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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 | 특집 [지역출판문화의 부흥을 꿈꾸다]
'서계서포(西溪書舖)'의 역사
전주 최초의 서점
이태영(2017-01-20 10:43:01)



전주의 출판 역사
간판을 달고 책을 판매하던 책방이 있었을까? 그 서점에서는 어떤 책을 팔았을까? 그 위치는 어디쯤일까? 매우 궁금하다.
전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책을 찍어낸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시대에도 전주에서 책을 찍은 기록이 발견된다. 조선전기부터 조선중기까지 많은 책이 전주를 중심으로 발간되었다. 사찰에서 찍은 책과 감영에서 찍은 책은 공식적으로 발행처가 명시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주문을 받아 찍은 책은 간기만 존재할 뿐, 아쉽지만 서점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주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책을 찍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완산감영에서 70여 책을 발간하였고, 이어서 사가에서 주문자용으로 230여 종류가 발간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판매용 책인 방각본 100여 종류가 넘는 책이 전국적으로 팔리게 되었다. 그중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단연 백미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완판본(完板本)이란 말이 탄생하여 국어사전에 오르게 되었다.


완판본(完板本)「명사」『문학』 :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고대 소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 있어 향토색이 짙다.
<표준 국어 대사전>


완판본(完板本) : 조선시대 전주 지방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 (중략) 서민의 취향에 영합해 나타난 출판물이 완판방각본(完板坊刻本)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주 최초의 서점
조선후기 전주에는 공식적으로 7개의 서점이 존재한다. 그 이름은 바로 '서계서포(西溪書鋪), 다가서포(多佳書鋪), 문명서관(文明書館), 창남서관(昌南書館), 칠서방(七書房), 완흥사서포(完興社書鋪), 양책방(梁冊房)' 등이다. 전주 남문시장을 중심으로 싸전다리에서 완산교에 이르는 천변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책을 팔던 책방이다. 양책방은 후에 아중리 저수지 아래로 이사를 간다. 이 7개 서점에서는 조선후기에 판매용 책이란 뜻을 갖는 '방각본(坊刻本)'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물론 이 서점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책을 찍어내었다. 7개 서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서점은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2가 70번지'에 주소를 둔 바로 '서계서포'이다.
'서계(西溪)'는 '서쪽 시내'라는 뜻인데 '전주의 서쪽 시냇가'를 말한다. 깨끗한 물이 흘러가는 다가산 아래 시내를 두고 이름하는 말이다. '서쪽 시냇가', 꽃이 피어 있는 동산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깊은 계곡이 있을 것 같고, 뭔가 신비스런 비밀이 있을 것 같기도 한 말이다. 전주의 서문 밖에 바로 시냇물이 흐르는 그곳이 바로 서계(西溪)였다. 남문밖시장과 더불어 전주에서 가장 큰 시장이 형성된 서문밖시장의 중심에 있던 책방이 바로 서계서포이다.
'서포(書鋪)'는 '글 서'와 '펼 포'자를 써서 '서점'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점'을 '서관(書館), 서림(書林), 서사(書肆)'라고 하고, '책방(冊房), 책사(冊肆), 책전(冊廛), 책점(冊店)'이라고도 했다. '포(鋪)'자를 쓰면 '전당포, 지물포, 자전거포'와 같이 쓰이고, '점(店)'을 쓰면 '완구점, 문구점, 포목점'과 같은 말로 쓰였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기의 서점은 출판과 판매를 동시에 하는 곳을 말한다.


'서계서포'(西溪書鋪)의 발달
일반적으로 완판방각본의 시작은 『동몽선습』(童蒙先習)으로 보고 그 발간연도를 1714년, 또는 1774년으로 보고 있다. 완판본 『사요취선』(史要聚選)은 서문 말미에 '崇禎紀元後戊子年月日書于西溪'(숭정기원후무자년월일서우서계)의 기록이 있다. 따라서 1828년에 '서계서포'에서 간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간기(간행기록)에 '西門外'라고 쓰인 책들은 대체로 서계서포에서 발행한 책으로 이해된다. '서문밖시장'과 관련된 표현이다. 간기가 분명한 책에 '서계서포'가 명시된 책들은 대체로 1800년대 초반과 중반에 많이 발간된 책들이다. 1803년에 간행된 한문본 『九雲夢』(구운몽)을 비롯하여, 간기가 없는 한문본 『剪燈新話』(전등신화), 『三國誌』(삼국지) 등도 서계서포에서 먼저 발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과 '서계서포'의 역할
동리 신재효(1812-1884)는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 박타령, 적벽가, 변강쇠가'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새롭게 정리하였다. 완판본 판소리계 소설 초기본들은 대체로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사설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전라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판소리가 너무나 인기가 좋아서 그 사설을 소설로 개작한 것이 바로 한글 고전소설이다. 판소리 '토별가, 심청가, 춘향가, 적벽가'를 소리로만 듣는 것이 아까워서, 이야기꾼인 전기수(傳奇叟)가 하는 이야기를 두고두고 읽으면서 재미를 얻고 싶어서 서포에 책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 판소리 사설인 『토별가』, 『열여춘향수절가』, 『심청전』, 『화룡도』(적벽가)가 소설로 발전한 것이다.
'서계서포'에서는 1900년대 초에 한글 고전소설인 '화룡도, 조웅전, 유충열전, 심청전, 초한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열여춘향수절가, 이대봉전, 구운몽, 삼국지' 등을 주로 찍어냈다. 일제가 검열을 시작한 후로는 이 책 뒤에 1911년 판권지가 붙어 있다. 그리하여 광복 70년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가장 많이 오른 소설은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 『심청전』, 『토별가』와 『홍길동전』 등이다.
서계서포와 다가서포를 중심으로 발간된 완판방각본 한글고전소설은 서울의 경판본과 비교되었는데,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팔리게 되었다. 특히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판소리계 소설이 중심이 되었고, 영웅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경판본과 비교하여 3배 정도의 분량이 많고 서사구조가 잘 짜여 있으며, 또한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 재미가 매우 풍부하였다. 그리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고대소설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서계서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책방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1911년도 판권지에 따르면, '서계서포'의 주인은 '탁종길(卓種佶)'이다. '탁종길(1883-1947)'은 그의 나이 27세 무렵 '서계서포'를 운영하다가 그후 업종을 바꾸었다. 탁종길의 조부인 '탁기동(卓基東, 1840-1886)'과 부친인 '탁양석(卓亮錫, 1858-1920)'으로부터 탁종길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계서포'에서 각수로 일하던 '양원중(梁元仲)'의 동생이 바로 '양진태'인데, 이 분이 1915년 무렵 '양책방'을 운영하다가 '서계서포'를 인수하여 '양책방'과 합쳐 1916년 '다가서포'를 열게 된다. 이 시대의 출판은 목판인쇄가 주를 이룬다. 구이나 상관에서 생산된 산벚나무를 베어 오랫동안 말린 후 절단하여, 앞뒤 표면을 깨끗하게 작업을 한 후, 글자 주변을 깎아서 글자를 두드러지게 하는 양각을 한다. 옛 책 한 장이 곧 하나의 책판 한 쪽 면이 되는 것이다. 책판 하나에는 양면이 있는 셈이다. 책판에 먹물을 바른 후 뽀얀 한지를 대고 위에서 누르면 목판에 인쇄된 글자가 바르게 한지에 인쇄가 되면서 소설 한 장이 만들어지곤 하였다.


완판본의 후예들
1900년대 초반 전주에서 목판본으로 책이 출판될 때, 이미 18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에서는 활자본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전주에서도 목활자본, 납활자본, 석판본 책들이 나오면서, 목판본을 중심으로 책을 출판하던 7개의 서점이 문을 닫게 된다. 1930년대부터 '조일석판인쇄사, 완산석판인쇄소, 동아석판인쇄소, 이문당석판소'등과 같은 여러 석판인쇄소가 전주에서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주로 주문자 생산을 하였다.
그러다가 활자본이 왕성해지는 1960, 70년대부터 많은 인쇄소가 없어지고, 출판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전주에는 완판본의 정신과 역사를 지키며 노력하는 출판사들이 있다. 현재는 <신아출판사>가 많은 책을 출판하는 대표적인 출판사이다. 최근에는 <모악> 출판사가 등장하였다. 납활자의 등장에 대비하지 못하여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간 7개의 서점들, 활자본에 대비하지 못하고 사라져 간 석판인쇄소들, 아직도 전국적으로 판매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출판사들, 아쉽기만 하다.
이제 디지털 시대이고 문화의 시대이다. 전주의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와 전통문화에 맞는 책들이 발간된다면 전주는 다시 한 번 완판본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그런 것처럼.


『少微家熟點校附音通鑑節要卷之十三』 道光十一年(1831)辛卯八月日 西門外開板 崔永
『喪禮初要』 光武七年(1903) 癸卯秋 完山西門外 重刊
『御定奎章全韻』 西溪藏板 庚申(1860)春刊
『簡牘精要』 西溪新板 辛酉(1861)仲秋
『儒胥必知』 壬申(1872)仲冬完山重刊
『심청젼』 大韓 光武 十年 丙午(1906) 孟春 完西溪 新刊
『열여춘향슈졀가』 完西溪書鋪(1911)
『쵸한젼』 隆熙 二年 戊申(1908) 秋七月 西漢記 完西溪 新刊
『화룡도』 戊申(1908) 春 完西溪 新刊
『二至齋遺稿』(1933년, 석판본), 全州郡 全州邑 大正町 二丁目, 朝日石版印刷社
『諺文小學』(1934년, 석판본), 發行所 完山石版印刷所
『昌原黃氏波譜』(1934년, 석판본), 全州郡 全州邑 多佳町, 東亞石版印刷所
『金海崗壽詩帖(龜蓮珍藏)』(1938년, 석판본), 全州府 完山町, 以文堂石版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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