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8.3 | 특집 [특집]
저널특집 정지용과 김기림
백학기·시인(2003-12-18 11:54:56)


 1. 1930년대 우리 文壇을 뒤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시인은 정지용과 김기림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상황 속에서 정지용과 김기림은 우리 蒔의 나아갈 바를 '정신의 近代性'으로 상정하여 기존의 낡은 시의 형태와 관습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시의 모랄을 추구했던 것이다 20년대의 우울한 감상적 센티멘탈리즘의 점람과 세기말적 증세의 퇴폐등으로 점철된 우리시단에 새로운 정서와 감각 그리고 이미지 등으로 시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갔던 정지용과 김기림은 <모더리즘>이라는 시대의 정신적 징후에 민감하고도 객관적으로 적응해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지용과 김기림은 시가 우선은 언어의 예술 임을 자각하였으며, 언어를 통하여 새로운 모랄의 인간과 세계를 발견하려 한 近代性에 그들은 성실하였다. 그리하여 구시대의 봉건적 유교적인 억압의 질서로부터 새로운 인간 해방의 양식으로 1930년대 우리 시단을 이끌어갔던 정지용과 김기림은 우리의 40여년 분단 상황 속에서 拉北,越北의 레뗄로 매몰되다시피 하였으나 최근 문공부의 납본필증으로 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1920,30년대를 통하여 가장 탁월하고 뛰어난 여러 시인들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이라 할 정지용과 김기림의 시와 散文,評論들이 禁忌의 서적으로 먼지 쌓이고 어둔 골방의 서재에 갇혀 있었다는 현실이 슬픈 우리 분단 상황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 시란 언어의 寺院이며 적막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정신적 징후들을 첨예하게 건드려야 하며 새로운 땅을 찾아야 할 의무 또한 심각하다. 이에 김기림은 크리포엣트(비평가시인)로서 시의 感傷性, 정체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단을 배격하고 시에 대한 과학적 인식으로 시이론을 도입. 시의 혁명에 이르려는 인식에 도달한 반면 정지용은 우리말이 가지는 독특하고 고유한 빛깔과 향기로 언어적 감각을 승화시켜 진정한 예술성을 성취하였다. 이들 두 시인은 똑같이 한 시대가 품고 있는 예술의욕을 자신 속에 구현해나가는 창조적 정신의 일환으로 詩精神을 견지하면서 1930년 우리 近代 詩史의 森林 속에서 두 개의 큰 나무가 되었던 것이다.


 2. 정지용은 그의 年譜에 의하면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지용은 그의 어머니의 태몽에서 유래하여 어렸을 때 <地龍>으로 불리우던 것이 <志溶>이 되었다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창씨개명때 지용의 創始名은 大已(오유미)인데 이것은 東夷의 <夷>를 둘로 나우어 大已이라 한 것이다. 이는 곧 東夷 즉 한국인을 뜻하는 것으로 의도적인 창씨명이 아닌가 한다. 그의 대표작인 '鄕愁'는 바로 이러한 조선적인 서정성이 농밀하게 배어있는 작품이다.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누이와 이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지고 이삭 줏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鄕愁> 全文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 실개천이 흐르고 동쪽 끝의 넓은 벌은 가장 朝*적이다. 밤에는 밭이랑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늙은 아버지가 벼개를 돋아 고이는 한국적 서정의 難苦한 이야기들은 바로 정지용의 조국 인식이다. 한 시인의 대표작 속에 담김 실체로서의 향수는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바이지만 이렇듯 조선어로서 자연스럽고 적절한 표현 기법으로 시대와 민중의 중심으로 들어선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까마귀 우짖고 서리 내린 초라한 지붕을 바라보는 정지용의 감회는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아픈 것들이었을 것이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푸른 하늘빛을 그리워하는 지용의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여쁠 것도 없는 조선의 여자(어린 누이와 아내)들이 햇살을 등에 받고 이삭을 줍던 정경들을 가슴속의 아픈 삽질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이러한 정지용의 시적 인식은 <까페 프란스>에서 '나는 子婦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라든가 <**>에서의 '아지랑이 조름조는 마을 길에 고달퍼/아름 아름 알어질 일도 몰라서/여윈 볼만 만지고 돌아오노니'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가치……/이집 문고리나,집웅이나/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듸 착한 수염이나'<냇니약이 구절>에서 보듯 깊은 슬픔의 서정이 깔려있다.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마는 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말·1 流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먼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도 밀려와 부디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人새처럼 날러갔구나! 肺血管·1 이러한 슬픔은 시인이 人生과 같은 관련을 가질 때 가능하다. 손이 희여서 슬픈 지용은 봄길 위에 타는 듯 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알어질 일도 몰라서 여윈 볼을 만지고 돌아오며 장독대의 큰 독 안에 담긴 물도 그에게는 슬픈 심상으로 다가온다. 집의 둥근 문고리나 지붕, 늙은 아버지의 수염에서조차 거룩한 슬픔을 표현해냈다. 슬픔의 표현이란 자칫 다스리기 어려운 감정의 감정의 배설이기 쉬우나 지용은 고도의 절제된 시형식으로 完美하게 다듬어 나갔다. 그리하여 김기림으로 하여금 특이한 감성의 창문을 옅어서 현대의 심장에서 움직이고있는 지적 정신- 더 광범하게 말하면 고전적 정신을 민감하게 맞아들여 독창적인 형상을 주었다라는 평을 듣는다.그래서 우리말의 각개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무게와 감촉과 光과 陰과 形과 音에 대하여 지용처럼 정확한 식별을 가지고 있는 시인을 알지 못한다라고 술회하게 한다. 또한 시적 자아의 따뜻함이 말(馬)을 대할 때 사람 대하듯 하며 시적 자아의 외로움이 유리창을 통하여 드러날 때에도 '아 늬는 山人새처럼 날러갔구나'라고 읊게된다.


 3. 김기림은 그의 시집 『太陽의 風俗』의 머릿글로 '어떤 親하고 싶은 것은 依然히 相逢이나 歸依나 圓滿이나 師事나 妥協의 美德이 아니다. 차라리-訣別을 저 東洋的 菽滅로부터 무절제한 感想의 徘地로부터 너는 즉각으로 떠나지 안아서는 아니된다. 김기림은 그 시대가 처한 시의 체계없는 비과학성을 부정하였다. 시는 그 자체 정묘한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이른바 새 전통을 수립하기 위해 그는 결연히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양적 宿憾을 담고 있는 感傷의 배설들로부터 떠나 새로이 시에 대한 과학적 추구를 내세우며 탄식,비애,까닭 모르는 울음 소리를 버리는 것이 시의 일차원적 목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魚族과 같이 신선하고 旗人발과 같이 활발하고 표범과 같이 대담하고 바다와 같이 明確하고 선인장과 같이 건강한 太陽의 風俗을 배우고자 설파하였다. 太陽아 다만 한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야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비러오마 나의 마음의 문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우에 너를 위한 작은 宮殿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故  나의 사랑 나의 希望이라고 부르마. 그러고 너의 사나운 風俗을 쫓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太陽아 너는 나의 가슴속 작은 宇宙의 湖水와 山과 푸른 잔디밭과 한 防川에서 不潔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搖藍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病室을 魚族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詩 太陽일수가 없는 설어운 나의 詩를 어두운 病室에 커놓고 太陽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새여가며 기다린다. -太陽의 風俗 全文 마음의 무너진 터를 그 시대의 어두운 역사에 비추어 태양의 밝음으로 어둠을 죽이고 가슴 속에 있는 호수와 山과 잔디밭과 防川에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를 기다리는 김기림의 시적 인식이 충분히 드러나는 太陽의 風俗은 그에게 故 이며 사랑이며 希望이었으리라. 그 시대의 어두운 풍속은 太陽을 향한 건강하며 빛나고 신선한 이미지를 찾아 그로 하여금 부심케 하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기림의 참신한 감각이 두드러져 보이는 시는 아무래도 그의 대표작으로 보이는 '바다와 나비'이다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한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三月달, 靑무우밭, 초생달, 바다 물결 등 푸른 색 일변도로 느껴지는 '바다와 나비'는 조그마한 生物인 나비와 크고 넓은 바다의 대비를 토아여 인간 정신의 어떤 한계같은 충격을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싸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위의 시는 언어와 언어들이 품고 있는 상호 유기적 작용에 의하여 새로운 울림을 읽는 이로 하여금 일으키며 분명한 회화적 이미지로 펼쳐져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太陽의 風俗'에서의 시정신의 패기, '바다와 나비'에서의 어떤 섬찟함보다도 김기림의 '山羊'은 더한층 우리를 사로잡는 인간애와 따뜻함이 있다. 홀로 자뻐저 옛날에 옛날에 잊어버렸던 찬송가를 외여보는 밤 山羊과 같이 나는 갑짜기 무엇이고 믿고 싶다 -山羊 全文 단 석줄로 되어 있는 짧은 시 '山羊'운 아득하게 그리운 것들로 가득찬 인간들의 꿈과 사랑을 노래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김기림의 가슴깊은 곳에 자리한 故 이며 희망이며 사랑이다. 4 모더니즘이란 낡은 인습과 전통을 부수고 새로운 모랄을 추구하는 양식이며 가치이다. 30년대 우리 詩史에서 가장 탁월했던 두 시인 정지용과 김기림은 그들의 치열한 詩精神으로 하여 당대 시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지용은 시어의 참신함 감각성으로 김기림은 의식을 원시적 건강함으로 우리 시단에 새 장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정지용은 언어의 音樂性으로 김기림은 회화적 이미지로 시가 결국은 인간의 가장 깊은 정신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가치임을 외롭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정지용과 김기림은 30년대의 우울한 상처들을 뜨겁게 껴안고 보듬으며 과거의 시인들에게서나 볼 수 없었던 그들 시대가 아니면 쓰지 못할 시들을 캄캄하게 써나갔다. 여기서 그들의 위대성이 있다. 김기림의 다음 말로 글을 맺는다. 시인은 시대의 사람이며 동시에 초시대의 사람이다. 시인이란 아마도 영구히 슬픈이가 아닐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