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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 | 특집 [특집]
<저널특집>전환기의 공연예술
최태엽 ·본지 편집위원(2003-12-18 11:18:03)


 참석자 ·이준복 작곡가·전북대 교수 ·김익두 민요연구가·전주신흥고교사 ·백의선 무용·원광대교수 ·이시헌 연극·극단 '오늘'기획 ·사회 심인택 국악·우석대 교수

 때 : 1988년 2월 5일 

 곳 : 본 지 편 집 실


신명나는 놀이판의 전통


 사회 : 이렇게 자리해 주신 것을 먼저 감사드립니다.「문화저널」3호에서 신년특집으로 문학과 미술의 지역성과 시대정신이란 주체로 좌담을 가졌었습니다. 그 내용을 잠깐 간추려 보면 우리 전북지역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볼 때 근대이전까지는 정읍사가에서 나타났던 자랑’과 동학의‘혁명정신’으로 가꾸어진 남다른 문학적 토양과 전통을 바탕으로 그것을 민족의 시대정신으로까지 키워나갔던 저력을 가졌었는데, 근대이후에는 여러 가지 불리한 외척여건이 중첩 된데다 그것을 극복해야할 문화예술인들마저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자각이 결여되고, 방향감각마저 상실한 채 휩쓸려 버린 경향이 짙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러한 경향은, 오늘날 빚어진 문화적 정체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고, 요근래 일단의 젊은이들과 자각 있는 예술인들에 의하여 우리 시대, 우리 역사를 올곧게 보려는 실천적 노력이 모색되고 있지만 아직 보편적 흐름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실정에서 문학 미술인은 물론 모든 예술인과 그것을 수용하는 수용자들 공히 역사에 대한 진보적 인식과 실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단 문학과 미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행위’와 '나타냄'이 수단이 되고 본질이 되는 연극과 무용, 또 판소리나 농악과 민요는 물론 서양음악까지 소위‘공연예술’로 통칭되는 것들에 있어서는 지금이 중요한 전환기라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이 시대, 이 지역에서 제각기 ‘행위’와‘나타냄’속에 공연 예술인들은 무엇을 담고 있고 앞으로 담아나가야 활 우리 것은 무엇이며, 또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연’이란 말을 우리말로 풀어본다면 판을 구성하고 거기에 노래와 연주 ·춤이 한데 어우러졌던 것으로 공동체 儀式의 하나였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고장은 어느 지역보다 신명나는 놀이판의 전통을 가졌다고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 지역공연 예술분야는 많은 문제점과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오늘의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에 무대가 마련되기 이전의 공연예술행위가 어떤 흐름과 줄기를 가졌었는지 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익두 : 말씀하신 무대가 있기 전과 후로 시대구분을 한다면 우리 전라도에서는 우선 마을단위 놀음으로서 세시 명절이나 집단노동행사 때 마을민이 함께 모였던 ‘마을굿’이 있었고, 그 마을이 이웃 여러 마을과 만남으로서 나타나는 ‘기세배’와‘풍물때놀음’으로 확대되었고, 이것은 익산, 김제, 고창은 물론 남원 산간 지역에서까지 행해졌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직업성을 띤 사당패놀음이 있었고, 근대에 가까워지면서 많은 소리문이 나타나 마을놀음에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우리 호남직역에서 집대성되어 오늘날까지 번성하게된 계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판소리꾼이나 소리광대의 행위가 창극이라는 연극형태로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무대공연예술의 모습을 띠면서 지역으로부터 전국으로 확산하게 됩니다.

 

사회 : 그러면 이러한 마을단위 놀음에서 나타났던 연극적 요소와 창이 형식에 있어서는 별 무리 없이 ‘창극’이란 형태로 바뀌어 무대 안으로 옮겨졌고, 그것이 현대극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소재나 내용 면에서의 수용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무엇을 담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요.


 우리의 이야기------재창조 작업의 안일함

 

이시헌 : 솔직히 우리들의 바탕에 있는 이야기들을 소재화 하고, 그것을 다시 역사적 흐름의 안목에서 펼쳐내는 작업들이 너무도 미비했다고 봅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제약이 있긴 했지만 그간의 연극들이 좀 더 자연스럽게 표출해 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있는 우리의 진실한 이야기보다는 외국작품이나 기존공연작품의 모방과 재탕에 매달려 있었던 셈입니다.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용 ‘어려운 것’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여기게 했고 창극이나 판소리무대처럼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연극자체로서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인택 : 재창조 작업의 측면에서 상당히 안일해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우리 민족은 무대가 있기 훨씬 이천부터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관객과 행위자가춤판에서 함께 어울렸던 전통이 많았었던 걸로 아는데 무용 쪽의 흐름은 어떻습니까?


 백의선 : 무용도 다른 예술분야와 대동소이한 흐름을 겪었습니다. 마을단위 혹은 마을간에 행해졌던 춤이 근대적인 무대가 생기면서 ‘신무용’이란 형태로 변모하게되니까요. 한가지 추가한다면 원형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전통무용과 거기에 새로운 해석과 기법을 도입하려는 ‘신무용’으로 구분되면서 관객도 구분되어진다는 점입니다. 전통무용의 관객은 특정계층으로 고정화되는 감이 있고, 신무용은 창작자의성격이나 작품내용에 따라 관객의 범위가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이 시대에서 신무용이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큰 것이지요. 7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 전통 춤에 대한 재인식이나 창조적 변형작업, 이를테면 접목과 실험의식이 수반된 우리 춤의 전문화운동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일정시기동안 복잡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을 전제하고서도 가치를 크게 부여받는 것은 이러한 운동이 꾸준히 이어짐으로 해서 그 동안 가려 있었던 우리 춤의 주체성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선 그러한 참다운 운동이 이제껏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준복 : 서양음악 쪽에서는 오히려 관객에 따라 무대가 변화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맨 처음 연주회가 열렸던 곳은 교회였고, 그 다음엔 궁중에서 많은 음악회가 열렸죠. 그 이후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산업화되면서 전문적인 오페라 극장이나 콘서트홀이 생겨났고 지금은 빈 공간이면 형식에 구애 없이 어디서나 연주가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실제 그런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서양음악이 우리 나라에 전래될 때만 해도 형식적 면이 거의 절대적인 시기였고 그 전통이 근자에까지 이어져왔으나 요즘은 서양의 추세와 마찬가지로 형식에서 벗어난 소무대가 많이 생겨났고 우리 전주지역에도 활발한 편입니다. 지역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관객이 점점 줄어들면서 연주가들도 자기 음악을 애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만 연주회를 여는 성향이 질어지면서 큰 무대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사회 : 이제까지 공연예술의 흐름을 우리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 바탕이 되는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기도 하고, 그 전통이란 개념자체가 본래적이기 보다 외래문화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대적 개념으로 구축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동안 우리 것에 대한 신뢰와 사랑 나아가 연구를 토대로한 실천적 계승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느냐 하는 인식과 함께 전통이 단순히 과거 지향적인 것만이 아니고 오늘도 전통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와 닿는데요.


김익두 : ‘전통문화’가 뭐냐는 문제가 제기됐던 것은 외래문화가 필연적으로 수용되면서 일텐데 우리의 경우뿐만 아니라 전래 초기에는 그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 것은 외래문화가 어느 정도 수용된 한참 후라고 생각되고,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6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자각의 시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근대화가 몰고 온 사회적 변화가 이제까지 문화주체였던 양반대신 새로이 일반서민 또는 민중이 문화의 주체로 등장하게 된 변혁입니다. 그에 따라 자연 피지배계층의 문화가 바탕이 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면서 외래문화도 함께 수용되는 이중의 문제를 안게 된 셈이지요. 다시 말해서 문화주체들의 능동적이며 주체적 역량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우리 것을 자각할 여유가 별로 없었지요. 탈춤은 근대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양반문화와의 싸움에서 힘을 잃어버렸고 단지 ‘창극멤버인 판소리꾼들이 예술성을 바탕으로 폭넓게 민중을 판으로 끌어들였지만 일제의 탄압과 창의력부족으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해방을 맞이했지만 이데올로기대립과 동족상간, 분단을 거치면서 더욱 미루어지고 6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가에서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주체적 노력에 의해서 공연예술분야에서는 탈춤이라든가 마당극운동이 퍼져나갔고 이것이 학문적 연구로 이어져 저술작업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부측에서도 무형문화재 지정과 전수를 나름대로 주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됐지요. 한편대학가에서는 이것이 운동차원으로 심화되는 과정에서 굿운동으로 까지 전개되었고, 판소리분야에서는 ‘실천 판소리’로 판소리를 새롭게 살리려는 노력이 나타났고, 근래에는 민요와 무용도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가락과 춤사위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어오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회 : 어떤 새로운 문화가 아무 준비나 여과과정이 없이 들어올 때 나타나는 문화적 역작용으로 해서 .우리 것을 찾자’ 또는‘주체성을 갖자’는 의식이 대두된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 이제 ‘우리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 되는데 가장 절실하고, 크게 부딪히는 분야가 양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준복 : 서양음악이 들어오면서 좀 잘못 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당시 시대 상황에비추어, 서양음악이 ‘우리 것’보다 우월한 음악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교육도 서양음악 중심으로 되어왔고 그로 인해 국악과 양악 사이에 일종의 감정대립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둘 사이가 오늘날에도 거리가 상당히 멀고 패인 상처 또한 깊은 것이 사실이지요. 이제 그와 같은 인식이 많이 바꿔져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조금만 시야를 넓혀 생각해봐도 그럴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우리가 전통음악 혹은 국악이라고부르는것이 과연 중국이나 몽고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은 순수하고 토착적인 것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서양음악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혹자가 소위 ‘한국전통음악’과 ‘현대한국음악’을 구분해서 ‘Korean Music,과 ‘Music in Korea’로 구분하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국악 하는 사람’파 ‘서양음악 하는 사람들이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서로 관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악이나 양악계 모두 시야를 넓혀 상대방의 좋은 점이나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폭넓게 이해해 춰야지 너무 자기 것만 고집하고 원형보존이나 자기음악만을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백의선 : 그런 문제는 무용 쪽에서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근래에는 전통무용과 신무용이 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구분되어지고 있지만 내용에 앞서 표현상의 형식과 기교적인 변에서는 아직도 큰 갭을 가지고있지요 어차피 공연예술에 있어 주체성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통예술의 미학적인 재해석과 그 내재적인 모습들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이 시점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주체성을 찾자는 노력이 전통의 고수라는 편협 적인 측면에서만 강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전통의 보존과 계승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계승이란 우리 주체성회복을 위한 진실한 우리 문제들을 수용하고 또 재창조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작업에 우선되어야 할 문제가 예술인들의 상호 이해와 폭넓은 시각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시대성, 지역성도 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준복 : 작곡하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 것’을 소재로 해서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충만한 자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여건으로선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비록 국악과양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다양성의시대인 오늘날 예술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됩니다.


이시헌 : 오늘날 우리 것을 표출하려는 노력을 연극 쪽에서 살펴보면 70년대 규격화된 무대로부터 탈피하려는 운동이 대학가에서 마당극 또는 마당굿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조금은 발전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우리 지역에선 이것마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 역시 소채하고 긴밀히 관련되는 문제고 ‘극작의 빈곤’이란 말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 전북지역 만해도 지역성이나 역사성을 뼈저리게 자각한 작품들이 우선 드물었고, 연극인 스스로도 물론 연극을 천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판력이나 분석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실천적 무대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규격화된 무대가 기본 작품만을 다루다보니 금방 한계성에 부딪히고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백의선 : 무용분야에선 이 지역의 상황만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주체성이나 우리 것의 재해석등의 문제가 제시될만한 근거조차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선 행위가 없었습니다. 근래 들어선 다행스럽게도 한국무용쪽의 「원무용단」이나 현대무용의 「전북가림다 현대 무용단」이 창립돼 신선한 움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들 젊은 세대들이 뛰어들기 이전까지의 시기가 너무 오랫동안 비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는 데 따라 이 지역 춤운동의 방향이 정해져 버릴 수도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결국 젊은 세대들의 자각이 중요한데 우리 역사와 우리 시대를 보여주겠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만큼 표출만 재대로 된다면 춤 쪽에서의 주체성회복 문제는 상당히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사회 : 오늘 좌담은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우리’라는 개념을 가지고 뭔가 공동의식을 찾자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모든 예술작업의 바탕이 되는 문화가 우리의 경우 ‘양반문화’와 ‘서민문화’ 또는‘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대립되어 있고 근래에는 거기다가 ‘대학문화’와 ‘사회문화’로 구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화가 다변화되어 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 큰 흐름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김익두 : 문화라는 것은 '자유'가 기본 전제로 되어야 합니다. 각 계층의 문화가 자유를 전제로 문화행위를 한다면 일차적으로는 각각 존재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람직하냐 않느냐는 종합적인 검토가 있어야겠고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느 시대고 ‘시대정신’이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대변하는 주체가 오늘날에는 민중이나 평민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급 투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당위성이라고 봅니다. 새로 등장한 문화주체들이 자기률 지키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지식인이나 학생들에 의해 대리 문화현상으로 나타나는 경향도 다분히 있지만 문화의 방향설정이라든가 창조행위가 단절되어서는 안되고 궁극적으로 문화주체에 귀착한다는 관점에서 공연예술이 전환기에 보여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 그럼 연극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가능한 우리지역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십시요. 이시헌 : 연극행위가 개인이든 하나의 극단이든 자기 나름의 색깔을 추구하고 전문성을 띠기는 하지만 어떤 획을 긋고 그 안에서 특정한 것만을 가지고 작업을 하겠다는 것은, 가령 예를 들면 현실문제가 절실하니까 나는 이것만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겠다는 것이 자칫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상실한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특성이나 색깔을 간직하고 역사적 흐름과 줄기를 이어가는 작업이어야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도 포용을 받을 수 있지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것’ ‘내것’혹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표출한다고 할 때 쪽 우리 작품이 아니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명작일 수록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고 무대 위에 구체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서 소재를 찾고 우리방식대로 우리 얘기를 구성한다면 더욱 공감이 크겠지요.


이준복 : 우리 음악쪽을 본다면 서양음악이 본래 무대를 통해서 들어온 만큼 발표활동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작곡이나 이론분야를 제외하곤 음악인 모두 무대에 활발히 서서 발표의 기회를 가져야 되는데 도내의 경우 현재 5개대학에 음악과가 있지만 지난해 발표회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왜 그러냐하면 음악애호가들이 이미 매스컴이나 레코드를 통해 훌륭한 작품과 연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나서지를 못합니다. 또 발표회를 한다고 하더라도 청중이 좋아하는 곡을 부르거나 연주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작곡을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 한다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매년 작곡발표회를 갖지만 기존 음악과 연주에 익숙해 있는 청중과의 싸움은 힘들어요. 나름대로 창작의욕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매년 그 싸움은 더 힘들어지고 좌절감까지 느끼기도 해요. 제 경우 청중은 작곡가가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시작했고 아직 그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창작정신을 살리면서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요. 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창작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이것을 창작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김익두 : 한 사회에 창작행위가 있다는 것은 창작자가 있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있고 창작물이 있어야 되는데 가장 먼저 창작자가 항상 체계적인 창조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한시대의 창작자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얼마나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기화 해내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왜 수용자들이 내 창작물을 몰라주고 이해하지 못할까하는 얘기는 공허합니다. 당대에 이해하지 못했던 창작행위나 작품이 후대에 수용된다는 것은 더욱 어렵겠죠. 음악 쪽에서 서양음악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 것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신 이 교수님이 창작자로서 안고있는 외로움에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 이 지역의 현대극이나 연주회에는 썰렁한 자리가 마당놀이라든가 판소리들에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은 홍보를 많이 해서라기 보다 그것에서 우리가 갖는 공동체 의식의 확인이 가능하고, 시대적 필연성을 느끼는 당위라고 생각할 때 창작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의 정신 문제를 고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시헌 : 연극에만 몰두할 수 없는 여건이 창조적 작업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창조적 작업을 위해서는 갖춰줘야할 여건이나 시대상황이 무시될 수 없는 문젠데 그 책임을 창작자만 져야 하느냐에 대해선 생각해 볼 여기가 많습니다. 그들도 자기굴레를 탈피하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자는 의식이 있지만 실제행위로 나타낼 때 느끼는 관계성 때문에 좌절하는 수도 있거든요.


 사 회 : 저도 연주하는 입장에서 마찬가지지만 그 이전에 철저한 ‘쟁이’로서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지워준 예술적 사명감에 충만해야 되는데 그것이 결여할 때 생겨나는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이시헌 : 그러나 그렇게 나약하거나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용이나 후원을 바라고 그것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고 지금보다는 여건이 조금 나아져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백의선 : 그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공연예술에 있어 여건은 일차적인 과제입니다. 문학이나 미술처럼 한 개인의 치열한 창작정신의 표출 만으론 예술성을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야보다 많은 매체와 매체의 만남이 이루어져야만 이 가능한 분야가 바로 공연예술 아니겠습니까.


사 회 : 어떤 기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지역에는 미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미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이나 다른 지역의 경우를 봐도 그런 사람들은 자연히 후원자도 생기고 상황도 나아지거든요. 어쩔 수 없이 돈타령이 나오고 마는군요. 이제 근래 들어 활발히 일고 있는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하죠.


 이시헌 : 그런 문제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저희 연극 쪽에서 가장 절실한데요.‘우리 것’올 소재로 한 연극을 많이 올린다고 할 때 그것에 맞는 음악과 연기를 위해 지역의 음악가나 무용을 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전달되는 메시지가 훨씬 확실해지고 공감도 크겠지요. 그리고 저희 연극에서 쓰이고 있는 기법이 타공연 예술에 도움을 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복 : 곡을 만드면서 느끼는 것은 창작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혼자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작곡하는 사람과 연주자의 관계는 밀접하지만 연주자도 자기연주를 살려나가야 존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강요는 못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범위를 좁히면 어떤 지역에서 그 지역 사람이 창작한 것을 더 많이 연구했으면 하는 것이고, 또 레코드작업도 활발해져서 보다 많이 들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서양의 좋은 곡만 연주되고 돌려진다면 우리 것은 재대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살아남기도 힘들겠지요.


 백의선 : 최근엔 무대예술과 무대예술의 만남 뿔만 아니고 무용과 미술. 음악과문학동의 동작예술과 정적예술의 접목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던데요. 이 지역에서도 무용과 미술인들이 공동작업의 방법을 모색중인 것으로 풀었습니다.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갖고 각기 다른 표현양식을 통해 표출할 수 있다면 보다 차원 높은 예술행위가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관객들까지도 함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절실한 문제와 현실이 다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주체성 있는 작업이 될 수 있겠지요.


 이시헌 : 연극쪽에선 사실 공동화 작업이 이루어져 왔었습니다. 그것이 이렇다 할만한 결실을 맺지 못한 것 뿐인데 실제로 한 극단에선 이 지역 삶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공동 창작했었고 또 공연준비까지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여건으로 중단되고 말았는데 그러한 움직임을 앞으로도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고 곧 무대 위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회 :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전 공연 예술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서 예술제나 문화행사가 많이 있는데 이런 행사들이 문화행사가 많이 있는데 이런 행사들이 물론 하나의 축제지만 지나치게 소비적으로 흘러 문화행사는 뒷전이 되고 마는 경향이 많습니다. 진정한 축제라면 축제를 통해서 미래에 그 시대의 정신이라든가 그 시대의 사상이 깃든 작품을 남겨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느낌입니다.


 김익두 : 그것은 저도 그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입니다만 앞에서 논의되었던 공연예술 전반의 공동작업과 연관시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견상 예총이라는 조직이 있긴 하지만 전문예술인들의 모임이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접예술과 만남도 이뤄지지 못하고 관주도의 문화예술행사가 지역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근대산업사회 이후 새로운 경제주체로서 중산층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 창조되었던 전환기롤 우리도 이제 맞이했는데 앞으로 해야될 일은 농민과 서민대중은 물론 모든 활동주체들이 각자 존중되어야하고, 그 주체들이 펼쳐지는 예술활동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남북으로 분단돼 있고 작은 반도이긴 하지만 각 지역문화를 전제로 해서 우리 나라, 우리민족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볼 때 우리 전북지역에는 판소리, 농악, 무당굿, 민요등 민중이 주체가 되어 끌어온 공연예술의 전통을 가진 지역으로서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 추구되어야겠지요. 그렇지만 너무 폐쇄적이어서는 안되고 ‘열린 마음’으로 타지역이나 이웃나라 멀리 서구것까지도 적극 수용해야겠지요.


사회 : 지금까지 전라북도 공연예술의 흐름과 전환기를 맞이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에 대해서 얘기론 나눠봤습니다. 정리해 본다면 우선 적극적이고 기질있는 창작자가 빈곤한 정올 지적할 수 있고, 또 창작된 것이 계속해서 재현되고 재 창조됨으로서 하나의 맥이 형성되어 지역민이 호응할 수 있는 흐름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점. 또 모든 예술을 총괄할 수 있는 공연예술인들의 실질적 모임이 없었던 정이 아쉬웠고, 또 앞으로의 과제라고 봅니다. 남이 해주길 기다리기 보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있음으로 해서 공연예술이 새로운 방향을 찾고 활성화되는 길이 마련될 수있을 겁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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