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89.3 | 특집 [특집]
우리의 소리, 恨의 정서-판소리 동편제의 맥-
전성진(2003-12-24 13:41:00)

대개 순전한 문외한이 그럴싸한 제목에 홀려 빠져들듯 가슴 속 한 곳에 흐르는 백제고을 사람이라는 숨죽인 생각이 「백제기행」이라는 멋스런 문자 속을 따라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나는 1월의 휴일하루를 들뜨게 만든다.

1월 15일
연중 가장 춥다는 소한-대한 추위도 몇 십 년만의 이상난동으로 표현되는 날씨 탓인지 별 위세를 부리지 못하고, 몇몇 시간 맞추어 나온 일행들은 조금씩 늦으면서도 ‘아직 다 안 왔네’라며 일찍 나온 것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통행들의 얼굴을 차곡차곡 맞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지난번에는 의자도 좋고 차도 깨끗해 보이던 관광버스이더니만 어찌된 요량인지 이번에는 썩음 털털한 학교버스를 준비해 놓았는가 싶은 것이 일을 꾸미는 진호형, 종민형, 병천형 은정씨 등의 살림살이 솜씨가 처음 같지 않고 신통치 않은 듯 싶기도 하고 알뜰하게도 생각되어 두어 달에 하루쯤 넉넉하고 후끈한 버스 한대쯤 빌려줄 백제사람 없을까하는 열적은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원래 전라도 사람들은 죽음을 노래하는 상여소리마저 서러움을 뛰어넘어 즐거움으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 그 것은 즐거움에서 슬픔을, 슬픔에서 즐거움을 볼 줄 알고 체험으로 느껴왔던 탓이리라.
흔히들 ‘恨의 정서’라고 하던가?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치며 부서지던 삶의 현실을 짙은 예술적 모양으로 엮어낼 줄 알았던 선조 들을 앞세울 수 있었던 까닭에 우리는 지금 언제, 어느 곳을 가든 전라도, 소리의 고장에 살고 있음을 을 곧게 내세울 수 있는지 모른다.
"판소리는 지리산 바람처럼 웅건한 동편제 소리와 해남 관머리 바람처럼 부드러운 서편제 소리, 거기서 각기 흘러나온 동편제롤 주축으로 호령성이 강한‘송만갑타입’과 시김새(소리의 수식)가 자르르 흐르는 ‘정정렬타입’, 동편소리를 뼈로 하고 서편소라로 살을 불인 ‘보성소리’ 등등 각기 전송되고 있는 소리의 각종 타입이 있다. 그래서 어떤 소리제로 이면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판소리의 의미의 세계는 또한 다르게 생성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동편소리로 춘향을 그리면 의지가 굳건한 여장부가 나타나고, 서편소리를 그리면 섬섬옥수의 춘향이가 나타난다. 보성소리로 정권진이 그리는 심봉사는 죽음과 삶이 명멸(明滅)하는 인간의 운명을 노래하지만, 서편제로 한애순이 그리는 심봉사는 애잔한 눈물겨움으로 삶의 잔약상이 나타난다.”
-이국자 지음, 「판소리연구」中에서-

이처럼 판소리가 다양다기한 소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송되는 것은 이것의 전송형태가 천편일률적일 수 있는 문자에 의한 기록전승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오는 구두전승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들 하는데, 소리꾼이 소라를 할 때는 ‘얼쑤’하는 따위의 추임새를 불러 넣어 줄 때 흥이 더 살아난다는 것 밖에 모르는 채 ‘We are the world'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우리가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를 구별할 능력이 있을 리는 없다. 다만 소중한 우리의 가치, 우리의 소리를 꾸준히 지키고 찾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찾아보고 곁에 두고자 열심인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주변에 늘어나기에 문외한인 우리 같은 부류들도 크나큰 덕을 입는 셈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제 5회 백제기행 ‘판소리「동편제」’의 맥을 찾아서’를 떠나는 버스 속은 다섯 번의 기행을 쌓는 동안 서로가 조금씩은 안면이 생긴 탓인지 아니면 원래 이 기행이 주는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편안하고 안온한 분위기와 함께 전주를 출발하였다.
동편제의 고향이 전라북도와 남도의 접경인 운봉, 구례, 남원, 순창 등 섬진강 동쪽 지역이 꼽히고 있고 또 지금은 동편제 소리를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명창 강도근 선생이 남원 국악원에 우뚝 버티고 앉아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선생의 소리 한 자락이라도 얻어들을 생각인지 기행의 첫걸음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넓혀진 전주-남원간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 속에서는 판소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연전 방송의 날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문공부 장관상을 수상한 이병천 PD의 ‘판소리의 원류를 찾아서’가 녹음 테잎으로 흘러나왔지만 덜덜거리는 버스 소음에 묻혀 또 다른 소음의 첨가밖에 되지 않아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대신 주최측이 준비한 유인물에 보니 “동편제 소리는 남성적인 지리산이 상징하듯 우조(羽調)가 많고, 담백 웅건하면서도 산천초목이 벌렁벌렁 떠는 듯한 호령조가 많다. 또한 입을 열어 처음 소리를 내는 발성초(發聲初)가 장부의 일언중천금(一言重千金)처럼 진중하며, 소리의 마침 역시 관운장이 청룡도를 내려치는 듯 되게 끝맺는다.
그래서 동편제 명창들은 오딧세우스의 항해와 같은 영웅 호걸들의 파란만장을 말은 적벽가에 능하다”고 서술하며 부드럽고 기교가 뛰어난 여성적 소리인 서편제와 비교하고 있어 뒤미쳐 남원국악원에서 젊은 국악도 이애자양의 창으로 듣는 춘향가 소리의 동편제적 특성을 미리 짐작케 해주었다.
첫걸음에 도착한 남원국악원에서는 판소리의 법제, 보, 소리의 특성 등을 전주에서부터 함께한 최동현선생의 자상하고 알기 쉬운 설명으로 들을 수 있었고, 또 심인택선생이 들려주는 우리 가락의 멋과 신명은 음악은 당연히 도레미파솔의 서양음악이 본령이고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는 한 지류로 홀대해온 우리 음악교육에 반성할 것이 없는가를 새삼 생각케 하였다.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 속에 이미 우리 몸에 배인 가락이 녹아 있으므로 소리를 음악의 한 분야 라기 보다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삼아 나아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고유정서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편향된 서양음악에 빠질 대로 빠져버린 왜곡된 지금의 정서가 바로 참아지는 날에야 비로소 오늘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듯 싶다
“전라북도 남원부는 옛날 대방국이라 허였것다.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생강 남북강성하고 북통운암허니 곳곳이 승지요 산수정기 어리어 남녀간 일색도 나려니와 만고충신 관행묘를 모셨으니 당당한 충렬이 아니날 수 있겠느냐. 숙종대왕 즉위초에 사또자제 도련님 한 분이 계시되 연광은 십륙세요, 이목이 청수하고 거지 현량허니 진세간 기남자라. 하로 일기 화창하야 방자 불러 물으시되 “이 애, 방자야’, “예이”, “내 너의 풀 내려올지 수삼년이 되았으나 놀만한 경치를 모르니 어디어디 좋으냐?”방자 대답허되, “공부허신 도련님 이 승지를 찾아 뭣허시려오?”“니가 모르는 말이로다. 고래의 문장호걸들이 명승지는 다 구경 허셨느니라. 천하지제일강산 쌓인 게 글귀로다. 내 이를테니 들어보아라.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가장 예술성이 높은 마당으로 꼽히는 춘향가는 위와 같은 아니리로 부터 비롯되니, 역대 명창가운데 춘향가를 특히 잘부른 명창으로 오늘 우리가 찾는 동편제 소리의 시조인 歌王 송흥록은 춘향가 中에서도 옥중가에 능했다 하고 서편제 소리의 기본법제로 꼽히는 명창 박유전은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하는 대목의 소리에 특히 능했다하는데 갈음소리를 놓고 분명 소리의 편제를 가름이 여실하니 그 경계가 궁금한 것은 당연한 듯 싶다.
순천간호전문대의 이국자 교수는 동편제, 서편제의 나눔을 구례교(求禮橋)를 중심한 섬진강 이쪽 저쪽에 따른 경계로 먼 옛날사공이 젓는 나룻배를 타고 한번 건너려면 生死를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한큼 숙명적 거리로서 동편제, 서편제 바다를 나누는 확실한 지역적 경계를 서술한 반면, 최동현 교수는 대개의 세상사가 그렇듯 동편제, 서편제 소리가 칼로 무 쪽 나누듯 확연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기보다는 동편제 소리는 그 소리가 갖는 특성 즉,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으로 우조(羽調)가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고 서편제 소리는 정교하고 감칠맛이 많고 슬픈 소리 계면조(界面調)가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을 따름으로 서로간의 교류와 영향 속에 소리가 형성돼 왔음을 얘기하며 확연한 경계의 구분을 염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편제와 서편제의 소리법제 나눔이 엄존 하는 가운데 이 같은 나눔은 송흥록(宋興綠)이 섬진강 동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리 법제를 동편제라 일컬은 데서 발달된 것으로 그의 거주지인 운봉, 구례, 남원, 순창 등지의 소리를 동편제라 하고, 섬진강 서쪽 보성에 거주하고 있던 박유전(朴格全)의 소리법제를 표준 하여 광주, 나주, 보성, 곡성 등지의 소리를 서편제라 함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듯 싶다. 그 나눔이 어떠하든 소리 고을 남원에서 고집스런 어른으로 남아 송흥록-송만갑-박봉술을 이어 동편제 소리를 전수하고 있는 명창 강도근 선생의 걸쭉한 소리판에 젖고 싶었던 우리 일행은 요 며칠 건강이 좋지 않아 전주의 병원에 나가셨다는 국악원 측 얘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선생이 아낀다는 애제자 이애자양의 소리에 만족한 채 국악원을 나서야 했다.
남원-춘향고을-광한루. 이렇듯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단어들이기에 이몽룡과 춘향의 만남이 시작된 광한루를 찾는 것은 당연한 순서인 듯 싶었다. 오작교 건너편 쪽으로 새 단장이 한창인 탓으로 공사중인 흙더미가 쌓여있어 어수선한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새삼 나어린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이 절로 이루어질만한 경계가 멀리 동편으로 보이는 지리산의 웅장함과 더불어 광한루 누각너머 아름다운 그네 터에 펼쳐져 보인다.“백백홍홍난만중(白白紅紅爛漫中) 백백홍홍난만중,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해도 같고 달도 같은 어여쁜 미인이 나온다. 저와 같은 계집아이와 같이 함께 그네를 뛸 양으로, 녹림숲을 당도허여 장장채숭 그네 줄, 휘늘어진 벽도 가지에 휘휘청칭 감아 매고, 섬섬옥수를 번뜻 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쥐고 선듯올라 발구를제, 한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뜻 높았고, 또 한번 툭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난만도화 높은가지 소르라쳐 툭툭차니, 춘풍취화낙홍설이요, 행화습의난흥무라. 그대로 올라가면 서왕모롤 만나볼듯, 그대로 내려오면 요지황후롤 만나볼듯 입은 것은 비단이나 찬 노리개 알 수가 없고 오고간 그 자취 사람은 사람이나 분명한 선녀라 봉을 타고 올라가 진루의 농옥(弄玉)인가 구름타고 내려와 양대의 무산선녀, 어찌보면 훨씬 멀고 어찌보면 곧 가까워 들어갔다 나오는 양은 연축비화낙무연(燕藏織花落舞鐘) 도련님 심사가 산란허여”전주에서 기차를 타면 남원, 곡성을 거쳐 구례의 관문 구례구역에 닿고 버스로는 남원을 지나 얼마간을 섬진강을 끼고 달리다 보면 역시 구례구역에 닿아 섬진강 이쪽저쪽의 나눔 역할을 하는 다리 둘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는 훤칠하고 수려한 용모를 뽐내는 새 다리이고, 또 하나는 풍진 세월을 뒤로 한 채 지금은 한적히 쉬고 있는 옛 구례다리이다. 바로 이 구례다리를 기점으로 이국자 교수는 동편제, 서편제 소리 나눔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고 있음을 주최측이 준비한 유인물을 통해 엿 볼 수 있었다.
“옛날 저쪽 판소리는 동편제이고 이쪽 판소리는 서편제였었지”하는 생각의 단편이 새겨진 기념비적 언사를 다리 한군데 폼에 새겼으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이마가 더욱 빛났으리라는 이국자 교수의 아쉬운 바램은 섬진강 물에 더욱 또렷해 보인다. 펄펄 뛰는 섬진강 은어회를 깃발에 자랑스레 내세운 구례다리 옆 횟집 간판들을 뒤로하여 구례땅에 들어서니
그 크고 넉넉한 지리산 기슭과 함께 구례 고을이 우리일행을 반가이 맞는다.
옛 부터 구례 사람들은 제 고향을 일컬어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였다 한다. 크고 웅장한 몸집의 한쪽을 부리고 있는 지리산과 이 고을의 젖줄 구실을 하여 흐르는 맑은 섬진강과 산중 들판치고는 꽤 크다는 이곳 들판의 크기와 함께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기름진 땅에서 비롯되는 풍요로움과 순박하고 인정있는 마음씨의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크고 아름다움은 바로 차창 밖으로 연이어 펼쳐져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통해 두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지만 금만경 넓은 들녘이 눈에 삼삼하여서인지 산언저리를 끼고 있는 들녘만은 아예 양에 차지 않았다. 또 풍요로움 속에 순박하고 ‘인정 많은 마음씨 또한 질곡의 현대사 속에 얼마나 상처 입었을까 싶은 생각이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마저 조금은 처연한 느낌으로 만든다.
구례읍내로 들어서니 제법 모양을 갖춘 소도시의 모습 속에 간혹 눈에 띄는 일본식 건물들을 보니 조정래의‘태백산맥’속에 나오던 인물들이 기웃거리던 조합건물들이 눈에 지피는 듯도 하였으나 그냥 스쳐지나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었다는 구례사람 마인화를 찾았다. 그의 안내로 향제가락 단소 연주로는 나라안 제일이라는 이 고을 풍류객 김무규용(81)이 원장으로 있는 구례문화원을 향하였는데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교육자였던 김옹은 만석군으로 알려진 부자였다는데 읍에서 얼마간 떨어진 산성리 절골마을 그의 퇴락한 고가(古家)에서 그 꼬리를 엿 볼수 있었다. 마인화씨의 설명대로 이름난 궁사요 단소외에도 거문고, 북 다루는 솜씨도 빼어났다는 김용의 단소가락이 아쉬웠지만 연로한 탓에 그냥 발걸음을 돌린채 그의 古家를 구경키로 했는데 최근까지도 김소희씨를 비롯한 명창들이 찾아와 한때씩 머물며 소리공부에 정진하였다는 김용의 옛 고가는 안채, 사랑채 할 것 없이 보는 이의 마음이 쓸쓸해질 만큼 낡고 허물어진 채 버려져 있어 풍진 세월이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절글 마을을 나와 마인화씨의 안내를 받아 구례국악원을 찾으니 마침 근동의 현직 교사라는 분과 젊은이 몇몇이 여전히 동편제 가락에 젖어 한참 목젖을 다듬는 중이었다. 우렁차게 차고 나오는 소리에 비추어 좁디좁은 2층 공간은 어쩌면 고집스럽게도 보였는데, 남원 명창 강도근 선생에게서 동편제 가락을 익혔다는 지긋한 나이의 국악원 선생으로부터 소리 한 자락 얻어듣기 위해 우리 일행 모두는 좁은 방안을 가득 메웠다.“함평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되는 호남가로 목청을 가다듬은 뒤 펼쳐보이는 수궁가 가락에 흥에 겨운 백제기행 일원들 여기저기서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가 함께 하며 판이 무르익으니 녹녹하고 좁은 이 방 한켠이 어찌 드넓은 마음새와 뚝심있제 재겨놓은 전라도 사람들의 옹골찬 마음을 가두어 놓을 수 있을소냐 싶은 생각이 절로든다.
손님 접대로 불러준 커피를 배달하러온 근처 다방 아가씨도 일은 뒷전이요 그 흥이 절로 옮겨진 듯 넋을 놓고 판소리가락에 취하니 식어버린 쓴 커피인들 어쩌랴 싶다. 정말 우리는 이땅 전라도에 뿌리박고 살면서 아무나 불잡고 소리 한 자락 부탁해도 춘향가 홍보가中 한 대목쯤 거침없이 불러대던 선조들을 앞세웠었고, 지금도 제대로 된 소리공부를 하려거든 우리 고장 전라도를 찾아야만 하는 높은 전통을 세우고 있건만 웬지 조금씩 허물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국악원 좁은 계단을 내려서며 어쩔 수없이 드는 생각이다.
더듬어 더듬어 우리 것을 만나기보다는 늘 함께 하고 싶고, 항상 같이 숨쉬고 싶거늘 이 작은 기행을 마치고 더듬어 찾았던 이곳 계단을 되짚어 나가면 또 나는 인처럼 몸에 배인 채 자연스레 둘러 쌓인 남의 것들과 함께 하며 아무런 부끄럼도 모른 채 히히덕거릴텐데 어슴프레 저녁은 내리고 얼마 전 겨울바람 싸하게 불 때 기세 좋게 걸었던 섬진강가를 이번에는 밤버스에 몸을 실고 마치 무언가를 찾았다는 듯 제법 티를 내면서 달리니 따끈한 모주와 콩나물국밥이 기다리는 전주의 불빛이 바로 저기인 듯 싶다.


목록