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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 특집 [선미촌의 재구성]
새로운 미래의 가치와 연결시켜야 할 이들의 역사
송경숙(2016-11-17 14:00:37)




 선미촌의 뒷골목을 낮에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걷다가 비교적 큰 집인 폐가를 발견하였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골목과 폐가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골목에는 나름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계속해서 선미촌을 걷다가 작년 장마비에 폐가의 담장이 무너진 현장을 보게 되었다. 바깥의 벽이 무너진 자리에 칸칸이 나누어 업소로 사용한 흔적이 드러났다. 그 집은 잡초와 쓰레기 더미로 가득차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 '1991년도에 멈춰있는 달력, 앞번호 두자리 숫자의 미용실 홍보 벽시계, 오래전 브랜드 화장품들이 담겨 있는 가방, 당시 보건소에서 나누어준 듯한 콘돔, 러브젤, 낡은 의자...'등 그곳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를 추정하게 하는 사물들이 함께 엉켜 있었다.
 지난 10월 14일부터 19일까지 전주영화제작소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된 전시회 '아주 오래된 의자'는 그 사물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끄집어내 성매매 경험 당사자 여성의 언어로 그 사물들의 의미를 해설해주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고'(관람객의 소감글 중) 앉아 있었던 '의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업소안에 놓여 있다. '의자'는 '아주 오래된 성매매집결지'의 현실과 '어쩔수 없이' 그곳에 있었던 여성들의 삶을 상징한다. 전시회는 성매매여성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고자 했다. 혐오와 낙인의 시선에 의해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목소리들과 직면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20센티가 넘는 통굽을 신고 12시간 정도 서 있느라 허리와 다리가 퉁퉁 붓고 "앉아 있지 마라, 손님 놓친다" " 노닥거리니까 손님을 놓치지" 한동안은 의자를 아예 없애버린 적도 있고, 추운 겨울날에도 긴팔은 커녕 비닐로 된 홀복을 입는데 "패딩을 입지 마라 뚱뚱해 보이니까"  "무릎담요도 덮지 말아라" " 어제 니들이 돈 못벌어서 기름 못 넣었다." 찬물로 샤워를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야 ⌟ ( 전시회에 걸린 선미촌에 있었던 여성의 증언 중)
'전시장에는 업소안에 있던 의자가 그곳을 살았던 여성들의 말과 마주하고 있다. 여성을 전시하기 위한 의자였다가 이제는 그 쓰임을 다한 폐가의 의자가 이곳에서 전혀 다른 것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의자로 연결된 언니들의 글을 읽으면서 의자를 통해 위로받고 또 위로를 건넨다'( 관람 소감글 중)
'사물에 겹쳐 쓴 언니의 유쾌한 해석들은 슬프고 먹먹하다가도 활달하고 유머가 넘쳐서 실컷 웃을 수 있었다. 공동의 작품이라서 그런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 소감글 중)
 선미촌을 걸었던 사람들과 선미촌 인근 주민들을 통한 선미촌에 관한 이야기, 활동가들이 직접 그린 선미촌의 풍경과 골목안 일상의 모습, 15년에 걸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반성매매 활동역사 및 선미촌을 '착취에서 인권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활동의 기록들이 함꼐 전시 되었다.
 전시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영화관과 함께 있는 전시관의 효과를 본것이기도 하지만 지역사람들이 선미촌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최근 언론을 통해 선미촌 변화에 대한 여론이 많이 형성된것도 확인할수 있었다. 천천히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보고 궁금한것을 질문하며 적극적으로 선미촌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시회를 통해 성매매및 선미촌 문제에 대한 담론의 장, 소통의 공간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아무리 심한 상처라도 다시 새살이 돋듯이 이 곳, 선미촌에도 새로운 살이 붙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라도 선미촌 이야기를 듣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 사회운동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람 소감글 중)
 전주 성매매집결지는 일본 식민지시대 호남권 최대 재래시장인 중앙시장 옆에 유곽으로 형성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전주 기차역(현 전주 시청자리)너머 서노송동 선미촌으로, 일부는 완산구 다가동 선화촌으로 옮겨 왔다. 선미촌이 확대된 것은 1960년대 초쯤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80여개 업소로 호황을 이루었고 1980년대 중반 현재처럼 유리방으로 변했다. 선미촌은 60여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전주의 대표적인 성매매집결지이다. 선미촌 인근에는 대형 할인마트가 있고 전주고등학교와 전주시청이 자리하고 있다. 숙박업으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2000년, 2002년 발생한 군산 성매매집결지 화재참사로 전주시에 의해 숙박업 등록이 취소되어 무등록 상태의 불법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2000년, 2002년 연이어 발생하여 다수의 여성이 감금된채 사망한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 성매매업소의 화재참사는 우리 사회 성매매여성의 인권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드러나게 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성매매여성들의 인권 및 자활을 지원하는'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우리센터는 2002년 선미촌의 인권실태를 파악하고 여성들을 찾아가는 현장방문삳담을 시작하였다. 최근까지 15년째 현장지원 활동은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에 대한 긴급구조와 법적지원, 주거지원, 의료 및 심리치료지원, 자활지원 등을 하였고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선미촌이 여성들에게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인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였다.
선미촌이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는 왜곡된 통념을 재생산하고, 남성들의 성차별적인 성구매 문화를 확산시키며,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키는 폭력적인 공간인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연속 집담회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지자체와 경찰에게 대안마련을 촉구하였다.
2013년  '선미촌 정비를 위한 민관협의회'(이하 민관협의회)가 구성되었다. 행정과 경찰뿐만 아니라 선미촌 인근 주민과 우리 센터, 전주의제 21, 정치인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둘러앉아 선미촌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센터는 이와 함께 선미촌 걷기와 지역주민을 통한 선미촌 이야기 수집, 선미촌 경험여성 인터뷰 등을 진행하였다. 여성들은 선미촌을 해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들에 대한 생계대책과 자활지원 정책이라고 하였다. 한 여성은 선미촌이 변화되면 자신이 늘 업주의 감시하에 구매자를 기다리던 의자가 아니라 친구와 산책하며 잠시 쉬어갈수 있는 의자가 그곳에 놓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역주민들은 수십년간 지역낙인을 안고 살아온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민관협의회는 일본의 요코하마 코카네쵸 예술의 거리(수백개에 달하던 성매매집결지가 예술의 거리로 변모함) 등 선진지역 방문과 연속 집담회를 통하여 대안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전주시에서 선미촌을 '여성인권과 예술의 거리'로 바꾸는 문화재생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센터는 삭제하고 지워버리는 선미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기록하고 기억하여 지역사회의 여성인권 감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성찰적 공간으로, '착취에서 인권으로' 선미촌이 재구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미촌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 '혐오와 낙인에서 감정이입과 연대의 시선'으로 바뀔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 자각할 수 있다.  '충실한 기록과 꾸준한 탐색을 통하여 과거의 어둠과 망각의 역사로부터 성매매집결지를 끌어내고 정의, 희망, 여성인권과 같은 새로운 미래의 가치들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우리의 결론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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