기 이야기 한번 안 해 보고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국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도 기실 그러한 한 귀퉁이의 말이니-.


 헌데 한번 열심히 생각 해봐야 될게 있다. 말을 하면서 남이 듣게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게 상례인데 말 많은 와중에서 높이는 목소리의 효과는 결국 공명을 잘 일으켜야 호응을 잘 얻을 것 아니겠는가. 아하! 이제보니 목소리는 자기가 높이는 게 아니다. 자기만이 높이는 목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자기 혼자 높이는 목소리보다 남이 높여주는 목소리가 진짜목소리 ! -. 그 이상의 이상(理想)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 할것도 없고. 이 세상에 시간 없는 곳이 있을까? 도대체 시간이란 것은 누가 발견하여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자주 황당함을 느끼게 할까? 허나 끊임없이, 정말 쉴새없이,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것을-. 시간과 함께 살고있는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생존의미의 여러부문을 시간에 할애 할 수 밖에 없다.


 오랜 각고 끝에 출현한 "Aulos wind ensemble”의 장수를 비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한 개인이건, 한 단체건 오랜 생명을 유지하려면 고통받는 희열도 감수 할 수 있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아무런 것이 없어도 생명과 함께 가는 시간이 있기에 끊임없는 노력올 해야 되는 게 숙명이리라 싶다. 시간과 함께 있는 역설적 쾌미률 느낄 줄 알아야 좀 더 보람된 일에 눈올 돌릴 수 있는 심미안이 생기리라.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려 할 때 택시를 타고 갈수도 있고, 버스률 타고 갈수도 있고 또는 걸어 갈수도 있다. 걸어가면 손해인걸로 생각하는 일반 세태이지만 시간은 어느 한틈 빈틈없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선가 웃고 있으면서 걸어간 이에게 건강과 함께 역설적인 유쾌를 느끼도록 사유케 하는 것을-. Aulos의 이제 시작된 출발에 더없는 축하를 보내며 비록 힘든 작업이었고 또 이제부터도 더 힘들어야 할 작업일 보람된 일에 대한 추구가 언제나 상숭효과가 있는, 남이 높여주는 목소리인 진짜 목소리를 갖기를 비는 마음 가득하다. 꿈 따먹는 역설적인 유쾌를 항상 우리에게 안겨주는 그런 앙상블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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