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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 | 특집 [오래된 오늘]
오롯이 담긴 전통의 멋, 곱디고와라
지우산 이야기
이동혁(2019-09-17 10:57:21)



활짝 봉오리를 펼친 연꽃처럼 단아하고 우아한 자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놀라운 조형미와 곡선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차분함이 은은한 품위를 더한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인 '지우산'이 빗속에서 한 송이 꽃이 되어 피어난다.


한국의 전통 우산 중 하나인 지우산은 대나무로 만든 살에 기름 먹인 한지를 발라 만든 옛 우산을 뜻한다. 1950~60년대에는 서민들의 대표 우산으로 애용되었지만, 1970년대 대량 생산된 비닐우산과 천우산에 밀려 점차 사양길을 걷게 됐다. 1960년대 35곳에 달했던 전주 지우산 공방들도 그때 전부 문을 닫아 이제는 전국을 통틀어도 지우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는 윤규상 장인(전라북도 무형문화제 제45호 우산장)이 유일하다.


1941년 전북 완주군 용진면 삼삼리에서 목수 윤덕용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윤 장인은 16세에 견습공으로 우산 공장에 입사하면서 지우산과 인연을 맺었다. 한창 젊음을 구가할 꽃다운 나이. 그러나 대나무를 쪼개거나 다듬는 일은 매우 고단했고, 어린 그의 두 손엔 언제나 대나무 가시에 찔린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거쳐 완벽한 기술을 습득한 윤 장인은 25세에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지우산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때마침 들어온 값싼 중국산 우산과 천우산에 판로가 막히면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지우산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한때는 뜨개바늘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그런 때조차도 윤 장인은 지우산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지우산이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서가 녹아있는 물건이라는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지우산을 만들기 위한 장인의 고단한 노력은 감히 몇 마디 말로 쉬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지우산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원재료일 것이다. 지우산은 하나를 만드는 데도 무려 80~100번의 손이 닿는다. 제작이 분업으로 이뤄지던 과거에는 사정이 훨씬 나았지만, 더 이상 지우산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없는 지금, 모든 과정은 이제 윤 장인의 몫이 되었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질 좋은 대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한지에 먹인 들기름이 끈적거리지 않도록 온돌방에 펴 말리는 일까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지우산의 명맥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대나무 살을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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