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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1 | 특집 [특집]
80년대 전북지역 학술운동
원도연(2004-01-27 14:24:33)

1.
80년대 한국사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다양한 변화는 참으로 ·함축적인 것이었다. 그러기에 80년대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면서 우리가 받는 감상은 더욱 각별한 것이다. 80년대는 변혁의 시대였으며, 뼈아픈 좌절과 숭리의 환호가 어지러이 교차되었던 한시대였다. 이제 우리는 80년대의 소중했던 경험들을·뒤로 하면서 90년대의 새날을 열고자 한다. 1989년 벽두부터 밀어닥친 소위‘공안정국’의 한파는 문목사 방북과 임수경씨 영양축전 참개 그리고 전교조의 결성을 거치면서 민민운동의 진영에 일정한 타격을 가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운동에 대한 치열한 탄압과 대대적인 이데을로기 공세로 인한 이같은 외형적 첨체만으로 1989년 한해를 명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듬의 파삭적인 공세는 우리운동의 심화된 폭과 깊이에 대한 두려움이며,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필연에 대한 힘겨운 저항일 뿐이다.
2.
80년대 한국사회를 관통해온 사회변혁운동의 흐름은 이제 우리 사회의 곳곳에 새로운 질서와 전망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이같은 변화는 완고한 학문의 영역에도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을 안겨다 주었으며 학문은 운동의 요구에 조직적으로 웅답해야만 했다. 개별적으로 고립 ·분산되었던진보적 학술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운동의 과학화’ 또는‘과학의 운동화’라고 하는 자기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 요구에 응답하였다. 그것은 곧 그간의 지식인 운동이 보여왔던 운동의 피동성과 주변성을 극복하고 학술연구의 전문성과 운동성을 확보함으로써 한국사회 변혁운동에 기여하겠다고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학술운동이 변혁운동의 과정 속에서 당당한 주체로 서기에는 참으로 지난한 과제가 그 앞에 놓여져 있읍을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긴장감으로부터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후방의 ‘이론전선’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개 그리고 학술운동의 민중성 또는 계급성을 과연 어떻게 담아내야 할 것인가라는 주체적조건의 문제이다. 현재 학술 운동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정리되고 었다. 그 하나는 학술연구의 이론적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학술활동의 정치적 차원이다. 여기서 학술연구의 이론적 과제라 함은 지배권력의 허위적인 지배이데을로기를 혁파하고 그에 대한 대항이데을로기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학술연구는 사회분석의 을바른 방법론을 정
립하고, 그에 근거하여 객관적 사회분석과 지적 자료를 산출하여 과학적인 변혁 전망을 세우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학술운동의 주요한 관심이라는 것이다. 학술운동의 또다른 한 축을 이루는 주요한 과제는 정치적 과제이다. 학술운동의 이론적과제가 학술운동의 대표적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치적과제는 학술운동의 외연적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다.‘틈히 학술운동의 정치적 과제는 전체운동을 구성하는 각부문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그 역할과 위상이 설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우선 진보적 학술 연구자들의 집단역량화라고 하는 조직적 과제를 전제로 하여 변혁운동의 통일전선적 전망 속에 학술운동을 위치지우는것을 말한다.
3.
전북지역에서 학술운동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하반기 ‘호남사회연구회(호사연)’의 출범 당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호사연은 학제간의 상호교류를 통하여 지역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 아래 1987년 9월 8일 37명이 모여 창립총회를가짐으로서 출발하였다. 이는 전북민교협이 그간 지역내 민민운동과 연계하여 각종 정치 현안에 책임성있게 참여하고 한편으로 대학민주화투쟁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해 온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학제간 교류를 도모하고 부문운동으로서의 ‘자기완결성’과 ‘독자성’(학술연구의 전문성과 운동성)을 기하고자 하는 내적지향이 구체화된 것이었다. 호사연은 출범 이후 지난 3년 동안 두 차례의 심포지엄과 월례발표회 및 각종 문화행사등을통해서 상당한성과들을 축적하였는 바 그것은 일차적으로 지역내의 신진 연구자들을 망라했다고 하는 외형적 성과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운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실천운동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거듭확인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연이 아직도 변혁운동의 주체로서의 과학적인식이 부재하다는 점과 학술운동 내부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은 호사연의 장기적 과제로 남겨져 있다. 특히 호사연의 내적 지향이 학술운동 일반의 과제와맞물려 지역문제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실천적 연구사업이라 할 때, 저간의 주요한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숭하여 운동적 원칙에 충실한 공동연구의 모범을 창출하고 지역운동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문제는 비중있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호사연이 갖는 또 하나의 과제는 호사연이 지역학술운동체로서 부문운동으로서의 운동틀을 형성해 가고자 할 때 그 내부적으로 치러내야할 조직적 과제이다. 그것은 우선 호사연의 주최해온 일련의 사업내용들의 상호관련성을 더욱더 강화하고 매사업들을 일관된 원칙속에 배합하고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전북지역의 5개 대학을 포괄하고 있는 호사연의 입지속에서 보다 많은 회원들의 내용적참여를 유도하고 신진 연구자들의 재생산에 끊임없는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간호사연이 가져왔던 한가지 의미있는 성과 중의 하나는 내부에 대학원생중심으로 구성된 준회원 구조가 정착되었고 이들 신진 연구자들이 지역학술운동의 새로운 주력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다.
4.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 왔던 변혁운동의 흐름은 이미 곳곳에서 보다 다양하고 보다 폭넓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1989년 한해는 공안 통치의 서슬푸른 위협과 긴장 속에서도 전교조가 결성되었고, 농민운동의 새로운 조직이 모색되었으며 노동운동의 전국적 조직이 준비되고 또한 화이트칼라임을 고집해왔던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운동적 진출이 보다 활발해진, 그야말로 각계각충의 의식성과 창발성이 한껏 고양된 한해였다. 1989년 한해는 결코 우리 운동의 패배를 예언했던 한해가 아니었으며 일시적이고 외형적인 침체와 수세만으로 현하정세를 전망하고자 하는 조악함과 치졸함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한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한해동안 지역학술운동원 착실한 성장을 거둡해왔으며 특히 지난 10월 지역학술단체협의회(전북, 광주 전남, 대구 경북, 부산 경남의 4개 지역학술단체)의 결성으로 지역학술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이 치역의 지역학술운동은 단지 가능성의 형태를 넘어 현실태로서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운동의 관심권이 아닌 운동내부의 조직적 역량으로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학술운동은 그간의 고립성과 선언성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현실운동과 실천적으로 그리고 항상적으로 연대함으로서 지역운동의 한 몫을 담당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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