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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연재 [교사일기]
수레바퀴 밑에서
유승(2004-01-27 14:16:56)


“아버지가 농약먹고 죽는다고 하셔서 내려왔어요” 학급 아이들에게 서울가서 취업하겠다며 상경했던 학생이 며칠만에 돌아와서 내민 말이다. “학교를 다니면 뭐해요? 대학도 못갈 텐데.” 결석을 일삼는 학생이 진지한 자세로 따져 묻는 듯한 말이다.
“학교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맨날 공부만 하라고 하고, 공부 못한다고 뭐라고만 듣고------.” 말꼬리를 흐리는 한 학생은 생활 자체가 지옥같다고 털어 놓는다. 어떤 도움말을 주어야 할까? 이생각 저생각 끝에 사회가 이렇고 어릴 적 꿈이 저렇고, 길게 설득의 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학생들을 돌려 보내고나면 언제나 텅 빈 듯한 공허감이, 뭔가 다음 일을 시작해야할 의욕보다는 무기력함이 찾아든다.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정원모집이 어려운 농촌지역을 근거지로 한 인문계 고등학교, 극히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학습의욕이 부진하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라는 틀 속에서 운영된다. 고등학교 교육의 산물로서 대학입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학입시 자체가 목표가 돼버린 것이다. 대학입시 성적, 이것이 곧 모든 교육활동의 기준이 되며, 그 중에서도 일류대학에 몇 명의 합격지를 내느냐가 학교교육의 총체적 평가기준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곧 학력차가 심한 농촌학교에 소수의 적용자와 다수의 부적용자를 내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학교는 다만 고통스럽고 재미없는 하나의 건물자체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들 대다수의 부적용자들은 학교의 지향점과는 다른 개인적 영웅을 내세우게 된다.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에 취직한 친구를 찾아나서는 상경길, 집단적인 담배와 본드의 흡연, 일체의 행동을 거꾸로 하는 학생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차라리 그 심각성이 덜할지도 모른다. 어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외부의 폭력조직과 줄을 대고 학교 내외에서 조직적 폭력행위를 일삼는 것이다. 학생 폭력배의 조직화가 가시화 된 것은 그리먼 세월이 아니다. 입시를 최고로 하는 학교와 학부형, 그리고 사회일반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들은 금품갈취나 가혹행위를 서슴치 않고, 자기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차례에 걸쳐 금품갈취를 해온 한 학생은 그것이 다만“빌린 것이다”라고 표현할 뿐 빼앗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범법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30% 이상의 학생이 돈을 뺏긴 적이 있다는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폭력배가 수업 중에 학교까지 들어와 난동을 부린 어느 학교의 이야기는 교단에선 어떤 교사라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것이다. 한해면 수백의 학생들이 자살의 대열에 끼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어찌보면 도피처를 찾지 못하고 내부갈등 속에서 결국 자살이라는 극한 행동으로 치닫고 말았다는 해석을 해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런 학생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폭력의 희생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라는 큰 수레바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이 되어 있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수레바퀴를 밀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느냐, 아니면 그 수레바퀴를 굴리다가 역부족으로 그 밑에 깔리거나 부상을 입고 심적 불구자가 되어 열등의식 속에서 방황하다 결국은 모두가 원치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일반이 학교에 거는 기대라는 것의 가장 큰 부분이 우리 자식이 대학에 갈 수 있느냐는 문제이고 보면 해결책은 전체적 인식의 대전환이나 사회구조의 모순 해결에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이다. 교육의 정상화, 교육의 민주화가 시급하고도 큰 문제로 대두되어 설왕설래했지만 소문난 잔치여서 정작 학생들이 약으로 먹을 것은 없는 우리의 교육풍토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교육의 개별화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그들을 개성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그들의 개성과 적성에 따른 교육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현재의 고양된 의식 속에서도 속시원한 해결책 없이 다시 신입생 입시가 치루어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열악한 환경과 제도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 고생하는 선생님과, 콩나물 교실에서 획일화된 교육제도의 희생자들인 다수의 학생들 모두가 반길 교육제도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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