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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4 | 인터뷰 [사람과사람]
시인 崔炯민족적 정서와의 만남
김은정(2004-01-27 10:37:59)


 시인 최형의 최근작 대서사시 「푸른겨울」 주인공 강준(姜斷)과 정지만은 대립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참담하게 몸부림쳐야했던 그 시대 한국인들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분단국약소민족으로서의 억울한 좌절, 통한과 갈등, 그리고 극복의 몸부림을 이 작품은 처절하리 만치 꼼꼼하게 엮고 있지만 끝내는 우리가 암담하고 황막한 겨울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희망은 시인 스스로의 일방적인 것이긴 하지만 독자들에게도 그 일방적 의지가 보다 가깝게 다가을 수 었다는 것은 문학적 흥미에 멈추지 않는 관념속의 현실적 체험때문 일 것이다. 최형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한시인의, 또는 한 작가의 「영원한 주제」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문학이란 것이 들과 강과 산과, 작은풀꽃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그렇다고 시대와 역사와 삶을 치열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일요일 오후, 고덕산이 편안하게 바라다 보이는 서노송동 최형시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이 겨레가 가장 불행했던 6·25를 전후해 그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는 스승의 묘소에 나무를 심고 와있던 참이라고 말했다.
시인이 대서사시 「푸른겨울」을 발간하면서 맨 먼저 바치고자했던 스승의 영전에 다녀온 탓인지 그는 오랜 시간동안 어두웠다. “그 피비린내의 격동기를 다룬 내 고심작이 우리 민족문학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시는 뜻이 절절하셨던 분이셨지요 오늘따라 유난히 내 작품이 허허롭다는 생각이 드는 중 이예요”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기를 뒤돌아보는 일에 익숙해져있는 최형시인을 대하면서 문학에 있어 근원적인 힘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최형시인이 3년 남짓을 바쳐 써낸 서사시 「푸른겨울」의 시대적 배경인 1950년, 그는 문학을 지망하던 대학생이었다. 이를테면 책상물림에서 6·25를 맞은 셈인데 동국대 전문부 3년을 마치고 4년째에 들어선 그는 6·25가 터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상황에서 좌익활동에 몸을 담게됐다. 그가 맡은 직책은 인민위원회의 선전책이었는데 자신의 말처럼 그 스스로 나선 것이 아니라 좌익사상에 물들었던‘숙부의 영향과 대학시절 일기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裡里형무소에 15일 동안 수감됐던 사정등으로 추천이 되어서였다. 그는 직책여건상좌익계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지만 보수적 상식성과 질서존중의 온유함을 지니고 있었던 그였던지라 계몽대를 조직, 이념적으로 대립된다해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보복을 한다거나, 사람들을 처벌하는 등의 상황을 막아내는데 애써 앞장섰다. 그가 후에 2·3개월의 빨치산생활(이것도 살기 위해 행해진 당시의 상황극복 방편이었다)을 하고서 하산했을 당시 고향사람들이 별다른 반감 없이 그를 지켜주었던 것도 계몽대의 역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도 채 못되는 짧은 기간동안 그가 겪어내야했던 이념적 대립상황 속의 삶은 일생을 통해서도 가장 큰 굴곡이었지만 문학을 삶의 지명으로 삼은 그에게는 가장 귀중한 체험으로 각인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푸른겨울」도 자신이 몸소 체험하고 고뇌했던 진실된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서 기록의 성실성과도 같은 생생함을 또 다른 감동으로 전하고 있는 셈이다.
金提 금구 대농가에서 유복하게 자랐던 그는 문학소년시절 정지용의 시를 읽으며 가슴을 적셨고, 그의 시편들에서 민족시의 큰 물줄기를 감지했었다고 말했다.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 나가 앓았을 법한 글쓰는 일에의 열병을 지독하게 치러냈던 그였지만6·25이후부터 수년동안문학을 잊고 살아야했다. 이념의 대립, 그 갈등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당시, 문학을 생각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일 정도로 그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훨씬 더 급박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휴전될 때까지의 3년여동안 최형시인은 좌 ·우익 대립의 처절한 민족적 비애를 너무도 가깝게 지켜내 오면서 삶을 바라보는 눈은 자신도 모르게 어지럽혀져 있었다고 말했다.“실상은 그 혼란스런 시기에도 재화는 엄청난 역할을 했었지요 비록 짧은 동안이지만 인민위원회에 몸담고, 입산까지 했던 내가 고향에 돌아와 살수 있었던 것도 지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을 거예요 돈이 해결할수 있는 일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최시인은 부(富)의 축적 의미를 너무도 잘 안다. 그는 하산한 이후 친분있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 전남 강진군 성전중학교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4.5년후다시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리며 전주 등지에서 교단생활을 지켜오다 84년 옥구고동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전쟁의 흔적이 조금씩 가셔지고, 일상적 삶에파묻혀. 지내는동안 그는 잊고있었던 문학에의 열정이 가슴속에서 싹터옴을 비로소 깨달았다. 60년대부터 불붙기 시작한 글쓰는 일은 그에게 세상을 바로 볼 수있게 하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
중 ·고등학교시절 그는 많은 작가의 많은 책을 섭렵했지만 그중에서도 시의 훤형을 뚜렷이 새겨준 정지용의 시세계는 그로 하여금 역사와 삶을 단순한 낭만과 서정적인 시각으로만 담
아두게 하지않고 보다 치열하게 인식하게 하는 의식을 불어넣어주었다고 말했다. *
“배추꽃 노오란 4월을, 기차는 앙물며 앙물며 달아난다. 배추및 노오란 4월을 기차는 앙물며 앙물며 달아난다.”그는 지용의 문학적 힘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는지를 말해주는대신 시한귀절을 암송했다. 그자신의 말처럼 안이한 삶의 자세를 떨치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정지용시의 한국적 정신, 도스토예프스키의 산문적 힘, 이데을로기의 강한 정신을 깨쳐주었던 러시아작가 솔로호프와 레오노프를 다시 안게된 최형은 시작(詩作)에 몰두했고 70년 첫시집 「푸른겨울」를 상재했다. 뛰어 오르지는 못하고, 안으로 받아드는 자유를 안았다.

꽃이나 구름을랑 그런대로 본다.
조금은 물새 울음을 닮을 수도 있으나,
비바람 겹쳐지는 日月따라
물러서는 너와 나는 對뿜
이미, 안타까와 활 마음에도 사태난 셈 일자
밍밍한 望獅처럼,
하늘 보이지 않는 강이 흐른다.
하고 싶어서 하는 서성거림은 아니다.
서성대다 보니 끝내는
내 그림자마절 삼켜버린 흐름.(후략)
-첫시집 「푸른겨울」의 ‘강’-
그리고 5년뒤인 75년 두번째 시집「두빛살」을 펴냈다.
그는 전쟁의 상처와 자기 체험 속에서 안았던 갈등과 저항을 토해내고 있었다.
깃발을 꽃고 옷을 수 있는 너와
깃발을 꽃을 수 없어 웃지 못하는 나와,
서로 ‘돌아오지않는 다리’ 등지고 서서
하늘빛 가리운 상데리아 불빛아래
오히려 살찍는 웃음으로 여위는 가슴들이 있다.
누워서 흔들리다 보면 걸어 보아도
어디에 셜지 모를 산마루, 산마루에
저녁구륨만 깃발처럼 늘어지는가?
거기 해그림자률 보듬은 네가 있고
해그림자에 밀리는 내가 있다.
-‘두빛살’-
최형은 두개의 시집을 상재한 이후 글쓰는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스스로 쓰기위해 쓰는 것 이상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성실한 삶을 이어가는 자기확인의 한 방편이었다 함이 차라리 옳다고 했다. 최형은 자연을 관조하는 세계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강물」(81년)과 「이런풀빛」(85년)은 이 동안에 펴낸 시집인데 이들에서도 그의 시적 영감의 원천은 고향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관심이지만 주종을 이루는 것은 자연이다. 그러면서도 그는「자연의 관조에만 안주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적 현실」을 자신 의지적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85년 교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자신도‘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내면세계의 의식이 치솟아 오르는 눈부신 체험을 안았다. 그것은 「무엇을 써야하는가」에 대한 철저한 자기확인의 몸부림이었다. 그에게는 우선 자신만의 안온함을 지향하던 자연과 신앙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했다. 그리고 그는 불타는 창작열로 3년 꼬박 「푸른겨울」을 앓았다. 그의 초기작품세계가 어두운 시대의 국외자적 저항과 갈등을 바탕으로 했다면 중기에는 자연과 신앙 속에서 자아구제의 길을 열어 보려는 관조적 정한의 세계를 표출했고 이즘에 와서 그는 다시 저항을 바탕으로 분단민족으로서의 통한어린 새희망을 민중의 자각적 힘으로 표출해내고 있는 샘이다. 「푸른겨울」은 최형이 필생의 작업으로 열어놓은 그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가 구상중인 3부중 1부에 해당하는 이번 「푸른겨울」은 소지주 출신의 좌익이면서 고집스런 끈질김으로 투쟁하지만 출신성분으로 한계를 느끼는 강준과 우익적 민주주의 성향의 양심적 온건파의 전형인 정지만, 종교적이고 사려 깊은 봉사적 성격의 한서영, 유산계급출신의 진보적 열성분자 김혜련을 비롯, 소시민적 한계를 지닌 채 고뇌하고 갈등해야했던 한국인의 전형적인 삶이 성실하게 그려져 있다. 이 성실함은 자신이 오랫동안 삭혀온 절실한 체험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면서 민족, 민중에 대한 인식이 폭넓어진 점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장편 서사시 들 속에서 새로운 힘을 발휘하는 그의 「푸른겨울」은 잔잔한 평범함 속에서 체험에의 진실성을 더욱 확연히 드러내는 동시에 생생한 시적 효과도 성취해내고 있다. 「푸른겨울」 2부작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진정한 한국적 서정과 민족, 민중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민족, 민중은 나의 고향이었어요”최형 시인은 새로운 깨침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뒤돌아 나오는 시인의 집 시멘트 담에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노오란 개나리가 눈부셨다.
최형시인의 「푸른겨울」이 노란 봄으로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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