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9.3 | 칼럼·시평 [문화칼럼]
삶의 가치구현을 위한 상황극복의지
朴千石(2003-12-24 12:05:39)

「삶」이란사람이 살아가는 行爲의 表現이다
그것은 곧 갓난아기의 배넷짓이요 꽃다운 靑春의 발걸음이며, 일흔 老人의 긴 한숨이다. 살아있음이 즐거웁고, 交遊함이 아름답고, 探究함이 자랑스런, 그런 行爲의 표현이 곧 「삶」의 본질이다.
살아있음을 행위로 나타내는 사람으로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그 가치를 따져보는 새삼스런 시간의 할애는 사람에게 招學이란 학문을 안겨주는 기쁨을 낳게 했다 哲學의 전문적 語義를 떠나서 보편적인 의미로, 우리는 곧잘 人間招學을 논한다. 市井에서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그 비리고 내장 썩는 내음을 역겨워함 없이 재빠른 솜씨로 한푼 두 푼 이문을 모아 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人間哲學」을 읽는다. 새벽추위를 무릅쓰고, 남들 곤히 자는 시간을 이겨내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美化員들의 고달픔 속에서 우리는「美化員의 人間哲學」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고달파도 고달픔을 하소연하지 않고, 저녁 한때 모여 앉는 오손도손 한 한 폭 그림을 위해 나날이 봉사한다. 자식이 커 가는 모습에서, 자식들이 하나둘 배움을 익혀 가는 기쁨에서 그들은 고달픔을 잊는 참스런 人間哲學을 터득한 것이다. 남보다 잘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마음 한 구석을 채우고 있겠지만, 그것을 밖으로 表出하지 않고 꾸준히 척박한 자기 현실을 가꾸어 가는 믿음이 곧 그들의 人間招學을 낳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현실을 감내하며 未來를 개척하려는意志-人間招學이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나름의 작은 행복을 향유할 자격을 쟁취했고, 나름의 오붓한 행복을 지킬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意志를 詩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찬밥은 쓸쓸하다
찬밥을 먹는 사람도
쓸쓸하다.

이 세상에서 나는 찬밥이었다
사랑하는 이여
낙엽이 지는 날
그대의 저녁 밥상 위에
나는
김 나는 따끈한 국밥이 되고 싶다.
-안도현의 「찬밥」 全文-

척박한 자기 현실에서의 비상을 시도하는 詩人의 번뜩이는 예지, 그것이 곧 「詩人의 人間哲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마다의 個性이 內在된 人間哲學은 「삶」의 가치 구현이다. 「삶」의 가치 구현은 自己充實로도 표현된다. 자기 나름의 人間哲學을 자기 것으로 확인하고 자기 것으로 발전·전개시키는 「充實」이 한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의 일, 자신의 삶을 어떤 각도에서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는 경계가 그어진다. 자신의 일에 감사하고, 자신의 일 속에서 眞理를 추출해내는 사람은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일은 부정하고 태만 하는 자는 「무료를 삼키는 기계」로의 전락을 맛보는 불행을 느낄
것이다.
자기 충실만큼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는 없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만큼 더 큰 자기 충실은 없다는 표현이다.
우리는 자기 충실의 몸부림을 自然界에서도 흔히 목도할 수 있다.
잘 가꿔진 정원에서, 노련한 정원사의 기술 ·영양적 보살핌을 받은 장미의 美的表現에서도 자기 충실을 접할 수 있겠지만, 길가에 버려진 질경이의 모질긴 生命力에서 더욱 경건한 자기 충실을 느낄 수 있다. 뭇 발길에 밟힌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터전에 뿌리내림도 가상하거니와 온 힘을 다해 뻗어 올린 줄기가 사나운 발길에 무참히 밟히면서 납작하게 땅바닥으로 기며 신음의 모습을 가꿔 가는 처연한 상황이 더욱 자기 충실로 와 닿는다.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한 「삶」의 가치 구현을 위해 자신에 주어진 조건을 극대 활용하는 상황은, 비단 질경이 뿐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극복의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감동케 하는 것은,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신에 지워진 命題를 줄기차게 지켜 가는 상황이 가슴을 저미기 때문이다
가까이 우리 文化界에도 비근한 예가 산재해 있다.
88년 독서계에 베스트 셀러 詩集으로 무명 出版社롤 돈더미에 올려놓은 「접시꽃 당신」은 어느 귀공자의 자랑스런 사랑 담이 아니다. 가난한 시인의, 절실한 사랑의, 그리고 순수한 아픔의 노래이기에 萬人의 가슴을 친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아는 민족이다.
우리는 가난을 아는 민족이다.
우리는 함께 울 줄 알고, 한 술 밥을 나눌 줄 아는 진정한 사랑의 집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弱한 자의 슬픔」을 新文學 시대에 올려놓고 있으며, 다소 빗나갔지만 카프의 활동을 수용했다.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서 「쇼리킴」을 탄생시키고, 「誤發彈」을 쏘며 자조하기도 했었다.
한때 『自由夫人」의 나비춤이 전쟁의 상처 속에 난무하기도 했지만, 『노동의 새벽」이 우리를 올리고 있는 현실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근접할 가능성과 함께, 그 현실 속에서 재생되는 「참 삶의 가치」를 구현할 줄 아는 예지가 있음을 체감한다.
우리는 旣成의 「新羅妙」를 극복하고 우뚝 선 「나는 祖國으로 가야겠다」의 외침을 자주 만나고 있다. 「참 삶 主義」를 외치는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충실이 무엇이며, 참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밝힌다.
하나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참 삶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일어선 젊은 작가들의 「삶의 충실」을 위한 저변 확대를 우리 文化의 커다란 과제라고 믿는다.
「全北민예총」의 출범이 기다려지는 뜻은, 안이했던 과거의 거부이기에 앞서 먼 앞날의 出發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기에 더욱 값지다.
「삶」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行의 표현이다.
살아있음이 즐거웁고, 글을 읽음에 나를 알고, 글을 씀에 자랑스런 그런 「삶」이 그리운 것이다.
그것은 곧이 고장作家들의 몸부림이며, 끝없는 투쟁이며, 찬란한 귀착지, 곧 삶의 가치 구현이기 때문이다.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