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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0 | 칼럼·시평 [문화시평]
<시평(時評)>전북지역 연극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을 위하여
심홍만·자유기고가(2003-12-18 16:03:01)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만큼이나 「예술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답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미래를 확실하게 점칠 수 없는 거대한 현대 산업 사회속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계층과 집단들에게 고루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예술적 가치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극심한 사상적 ·이념적 갈등속에서 보다 발전된 합의 명제를 모색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반영하듯, 예술운동도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들을 통하여 보다 나은 세계로의 발전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연극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현대 과학 문명이 낳은 또 다른 매체들의 도도한 위세 앞에서 설 땅을 잠식당하고 있는 연극 예술은 존재에 대한 위협과 자기발전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극복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연극 운동을 대체로 보아 몇 가지의 중요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서구의 연극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흐름이 있는 한편 우리 고유의 연극적 양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재창조에 목표를 두고있는 흐름이 있으며, 인간의 내면파본성에 대한 이해와 극복에 집착하는 흐름의 한편에는 첨예한 역사·사회의식에 바탕을 두고 사회 변혁의 능동적 전위에 서려 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이분법적인 측면에서 고려된 다소 도식적인 분류에 불과하며, 또한 위에서 말한 흐름들이 분명한 자기의 색체를 띄고 개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거의 연극론에 있어 하나의 전형으로 간주되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베르툴트 브레히트 이후 논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우구스도 보알은 「연극과 정치를 분리하려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오도하려는것이며 이것 역시 하나의 정치적인 태도이다」라고 하면서, 현대에 이르도록 상투적인 연극뿐만 아니라 유한 주부용 TV드라마와 서부 영화에서까지 완벽하게 활용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 체계가 유일한 연극 형태가 아니라고 하여 그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을 표시하고 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예술의 진실 내용, 즉 명가 척도는 작품의 외적인 것이어서는 안되며 예술 작품의 본성을 이루고 있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내용적인 사회성과 형식적인 자율성의 독특한 구성이 예술의 진실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예술의 자율적 관계가 깨어져 예술 형식이 사회적 내용을 위한 관계가 될 때, 예술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이데올로기화하여 자율성을 상실하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II
도내의 연극 운동은 매우 어려운 현실적 여건 속에서도 그동안 눈에 두드러진 성과를 이룩한 바 있으며,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대학 연극제가 개최되고 있을 정도로 그 열기와 잠재역량이라는 측면에서 일단은 긍정적인 명가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연극계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의 일반적인 난제들, 예를 들면 재정상의 어려움과 함께 관객 확보의 문제, 불충분한 공연 시설에 대한 문제, 역량 있는 배우의 확보 문제(물론 이모든 문제는 재정상의 문제와 상호 관련되어 있다) 외에도 더 나아가서 건전하고 활발한 비명 활동의 부재와 역량 있고 참신한 작가의 빈곤 둥의 문제를 전북 연극계는 고스란히 젊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상황 속에서도 극단「황토」와 「시립극단」은 꾸준하게 그리고 눈에 뜨이는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 극단 「황토」는 1982년 창단된 이래1986년 제4회 전국 지방 연극제에서의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물보라」를 비롯한 두드러진 성과와 함께 최근 공연작품 「칠수와 만수」에 이르기까지 40회의 공연 기록을 갖고 있다.
“전문극단·고급연극”올 표방하고있는 「황토」의 그간의 공연 작품을 살펴보면 전통적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번역극에서부터 한국적인 소재를 서구의 실험적 형식에 접목시킨 작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작품 선태의 폭올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많은 극단들이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갖고서 다양한 계층의 수용자들을 골고루 만족시켜줄 수 없는 상황 아래서의 불가피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며, 극단 자체의 다양한 역량을 시험하고 비축하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다 폭넓은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극단「황토」는 더욱 분명한 자신의 성격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전문극단”올 표방하고 있는 「황토」로서 언제까지나 정통 연극이라는 이름 하에서 시대 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서구의 연극만을 되풀이한다거나 우리 고유의 연극적 양식에 대한 보다 진지한 숙고 없이 한국적 소재주의에 머무른다면 극단의 현 단계를 뛰어 넘는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극단 「황토j는 전통적 서구 연극의 형식미학의 추구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공감과 인식의 형성을 위해서 한국적이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혁에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역량 있는 작가가 절대 부족한 현실에 그 주된 원인이 있기는 하지만, 극단자체에서도 미래지향적인 안목에서 서서히 이러한 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방 연극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 연극의 수준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지방 연극 단체의 공연이 서울 연극 단체들의 공연을 독자적 의식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양되어야 하며 사회 전체 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지방의 고유한 전통과 특색, 그리고 그 지방의 현실문제에도 눈올 돌려야 한다. 이것은 인식의 대상을 편협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식의 지명이 넓게 확장됨을 의미한다.
「시립극단」은 1985년 창단되었다.「시립극단」은 이미 앞에서 언급된 연극계 전체가 안고 있는 일반척인 문제들 외에도 「시립극단」이라는 이름으로써 상정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건속에서도 최근의 공연 「오이디푸스왕」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을 포함한 몇 편의 번역극과 「단야」를 비롯한 일편의 창작극을 무대에 울렸다. 일반이 인식하기에 극단 「황토」가 전통적 사실주의 연극을 고집하는 반면 「시립극단」은 실험극 경향의 연극에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일련의 관점에서 본다면 서구의 전통적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연극의 재현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폭 넓게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면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반대로 실험적 경향을 가진 연극들도 결국은 리얼리즘 연극을 그 뿌리로 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현대 연극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명가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며, 연극적 형식 미학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 세계 구조의 실상을 인식하는 가장 적절한 연극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연극에 서사극 형식을 차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연극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것이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연극에 있어서 뮤지컬이란 장르는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 미국 상업주의의 소산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다소 편협한 관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공연은 좀 더 깊이있는 논의와 숙고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의 접합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뮤지컬은 그 연극적 표현에 있어 고도의 세련성과 완숙성을 요구하는 장르이며, 따라서 더욱 치밀한 고려와 준비가 필요하다. 어떻게보면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는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해버릴 위험마저 안고있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시립극단」의 공연은 그 내용과 형식에서 함께 비판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으며 그것을 뛰어 넘으려는 인식의 전환과 노력이 매우 긴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예술의 기능이 쾌락에 있는가 교시에 있는게 아니면 둘 다에 있는가 하는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있어온 진부한 논쟁 중의 하나이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성찰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며,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얘기한아도르노의 예술의 사회성과 자율성을 토대로 한 예술의 가치 척도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어쨌든 예술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며,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는데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성찰 위에서 극단 「황토」와 「시립극단」이 더욱 부지런히 노력하며 끝없이 커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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