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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7 | 칼럼·시평 [문화저널]
<영화평>양철북
이경수․원광대 교수(2003-12-18 14:55:36)


「양철북」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문을 10여년 전부터 들은 나로서는 그 작품의 배경인 단찌히의 세밀한 풍속묘사가 영화에서는 어떻게 재현됐을까하는 점이 가장 궁금했었다. 단찌히는 오늘날 폴란드의 바웬사가 자유노조운동을 일으킨 진원지 그다니스크의 독일식 명칭이기 때문이다. 또한 콧수염을 기른 귄터 그라스의 모습과 바웹사의 모습이 묘한 일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에 매료된 사람은 작품의 영상화에서 항상 실망을 맛보게 마련이다. 자기 머리속에 그렸던 상상 속의 풍경이 영상 속에 고정된 풍경보다 더 막연하면서도 다채롭기 때문이다. 작품보다 더한 별도의 감명을 맛본 영화가 있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의사 지바고」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두 영화는 이국적인 풍속에 대한 배려가 깊었기 때문이리라.
사실상「양철북」의 배경에 대한 풍속묘사를 제대로 살려내려면 영화는 다서 시간자리 이상의 대작이 됐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단찌히에 대한 작가의 꼼꼼한 리얼리즘의 묘사가 거세되었기에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남는 것은 귄터그라스 특유의 짓궂은 그로테스크 취향이다. 오스카르의 할버이 안나 브론스키와 콜리야체크의 감자밭에서의 교접이나 어머니 아그네스와 얀브론스키의 정사 장면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바닷가에서 죽은 말대가리를 미끼로 한 뱀장어 낚시 장면이야말로 이 작가 특유의 환상적인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양철북」에 있어서 엄숙한 주네는 독일을 두 차례나 세계대전으로 몰고갔던 기존 체제에 대한 냉엄한 고발이다. 따라서 오스카르의 법적인 아버지 마째라트가 있는 재주라곤 음식 만드는 재주밖에 없고 마누라의 出奔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나찌스 돌격대의 일원으로서 미쳐 날뛰는 것으ㅗ 묘사된 것은 바로 작가의 선배 세대의 나찌즘의 狂氣에 대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추정상의 또 하나의 아버지 얀 브론스키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허약한 청년으로 소설에서 묘사된 것은 미친 나찌즘에 대해 아무런 제어도 못한 기독교에 대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스카르가 이 두 아버지를 죽음으로 유도하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서양 문학의 전통적인 모티프인 이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설득력 있게 못 살려낸 것 같다. 특히 소설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그 신랄한 풍자를 영화에서는 조심스럽게 적당한 선에서 그친 것은 역시 활자 매체보다 더 강렬한 영향을 대중엑 미치는 영상 매체의 영향력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에서는 얀 브론스키를 닮은 예수 그리스도의 석고상을 오스카르가 톱으로 산산히 분해하는 장면까지도 나온다. 기독교에 대한 귄터 그라스의 풍자가 어느 정도냐 하면 그이 두 번째 작품 「개들의 시절」에서는 남녀 인물들이 성당의 고해실에서 계간(鷄姦)을 벌이는 통렬한 장면까지 연출되는데 이때 밑에 깔린 여인은 고해실의 격자 세공 나무기둥에 코가 뭉개져 낑낑거리는 자세이다.
영상에서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오스카르를 비롯한 난쟁이들이 전장의 벙커 위에서 벌이는 연예활동이다. 여기서 오스카르가 최초로 만나 비슷한 체격의 애인이 공습으로 사망하는 것은 난쟁이가 된 현대인들의 진정한 사람의 불가능을 암시하는 것 같아 더욱 애련을 자아내개 한다. 또한 이렇게 분위기에 맞아 떨어지는 난쟁이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별 볼일 없어질 뻔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의 전환이 거의 생략된 채 오스카르가 다시 키가 커지기로 결심한 것으로 끝맺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소설의 진지한 주에와 영화의 오락성 사이의 괴리를 씁쓸하게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처럼 영화를 통해서 일깨워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최근작 「넙치」로까지 이어졌으면 하고 희망해본다. 남자가 이지가 깨지 않았을 때 유방이 셋 달린 연자의 젖을 빨고 지내던 신석기시대로부터의 남녀 관계의 묘사는 온통 이지와 살벌한 무기경쟁으로만 달려온 남성 위주의 역사에 대한 작가의 심각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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