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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5 | 특집 [특집]
<저널특집>교육민주화의 흐름과 본질적 제문제
최태엽·본지 편집위원(2003-12-18 13:38:28)


 1. 수술대에 오른 한국 교육, 대수술이 필요한가, 아니면 간단히 치료될 것인가. 그 같은 질문은 지난 85년과 86년 우리 교육계를 격랑처럼 몰아쳤던 소위 「민중교육」지 사건과 ‘교육민주화 선언’에서 기인한다. 거기에서 나타난 젊은 교사들의 주장은 우리 교육의 체질 개선에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사태진전이었다고 여겨진다. 아직 최종 평가률 내리긴 이르지만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 교육계가 시대변화에 따른 주체적 개혁노선에 미진했고 오히려 지나친 안일과 타율적 제어를 벗어나지 못한 채 풀어야 할 숙제를 산적케한 과오가 문제를 심상치 않은 쪽으로 몰고 가는 인상이다. 즉, 한국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는 뚜렷한 교육목표와 방향성의 부재라던가 일관성 없는 임시변통적인 교육정책말 고도 입시위주 교육이 만든 점수따기 주입식교육, 합리적 비판은 물론 역사의식마저 상실한 교과서, 일방적 지시와 전달만이 행해지며 교육을 위한 토론이 부재한 교무회의, 그에서 비롯된 학교운영의 비자율성과 획일성, 개선되어야 할 교육시설과 항상 뒷전으로 밀려난 교사들의 처우개선, 잡무와 보충수업 ·자율학습으로 인한 교사들의 격무 속에서 빚어지는 교원 적체현상, 상대적으로 과중한 교육비 부담과 끊이지 않는 교육세 전용시비, 오락가락하는 입시제도와 대학졸업정원제문제, 최근 보다 심각해진 사학의 비리와 내부갈등, 그리고 해직교사 복직문제 둥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이 많아 위기의식 마저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2. 70년대가 절대권력의 엄청난 힘 앞에서 사회전체가 숨도 제대로 못 쉰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절대권력의 붕괴를 계기로 우여곡절 끝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퉁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대 변혁과 혁신의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사적 전환기에 아무리 타성에 짖었고 보수적인 교육계라고 해도 변화에 무심한 채 예외일순 없었다. 외견상 평온을 유지했던 교육계에 던져진 최초의 파문은 서두에서 잠깐 언급된 「민중교육」의 발간이었다. 85년 5월 20일 무크지 형식으로 제1호가 출간된 「민중교육」은 출간 2개월여까지도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듯 싶었으나 당시의 정치상황과 정부의 강경한 학원정책이 맞물리면서 일대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문제가 된 「민중교육」은 일선교사들이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교육현장에서 느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주로 지적 된 내용은 첫째, 우리 교육이 일본 식민교육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둘째는 외세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입된 미국식 민주적 교육제도가 허울에 불과할 뿐 현실은 정치권력의 편의대로 충직한 국민만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었다. 전자는 그런대로 수긍이 가능했지만 후자가 문제의 불씨가 되었다. 정부는 관련교사들에 비해 현실적으로 훨씬 강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선처보다는 강경응징을 택해 결국 10여명의 교사가 본의 아니게 교직을 떠나고 그 중 2명은 재판까지 받게 돼 교육관계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두번째 바람은 이듬해인 86년 5월 10일 「민중교육」지 관련교사들의 모집단이라 할 수 있는 한국 YMCA중등교육자협의회 명의로 발표된 ‘교육민주화선언’이었다.


『……(전략) 영원한 민족사 앞에 그 책임의 일단을 회피할 수 없음을 통감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중략)……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교육부문의 민주화는 사회전체의 민주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육의 민주화는 사회의 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 ……(중략)…… 교육의 민주화는 민주사회의 이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바탕이라는 자각에서 새로운 교육건설의 역사적 과제를 젊어지고 모든 장애와 고난을 이기며 민주교육을 실천해 나갈 것을 오늘 엄숙히 선언한다.…… (후략)……』


이 선언은 최초 500여명의 교사만이 참여했고 당시 상황이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고조된 가운데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한창인 때 였다는 시기적 부적합성과 지나친 자기부정적이며 선동성을 내포한 표현이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언에는 앞에 일부 인용된 본문 외에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라’라는 둥 5개항의 요구사항이 포함되어 있는 최초의 집단적 의사표시였기에 큰 의의를 지닐 수 있었다. 비록 훗날까지도 불과 수 천명의 교사들만이 공개적으로 동조 의사표시를 했지만, 선언이 내포하는 본질적 주장에는 말없는 다수의 교사들도 묵시적 동의를 보낼 만 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 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주측으로 한 모임이 만들어져 교육민주화운동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기존의 대한교련과는 전혀 별개인 ‘민족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가 바로 그 것이다. 「전교협」의 창립과 함께 5만명에 가까운 교사가 ‘교련’을 탈피했다. 현재 시·도별 모임 외에 산하 시 ·군 지부까지 구성했으며 신문과 책자 발간등 목표관철을 위해 계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민중교육’지에서부터 일관된 이들의 목표는 첫째, 분단된 민족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적인 교육이어야 하고, 둘째, 뿌리깊은 일제식민교육의 잔재와 관료적 독선이 가져온 비민주적. 획일화를 청산한 민주적 교육이어야 하며, 셋째, 입시위주교육에서 비롯된 교육현장의 비인간적 요소들이 완전히 제거되고 인간화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지금까지 80년대 한국교육민주화운동을 간추려 살며보았다. 이들의 움직임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들 외에도 조용한 외침이 있다. 기존 교육질서 내에서 새로운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건전한 교육풍토 조성을 위해 체질개선을 꾀하는 이들 다수의 교사들도 본질적으로는 한국교육이 보다 민주화됐으면 하는 바램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상황하에서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교육당국은 문제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특히 ‘전교협’ 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직 어떤 구체적 반응이나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물론 교육이란 문제가 복잡해서 단선적이며 일시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겠지만 이들의 주장을 소수의 불만이라고 치부하거나 혹 본질은 그냥 방치해두고 임시 미봉에 그치는 해결이어서는 안된다. 교육문제는 전국민의 관심사이며 민족의 미래률 젊어질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 이상 지체될 일이 아님은 바로 교육의 직접당사자인 학생들의 충격적 행동에서 깨달아진다. 우리 교육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 ·고생들의 잇단 자살, 현장교사들의 문제인식을 뒷받침이나 하듯 계속적으로 발생된 중 ·고생들의 자살은 그 동기가 본질적으로 우리교육의 병폐와 직결된다. 죽음을 택한 이들의 극단적 행동이 바람직스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감수성에 걸 맞는 따뜻하며 인간적인 교육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3. 이들의 죽음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래도 교사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대 삶과 꿈을 지키는것 오늘, 우리들의 가르침을 죽음이라 부른다. 오늘, 깜깜한 그대 먹빛 죽음을 부활이라 부른다 여리디 여린 연초록 풀꽃 죄 지을수록 사나와 지는 모진 계절 모진 바람 앞에 천 길 죽음의 벼랑을 울며 헤매이게 하는가 누가 그대 작은 입술에 시퍼런 극약을 넣고 누가 그대. 코스모스처럼 여리디 여린 목에 운명의 끈을 조였는가 그대는 가고 여기 이 자리 욕되게 살아남아 가슴 묻는 더 이상 그리움의 구원이 될 수 없는 선생님.(이하 략) -어느 선생님의 ‘추모시’에서- 이유야 어찌됐든 친구마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 기막힌 풍토가 만연된 우리교육의 현주소. 그 최말단지대률 지켜온 교사들은 철저히 비인간화하고 비민주적행태에 오염된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알면서도 내버려둔 책임을 이들의 죽음에서 뼈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희생에 교사들은 가해자인가. 아니면 역시 같은 피해자인가. 심하게 뒤틀린 오늘의 교육문제를 교사들의 힘만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는 것인가. 심한 경우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교과내용을 학생에게 다시 부어넣는 수업행위와 학급운영, 학생면담등 학교생활지도 마저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며 형식적 반복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지나치게 열심히 공부를 가르치려하거나, 학급신문 ·또는 학교문집을 만들거나, 반 학생들에게 자율과 자치성을 높이려 하거나, 특별활동에 신문반, 민속반 등 학생들과 대화가 잘 되는 것을 만들어 이끌어 가려는 교사률 문제 교사 시했다. 또 입시가 교육의 최대목표가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식기능인으로 전락한 교사는 「참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괴로움과 더불어 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학생을 「감시」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정규수업 이외에 감독해야 하고, 잡무도 처리해야하는 문자그대로 격무에 시달린다. 이 가운데 교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지식기능인」으로서 스스로에 돌아오는 「자기비하」다. 이런 현실이니 학생들마저도 선생님을 「지식전달자」정도로 인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사회 일반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존경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타 직업에 비해 떨어진다고 교사들 스스로도 여기고 있지만 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아직도 응답자의 90%에 가까운 교사들이 교직을 「성스러운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성직」이나 「전문적 지식과 전문화된 기술을 필요로하는 직업」이란 응답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다시 교직을 택하겠다는 사람은 20%를 약간 넘는 정도다. ‘좋은교육은 좋은교사가 만든다 는 말이었다. 잘 가르쳐진 훌륭한 교사들이 아무런 정신적 ·물리적 부족함이 없이 평생동안 교단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보수 ·후생 ·복지면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보수면에서만 봐도 초 ·중등 교사의 초봉단계에서는 타 직종과 별 차이가 없으나 호봉이 높아질 수록 상승률이 뒤져 가계의 지출이 급증하는 교직경력 15~20년에 달하는 시점에선 타직종에 비해 현저한 열세를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대기업의 절반수준인 낮은 보수와 사회적 저 평가에도 불구하고 교직을 성직이라 여기며 격무를 감당하는 교사의 뒤편에는 발령을 받지 못해 대기하고 있는 「교사예비군」이 불어가는 추세가 교적을 사고파는 현상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교원적체현상은 사학비리로 빚어진 교사와 재단간의 심각한 갈등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장기간동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일부사학의 비리는 재단측이 교사의 교권까지 침해하는 양상과 독선적 횡포에는「너희들 말고도 얼마든지 선생은 있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전라북도 교육위의 자료에 의하더라도 국립사대 졸업자 1,500여명이 아직 발령을 받지 못했으며, 10여명의 교사가 강제해직 된 것으로 나타났고 자료에 나타나지 않은 반자의에 의해 교직을 떠난 숫자도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정당한 신분보장이 되지 않을 때 교사는 왜소해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학교가 인간을 대상으로 교육하며, 그 교육의 수행자가 교사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교사의 값어치는 그 누구도 감히 젤 수 없으며, 그 위치 또한 매우 고귀하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어려운 역사적 격변과 제약된 현실속에서 자라나는 젊은세대의 교육을 위해 그 동안 자기희생적 봉사를 다해 온 것도 바로 그 정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으로 만나고 합리적 설득과 솔선수범이 보여질 때 감수성이 예민한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우리 학생들이 어떤 반용을 보이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되고 사회에 비교육적 요소가 산재한 지금 교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배가되며 책임 또한 무겁다. 교사들은 교육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교단에서의 행위 하나하나률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 나가는 보루라는 뚜렷한 소명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4. 지적한 대로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무수한 문제가 시급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교육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 사회적인 민주화 열망과 동일선상에서 볼 때 교육의 민주화에서 찾아 질 수 있다. 교사가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교육현실일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교사가 자율적인 교육행위로 인해 어떠한 침해를 받아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육의 민주 화의 성패는 교사들에게 달려있다. 교사 스스로 학생위에 군림하려고 하거나, 학생들의 가치를 단순히 성적에 의해서 판단하거나, 학생은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귀한 인격임을 통감치 못하거나, 학생이 교사의 존재이유인지 혹은, 교사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혼동하거나, 교사자신이 교육현실에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해 어떤 새로운 자율적 교수활동을 추구하지도 않거나, 또 교사 스스로 교육의 주체로 자각하지 못하고 침묵할 때 다른 제 사회가 아무리 민주화된다 해도 오직 교육분야만이 비민주적 현장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인간을 교육하는 문제는 파블로프의 개나 스키너의 생쥐처럼 반복된 자극에 의해 길들여지는 것과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인간교육의 기본목표는 인간으로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깨닫게 하고 인간공동체의 가치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민주사회에서의 교육을 교사는 민주 주의 가치와 원리를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우월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교육의 중요한 역할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문화를 계승하는 새로운 문화창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소양과 올바른 역사적 시각을 갖게 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속한 인류사회의 이상을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신록과 함께 다가오는 5월은 청소년의 달이고 또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아무쪼록 스승과 제자사이 건강하고 진실한 만남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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