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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4 | 칼럼·시평 [문화저널]
순수한 결단과 용기, 그리고 4.19
오종일(2004-01-27 10:32:45)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주 시가지의 봄은 백화점 앞에 무료하게 서있는 청년 경찰과 세상 사람들이 흔히「닭장차」라 부르는 버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차에 누비옷을 입은 젊은이를 가득 태우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반짝이는 불빛을 열심히 몰고 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봄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와 있었다. 그때쯤은 학원에서는 교수와 교직원이 데모하는 제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어쩌다가 자기가 지도하는 학생이 데모 대열에 끼어 있을 때는 이를 빼내오기 위하여 멱살 잡이를 연출하며 땅바닥에 나뒹굴어야 하기도 했었다. 이럴 때일수록 학생의 눈초리는 차가워서 몸과 마음을 부지할 곳이 없었지만 재임용의 명목에 걸려들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하다보면 주렁주렁 매달린 처자식을 위하여 목구멍의 노예가 되어 불쌍하기 만한 家長으로서 모가지를 움추릴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는 남편을 보고 속없는 마누라는 흐뭇하였겠지만 만약 남편의 허상속에 감추어진 속마음을 이해하였다면 그 부인은 자기 남편의 손목을 붙들고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덩달아서 소요를 일으킨 제자들을 앞다투어 처벌하고 학원 밖으로 빨리 몰아내는 사람일수록 투철한 지성인의 사명을 가진 교수로 으시대기도 하였고 이를 보고도 어느 누구하나 선뜻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학교는 황폐하였고 바른말하는 지성이란 목아지가 날아가서 하루아침에 튀김집 주인이 되었거나 출판업자가 되기도 하였다. 하는 소리란 모두가 ‘옳소’뿐이었고 게 중에 술집에 쳐박혀 술이나 마실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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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를 볼 때마다 감격스럽다 고나 할까 대단하다 고나 할까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많다. 누구를 막론하고 할말 못할 말 큰소리치고 자기의 권한을 부르짖으며, 당당해진 모습을 보면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감탄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자세하게 하나씩 검토해보면 우리사회에 이렇게 빈 구석이 많았나 여겨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저렇게 소신 있고 신념에 불타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입에 담는 소리마다 기층 민중이 우선 이요, 노동자 농민의 권리며 대학은 평 교수가 으뜸이라는 소리뿐이다. 저 사람이 언제부터 저런 신념으로 매사마다 정의롭게 살아왔는지 놀라게 해주는 때가 많다. 그런 사람의 과거를 돌아보면 엊그제까지만 하여도 쥐죽은듯이 쳐박혀 있었거나 아니면 무슨 임명이나 한자리 받아 보겠다고 열심히 두 손 비벼대다가 떨려난 사람이었거나 하였던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투사가 되어 권익을 앞세우고 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요물단지 같아서 혈끝 만큼의 實利에도 움직임이 재빠르고 세상물정 돌아가는데 냄새맡고 적응하기란 능난 해서 모두를 그런 적응수단이 아니겠는가 보여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인격이고 인품이고 지성이고 인간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니 총장 자격도 학생이 심사해야 하고 등록금도 올리거나 내리거나 학생 마음대로 해야하며 부정입학생이 몇인가를 밝히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생에게 보여준 교수의 모습이 어떠했던가 돌아보면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총장이란 사람들은 정부의 편에서 학생 제적시키는 일에나 앞장을 섰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임명시켜준 재단과 짜고 돈 빼먹는 일을 도와주는 심부름이나 한 것이 고작 이요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놓아도 ·학생들 공부시키는데 써야할 이 돈이 경영자의 뱃속 기름기로 둔갑하였으며, 심지어는 교수라는 사람들이 입시생과 짜고 시험지까지 고쳐주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으나 학생들을 평가하는 학점이란것도 얼마만큼의 신빙성을 인정해야할지 막된자리까지 와버린 현실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학내문제를 들고 나와 소요를 일으키거나 불만을 터뜨려도 이들 앞에 선뜻 나설 수 있는 진실한 지성이 몇이나 될 것인지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 나라의 대학교수는 한국의 근대사만큼이나 다양한 구성과 복잡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 미국유학생, 서울유학생, 모교출신, 사실 대학의 설립도 일제시대에 침략자 일본에게 충직하게 봉사하는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지식인을 배출하기 위하여 식민지 수탈교육을 배워다가 설립위원회를 만들고 발족한 것이 오늘날 서울대학교의 前身인 경성제국대학이었고 나머지의 지방국립대학이라야 해방 후 각도에 흩어져 있던 강습소나 전문학교가 그 모태가 되었던 것이며 사립학교란 대부분 학원사업을 하기 위하여 몇몇이 투자하여 만든 판자집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부터는 미국 사람들의 흉내를 내도록 자기 말부터 가르치는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었고, 이러한 미국세력에 일찍 빌붙은 사람들이 미국유학생 이었다. 당시만 하여도 미국한번 다녀온 사람은 천당에나 다녀온 것처럼 으쓱거렸지만 사실 미국의 문화야 정복주위와 향락주의 이상은 아니었다. 새로 만든 지방대학에서는 조금 먼저 졸업생을 배출한 서울둥지에서 사람을 데려오게 되었으니 이른바 서울 유학생이요, 그와 함께 그 대학 출신으로서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잔심부름이나 하다가 교수된 사람이 모교출신이다. 여기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아서 학문보다는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사람을 기르게되니 대부분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이 후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나라 대학 거의가 그 출발부터 학문적인 순수목적에서 시작되었다거나 교육적인 사명감이나, 높은 도덕성이나 육영하겠다는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당초부터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던 대학은 흡사 우리사회의 변동과 무관할 수 없는 副塵物이었다. 거기에다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학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오직 이승만 정부에서만은 그래도 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젊은이의 순수한 결단과 용기가 4·19 혁명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두 대학과 지식인을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정치적 세력으로 써먹거나 좀 낫다는 교수는 무슨 보좌관이다. 자문위원이다. 평가교수다 하는 이름으로 회유하고 채용해서 비서처럼 부렸다. 이름에 대학교수직과 관료직을 들락거리면서 학원을 탄압하고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교활한 지식을 제공하고 법률도 열심히 만들어 바치는 어용교수를 量産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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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학생들이 자유분방한 시대에 태어나 그들의 권익을 찾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야 하겠다고 부르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대학도 자율에 맡기고 모든 일은 대학스스로가 해결하도록 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교권이란 말도 심심치않게 나오고 또 이제는 교수가 나설 때라고 입을 모아 교수의 등을 밀어내고 있다. 그러나 학문과 인격의 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와 다른 점이다.
요즈음 학생들이 좌경화 되어 간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도 그 동안 대학교수가 사회주의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책을 보거나 업에 담으면 용공으로 몰아 부친 상황이었는데 어느 틈에 자랄 대로 자라버린 학생들의 의식은 무슨 수로 따라 잡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근본을 그르쳐버린 상황에서 당연히 치루어야 할 댓가이다. 그러나 지성이란 어느 시대나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슬기와 지혜를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국가나 사회가 어려울수록 지성을 존중하고 내일을 여는 앞날을 설계하는 차분한 마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이 다시는 최루탄을 들이키게 할 수 없고 정치바람을 살이게 할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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