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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 | 특집 [특집]
전환기의 흐름, 내적 건강성 수용
문화저널(2003-12-24 11:56:32)


 충격과 격변으로 이어진 88년은 지난 해부터 일기 시작한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열기에 힘입은 새로운 물결이 대세를 이루면서 변혁을 요구하는 높은 목소리들로 각분야마다 폭넓은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자극과 변화는 한시대의 삶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규정하고 반영하는 문화 속에 가장 깊게 파고들면서 다양한 결실들을 거두었다.
88년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변화는 납·월북 예술인 작품규제 「해금조치」와 민족문화의 주체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그 의지의 실천적 작업으로 집양할 수 있다.
분단 40년의 온전치 못한 민족예술사를 복원하는데 물꼬를 튼 납·월북 예술인에 대한 「해금」은 기와에 쓰여진 불구의 예술사가 다시 정리돼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면서 한국 현대예술사의 공간을 크게 확대시켜 주었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또한 각 부문마다 예외없이 떠올랐던 민족주체성 확립에의 목소리들은 통일을 지향하고 반미의식의 심화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자리를 잡았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 문화계에 자성과 새로운 변혁을 요구하면서 갈등의 진폭은 확대되었지만 그것은 앞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자극과 계기가 된다는 점에선 분명 환영받을만한 일이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에서 지역의 문화예술도 내적인 변화, 의식의 확산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그 어느해 보다도 강도 높게 일었다.
그러나 새로운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높았다 할지라도 그를 뒷발침할 수 있는 문화적 여건은 여전히 척박해서 실질적으로 이 지역의 양적·질적 측면에서의 문화성숙도를 어느 차원에까지 이루었느냐는 점에선 반성할 여지가 많이 있다.
88년 우리 문화분야의 가장 큰 이슈는 그것의 근본적인 성과 여부를 거론하기 이전에 올림픽을 즈음한 문화 축전이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축전은 나라 전체를 온통 들썩이게 하는 화려한 잔치마당으로 꾸려졌지만 그것이 서울 중심의 예술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지역의 문화예술은 철저히 소외된 채 오히려 양적·질적인 면에서 크게 위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과 몇몇 대도시에서 베풀어진 문화축전은 오히려 중앙과 지방간의 위화감을 조성한 셈이 됐고 문화개방을 내세운 각종 국제적인 행사와 민족예술성을 표방한 국내 예술단체의 무대는 지역문화예술인들에겐 감히(?) 넘나볼수 없는 성역으로 인식됐으며 지방사람들은 빈약한 지역문화예술무대만 탓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내세운 「지방문화예술활성화」는 아직도 구호로만 내세우는 선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외된 풍토에서 그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체득한 전북의 문화예술계는 내적인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대적 소명으로써의 도전과 자극을 불어넣는 각종 활동을 시도함으로써 이지역에서의 88년 역시 역사적 변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편으로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거나 단편적인 활동에 그친 성향에서 크게 벗어날 수 는 없지만 이 시대적 삷과 더불어 숨쉬는 문화를 정착시켜나가는 일단의 출반선상을 보였다는 점에선 큰 의미를 지닌다.
88년 한해동안 큰 관심을 모았단 쟁점과 활동을 중심으로 전북예술계를 결산해 본다.
-문학-
전북 문학계의 88년은 문인들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을 점검하는 인식들이 구체적인 실천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이지역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선 가장 뚜렷한 면모를 갖추고 떠오른 것은 「전북 민족문학인협의회」다. 이 지역이 안고 있는 폐쇄성과 파당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민족·민중문학을 표방하고 나선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는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발족, 당시 원로문인에서부터 중견들까지의 큰 관심과 참여의 폭을 넓히면서 전북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전북민문협」이 비교적 편파성을 극복하고 보다 많은 문인들의 고나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참다운 민족문학이란 수천년의 역사안에서 줄기찬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이땅의 사람들, 민족 공동체의 건강한 생활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이란 확고한 인식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족주체성 회복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시대적 요청과도 크게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구속문인석방촉구대회와 함께 6월 전주고백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던 「전북민문협」은 출범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지난해 하반기 동안 실질적은 활동을 연결시켜나가지 못함으로써 자체 내에서도 자성의 분위기가 크게 일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이 지니는 선도적 역할을 믿는 문학동호인들에게도 적지않은 실망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전북민문협」의 발족을 즈음해 해체한 「남민시」동인도 당시 내세운 「발전 적인해체」의미를 확보하는 일이 뒤따르지 못함으로써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왜냐하면 그동안 민족적 정서를 회복하고 문학적 실천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자는데 뜻을 두고 활동해온 「남민시」가 3집까지의 동인지를 발간해내면서 이루어낸 역량이 결코 허술하지 않았던 만큼 비록 「남민시」의 해체가 자신들의 주체의식을 「전북민문협에서 더욱 확보하게 표출해나간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남민시」가 해내야할 문학적 몫과 전북민문협의 몫은 별개의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민시」의 해체까지 수용하면서 발족한 「전북민문협」은 이제 전북지역의 건강한 문학풍토와 이시대의 삶을 총체적으로 엮어나갈수 있는 참된 역할로서의 문학을 정립하는 활동을 이어가야한다는 책임의식을 안게 됐다.
이와함께 지역에서 전국단위의 종합문예지가 창간됐다는 것도 꼽힐 만한 수확이다. 신아문예사에서 간행한 「문학과 의식」은 출판활동까지도 서울에 집중돼있는 마당에 지방에서의 문예지 발간이라는 적지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 단순히 문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치고마는 것이라면 가뜩이나 많은 잡지가 쏟아져나오는 분위기에서 그 뚜렷한 역할과 영역을 확보하기란 좀처럼 쉽지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한다. 표현문학상과 신인문학상 제정으로 보다 활기에 찬 활동을 펼치고 있는 「표현」이 금년, 정기종합문예지로 등록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면모는 전북문학의 활성화에 더욱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미술-
88년 전북미술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전라북도미술대전의 난산개최와 대상수상작의 모작시비다.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되어 벌였던 제20회 도전의 참여거부운동은 사실상 도전의 민전으로의 이관 당위성을 설득력있게 입증해준 예였다. 86년부터 미협전북지부가 추진해온 민전이관작업이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채 다시 20회 공모전을 치르게되자 미협에선 자체내의 행사이외 모든 행사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젊은세대들은 도전거부운동을 벌여 출품작품수가 예년의 절반에도 훨씬 못미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미술인들은 출품여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했으며 21회공모전부터 민전으로 이관한다는 확약(?)을 얻어낸후에야 거부운동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접수상황은 여전히 저조해서 예년의 절반밖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도전은 치러졌다. 게다가 덧붙여진 문제가 대상수상작의 모작판명시비다. 전국적인 화제까지 불러일으켰던 모작시비는 도전 20년만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기면서 대상수상작이 취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들은 한해의 도전운영상의 측면에선 많은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전북화단의 보다 건강한 풍토에서 도전이 치루어져야 한다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극과 충격의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선 적지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변화로는 민중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확대로 집약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 기존의 화단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순수주의」나 「유미주의」를 거부하고 「삶의 미술」을 표방, 미술의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내세워온 민중미술은 그동안 예술적 성과속에서 그 역량과 가치가 전제돼온 이지역미술계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일종의 운동적 차원으로 대중들 속에 파고 들었다. 민중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은 물론 민주화 열기가 팽배했던 사회적 상황과도 무관하진 않지만 시대정신의 표출에서 비롯된 「삶의 미술」은 그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
작품전으로는 「현실의 살모가 그 실천으로서의 미술」을 표방하고 발족했던(86년)「들·바람·사람들」의 창립전과 한국화의 주체적 미의식과 새로운 방향설정을 모색해온 전국각지역 한국화가들의 「88한국화신구상대전」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들·바람·사람들」창립전은 이지역 미술계에 좀체로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와 현실의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 작품들을 내놓아 그룹전의 의미를 뚜렷하게 전달해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인전으로는 제3세계의 현실을 통해 제국주의의 식민지에 대한 압박과 수탈당하는 상황을 폭 1.5m, 길이 50m의 두루마리 캔버스 대작으로 제작한 임옥상씨의 「아프리카현대사」초대전이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또한 연말 문을 연 저주 얼화랑과 대성화랑의 개관은 전북미술의 활성화를 기대하게 해주는 수확들이었다.
-국악-
도립국악단창단, 국가중요무형문화재지정, 전북대 국악과신설, 각종 국악창작무대의 시도등으로 이어진 전북국악계는 이러한 외형적 여건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문제점들을 노출시키면서 개선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이 국악교육의 체계화와 전문화문제다. 이에 2∼3년 전부터 거론해온 국악교육의 체계화전문화문제는 88년의 각종국악 무대에서 이지역 출신의 유망주들이 저조한 실적을 거둠으로써 그동안 각종국악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국악의 고장으로서 역량을 돋보여왔던 전북은 근래들어 타지역의 국악전문교육기관출신들이 오히려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악교육의 새로운 체계정립이 시급한 과제로 안을 수밖에 없게됐다. 이에 대한 방안은 도내에 고등학교과정의 국악교육기관이 설립돼야한다는 여론으로 집약되고 있기도 한다.
국악교육의 체계화·전문화와 함께 보수성향이 짙은 전북국악계에 요구됐던 것은 창작국악의 수용이었다. 88년 국악무대에서 창작국악의 흐름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런점에서 큰 성과중의 하나로 보여진다. 특히 전국대학 창작국악경연대회나 창극 「전봉준」공연, 창작 판소리「금수궁가」공연등은 전북 국악계가 깊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의 흐름을 수용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88전북국악계의 특징은 우리것찾기와 연구작업이 활발하게 일었던 점이다. 우리 음악을 학문적으로 접근, 정당한 고찰을 통해 민족음악을 재정립한다는데 뜻을 둔 민족음악회가 발족, 성실한 연구활동을 해나가면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어 내고 있으며 대한고우회가 펴내는 「소리와 장단」도 우리것 찾기를 위한 체계적 작업의 확산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연말 창단된 도립 국악단은 그동안 인맥 중심으로 이어져왔던 국악의 맥이 현대적 발전과 창작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상타기에 급급, 순수성을 외면한채 급조된 농악단문제라든가 별다른 노력이나 연구없이 올려지는 국악무대, 그리고 지나치게 배타적인데서 비롯된 전북 국악계의 폐쇄성 문제는 우리 국악계가 하루빨리 개선해야할 문제점으로 여전히 남았다. 이와함께 실기전수만을 위주로 이어져온 전북 국악은 더 이상 문화재적인 기능만으로는 오늘의 국악을 창출해낼수 없다는 점에서 실기기능의 전통과 함께 새로운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연구작업이 병행되어야한다는 문제도 여실히 드러냈다.
-음악-
서울문화축전으로 각 지역에까지 여파를 몰아세웠던 분야는 음악이다. 공산권 국가를 포함한 세계 유명음악단체들은 각 도시를 순회하면서 연주회를 마련, 무대공간의 양적 확대를 이루어냈다. 전북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주를 중심으로한 공연활동의 양적증가는 88년 음악계의 특징으로 부각되었다. 또한 내적으로도 지역음악인들의 역량과 수준을 스스로 점검하는 노력들이 이어진 가운데 자성의 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전북음악계의 가장 큰 수확은 86년 창단한 호남오페라단의 활동과 거기에 덧붙여진 음악 각분야의 고른 활성화다. 「모스크바방송볼쇼이 합창단」「베를린대성전합창단」등의 세계적인 음악단체의 공연이 그것의 유명세와 함께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연주회가 이지역에서 치러졌다는 점과 보다 높은 수준의 연주를 보였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호남오페라단이 88년에 올린 무대는 3월의 「까발레리아 루스티까나」와 11월의「춘향전」 등 두작품이었다. 이들 공연은 여러 가지면에서 이지역음악의 위상을 점검하고 새로운 활성화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수확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지역오페라가 안고 있는 가장 큰난점인 오케스트라 문제에 대한 방안이다 .이두공연에서 도입했던 시즌오케스트라 문제는 새로운 방향을 얻게 됐다.
또 11월의 「춘향전」은 이지역의 원로·중견성악가부터 신인들가지 폭넓게 무대에 섬으로써 전북 성악의 오늘을 보여주었으며 작품제작의 전체과정이 지역인들에 의해 이루어져 지역음악무대로써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그러나 「춘향전」은 폭넓은 참여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는점이외에 음악적인 성공여부면에선 기대에 못미쳤다는 편가가 지배적이어서 이번 무대가 전북성악의 상황을 점검 할 수 있는 자극의 계기로 삼아져야한다는 것이 음악인 스스로의 평가이기도 하다.
88년 전북음악계의 또하나 특징은 소극장음악회의 정착이다. 87년 초부터 예루음악회를 꾸준히 열어온 소극장「예루」는 아직도 고정팬의 확보에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어내고있진 못하지만 수준높은 음악회를 기획하고 신인들에게도 발표의 기회를 확대, 전북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실내악운동이 활기를 띠었던 것도 성과중의 하나다. 전북에서 처음으로 목관실내악단 「아울로스」가 창단, 관악부문의 활성화에 기대를 안겨주었으며 글로리아스트링오케스트라와 전주KBS챔버오케스트라등 각 실내악단의 정기연주회는 음악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활동들과 함께 안겨진 문제점 또한 적지않았는데 관객동원으로 인해 가져오는 폐해나 각단체의 무분별한 협연, 특히 개인문하생종합발표회의 인상을 주는듯한 협연은 지양되어야할, 오히려 진정한 음악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드러났다.
-연극-
전반적인 문화상황으로 볼 때 근래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이면서 대중속에 파고드는 분야가 연극이다. 그것은 다루는 내용을 포함, 형식면에서도 민족주체성의 회복을 위한 갖가지 시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연극계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88년 전북연극무대에선 양적으로는 팽창한 읾녀을 보였지만 그들작품들이 대부분 번역극에 치우쳐진채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물론 제6회 전국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극단 황토의 「태」는 이미 서울에서 공연돼 한차례 화제를 불러일으킨 리바이벌작품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연출기법을 도입, 예술작품의 복제가능성을 거부한 극적 구성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시대에 맞는 주제를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선 큰 아쉬움을 남겼다 .
88년 전북연극계의 문제점은 전라북도 대학연극제의 무산이다. 부족한 연극인구의 여건을 극복하고 지역 연극활성화에 새바람을 블어넣어가는데 목적을 두고 시작된 전북연극제는 그동안의 참가작품의 질적 역량을 거론하기앞서 연극인구와 관객확보에 적지않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최측인 연극협회는 「협회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태여서 주관측에 앞서 이대회를 추진할수 없다」는 입장으로, 그리고 주관을 맡아온 전라북도대학연극협의회는 「행사일정만 맞추는식의 연극제를 내부적인 질적 변화와 체계변화없이는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때문에 일부 대학만이 참가해온 기존틀의 연극제를 온몸으로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세워 8회대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물론 전북대학연극제가 근년들어 그 한계성을 노출시키고 있고 대회 성격의 개선책이 논의돼오고 있었던만큼 이번 대회의 무산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의식이 앞서고 그 의식이 건강한것이라 할지라도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때문에 이대회가 기왕 무산이라는 현실을 감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젊은세대들의 건강한 의식과 참다운 실험정신이 표출되는 실천적인 자리로 이어지는, 철저한 점검과 모색기가 되어야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보다 중요한 고제로 대두했다.
이와함께 4회째를 맞은 전북연극제도 참가극단이 크게 부실한데다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드러냄으로써 이대회의 활성화방안 또한 절신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의 가장 척박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하는 연극풍토에서 각시군의 극단들이 정기공연무대를 꾸준히 마련, 연극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음은 연극인국의 저변확대와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88년 전북연극무대에서 돋보였던 작품은 서울극단「현장」이 올렸던 「노동의 새벽」이었다. 이작품은 흥행성위주의 작품을로 실망을 안겨온 서울극단들에 대한 인시을 씻겨준 한편, 우리문제인식이 부족한 이지역 극단에 자극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88년 전북연극은 이시대의 현실적 문제들을 무대에 올려놓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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