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7 | 특집 [인디밴드, 그들①]
대한민국 인디 태동 21주년 이젠 로컬 인디 씬에 주목 할 때.
방호정(2016-07-15 09:15:38)




지난 6월 25일 토요일 저녁엔 광안리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펍에서 열린 밴드 지니어스와 세이수미의 공연을 보러갔다. 지니어스는 '부산 중구천재' 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싱어 송 라이터 김일두가 이끌고 있는 3인조 락밴드이고, 세이수미는 60년대 유행했던 서프락을 90년대 인디락의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밴드로 광안리 해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바다와 맥주를 벗 삼아 흥청망청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밴드다.
 공연은 저녁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관객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었지만, 지니어스와 세이수미의 노래 가사들은 대부분이 영어라 외국인 팬들도 신나게 때창으로 밴드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멀리 제주도와 서울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은 팬들도 있었다. 몇 차례나 부산의 라이브 클럽, 공연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흥에 겨울 때면 종종 관객들의 무대난입이 벌어지기도 하는 시끌벅적한 공연 분위기와, 인디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홍대 앞에선 일찍이 사라진 문화인, 동틀 때까지 관객들과 뮤지션이 함께 어울려 노는 질펀한 뒤풀이의 매력에 중독되어 매번 부산을 찾아온다고 했다. 
예전에 한창 먼 나라로 여행을 다닐 땐, 그 동네 로컬 밴드의 씨디를 기념품으로 사오곤 했었다. 문득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될 때 뜻을 알아먹을 수 없는 태국어, 힌디어로 부르는 생소한 밴드의 들으면 낯설어서 그리운 여행지의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어쩌면 그들도 종종 부산 로컬 인디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실재하는 지역 부산 보다 훨씬 더 근사한 모습으로 부산을 추억하는지도 모른다.

90년 대 말, 나 역시도 당시 부산 인디 씬 에서 이름만 대면 아무도 모르는 인디밴드를 두어 팀 말아먹은 적이 있다. 남들처럼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서 생활한지 10여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20여 년 동안 매체와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무관심 속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자신들만의 음악을 펼치고 있는 부산 로컬 인디 뮤지션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가족과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추억들이 쌓여있는 공간들이 서울이 아니라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인스트림인 홍대 앞으로 떠나는 대신, 나고 자란 고향을 또 다른 메인스트림으로 만들기 위해 무모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서울공화국으로 떠나는 것은 비단 음악 씬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이 앓고 있는 고질병이기도 하다. 로컬 인디 씬의 발전은 단지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이 더욱 다양해지고 튼튼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어느 지역에 가든, 원하든 말든 듣게 되는 아이돌 위주의 주류음악이 아니라 다채로운 지역의 감성과 색체가 물씬 풍기는 로컬 음악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최근 SM, YG에 이어 로엔까지 아이돌 위주의 주류 음악을 선도하는 대형기획사들까지 인디뮤지션 앨범 제작에 나섰다고 한다. 어쩌면 제 2의 넬,장기하, 10센치, 혁오 등등 예상치 못한 대박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것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트랜드나 대중성을 강요하며 뮤지션들이 가진 고유의 색을 희석해버릴 위험도 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메인스트림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는 로컬 뮤지션들은 누군가가 원하는 음악보단 스스로 선택한 음악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는 강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로컬 인디 씬의 존재는 뮤지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음악 팬들에게도 역시 소중한 건 마찬가지다. 앞서 소개한 중구천재 김일두를 소개할 때 마다 나는 항상 '폴 매카트니 보다 훌륭한 뮤지션.' 이라고 소개한다. 역시 대부분의 반응은 '에이, 설마..' 늘 이런 식이다. 나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일지도 모르는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러 잠실주경기장에서 저 멀리 무대 위 점처럼 보이는 폴 옹을 보며 헤이쥬드 때창에 동참하느라 하필 같은 날 있었던 김일두의 앨범발매 기념 공연을 놓쳤다. 얼마 후 김일두는 내게 얼마 신지도 않은 닥터마틴 구두를 선물해주었다. 폴 매카트니는 대체 나한테 해준 게 뭐란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평생 한 번 마주칠 일도 없는, 운이 좋으면 멀리 떨어진 무대 위에서 점처럼 보이는 모습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락스타 보다 편의점 앞에서 검은 비닐 봉다리를 들고 우연히 마주쳐 시시껄렁한 농담과 안부를 묻거나 함께 하릴없이 산책할 수 있는 우리 동네 락스타들이 훨씬 맘에 든다. 어느 동네건, 그런 동네 락스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동네를 걷다 우연히 락스타와 마주치는 일상.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디'의 의미를 묻는 것이 실없이 느껴질 정도로 인디와 주류의 경계는 흐릿해졌지만,
아직도 로컬 인디 씬은 뚜렷하고 선명한 '인디 속의 인디'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